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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Nov 09. 2016

미술관 옆 마켓

런던 여행 7 - 테이드 모던을 나와 참새방앗간인 버로우 마켓을 돌다

런던에서 보내는 이 여름에는 영국 정부가 선사한 미술관 프리티켓을 맘껏 써 보려고 한다. 살인적인 물가, 주 단위로 매겨지는 어마어마한 집세를 생각하면 이 풍부한 문화적 보물창고를 무료로 개방한다는 제안을 어떻게 마다할 수 있나! 그래서 런던 여행은 킹키부츠나 라이언 킹 뮤지컬 티켓을 위해 재건축 가림막 천지인 시내 한복판 매표소 앞에 앉아 온갖 매연을 마시며 한 표를 기대하는 대신에 무조건 미술관과 박물관 위주로 다니기로 했다. 미술관은 아니 예르노가 고백하듯 교양을 탐닉하는 아주 비밀스럽고 '사치'스런 장소임에 틀림없다.


미술관이 비록 누구나의 행선지는 아니겠지만 세월이 흐르며 이곳저곳 쌓여 있던 기억의 파편들을 더듬으며 오늘 여행의 동반자로 어떤 기억을 꺼내어 볼지 나름 혼자만의 설렘이 있는 그런 곳으로는 이런 곳만한 곳이 없다. 혼술, 혼밥, 혼놀이하는 사람들에게 미술관은 꺼내볼수록 탐나는 오르겔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태엽을 돌리면 아련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자그마한 나만의 음악당 같은...


오늘 행선지인 테이트 모던은 테이트 브리튼보다 좀 더 커다란 규모의 미술관인데 멋진 보행자 다리인 밀레니엄 브릿지를 건너는 서비스로 관람자의 설렘을 먼저 돋운다. 맨션하우스에서 내리니 역시나 멋진 역사가 펼쳐진다. 조롱조롱 달린 전등의 단순한 아름다움이 역사의 우아함을 배가시키고 그래서 그런지 공공건축에 자꾸 눈길이 가는 런던이다.


이 전철역에서 내려야한다. 내리면 이렇게 높은 층고의 아름다운 역사가 나를 반긴다.

성 파울 대성당의 위용이 대단하다
밀레니엄 브릿지

<St. Paul 대성당과 그곳에서 미술관을 연결하는 밀레니엄 브릿지> 하늘 구름은 시시각각 변한다. 변화무쌍한 날씨가 영국에 와 있음을 알려주는 것만 같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이지만 유독 현대 예술은 그리 간단하게 아무 곳에서나 볼 수는 없다. 독일 카셀에서 4년마다 열리는 '도쿠멘타  Dokumenat'나 뮌스터 지역에서 열리는 '뮌스터 프로젝트 Muensterprojekt'는 년도를 잘 맞춰야 하고, 바젤에서 열리는 '아트 페어 Art fair'는 탐나는 곳이나 시기를 맞추기 어렵고, 가본 곳 중 가장 폭넓고 화려한 소장품으로 추천할만한 곳은 뮌헨의 '디 피나코테켄 Die Pinakotheken'이다.


과연 대영제국의 런던 테이트 모던은 어떤 소장품들을 가지고 있을까? 테이트 브리튼에서 분리되어 나온 테이트 모던은 장엄한 St. Paul 대성당을 마주 보고 있어 이렇게 멋진 한 컷이 가능하며 템즈강을 사방 하게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멋진 밀레니엄 보행자 다리도 풍광에 멋짐을 더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선물 같은 저 여러 층위의 회색 구름마저 영국스러움을 더해주지 않는가 흐뭇해하며 다리를 건넌다.


테이트 모던에는 유독 초현실주의 회화들이 많이 보인다.

막스 에른스트의 1921년 작인 Celebes, 1925년 작인 피카소의 '세 명의 댄서', 맨 레이의 1921년 작인 cadeau (다리미와 바늘)와 르네 마그리트의 회화까지 다양하게 전시되고 있었다.


위에서 부터 ->막스 에른스트의 1921년 작인 Celebes, 막스 에른스트의 1921년 작인 Celebes, 막스 에른스트의 1921년 작인 Celebes, 레이의 1921년 작인 cadeau (다리미와 바늘), 르네 마그리트


이곳에서 나는 옛 친구를 만나듯 '루시오 폰타나'를 다시 만났다. 그러니까 이 친구는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처음 만났고, 베를린 함부르거 반호프 박물관에서 '칼 앙드레'의 설치 작품을 보며 떠올렸던 적이 있었는데 다시 이 곳 런던 테이트 모던에서 만나니 세상 반가왔다. 혼자만의 사랑이듯, 누구나 다 아는 연예인에 품는 팬심처럼 설레고 기뻤다. 이런 기쁨, 오래된 옛날 초등학교 친구 이름이 가물가물 생각날 듯 말 듯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돌다 이제는 자주 만나는 사이라 선뜻 이름을 부르는 그런 느낌이라고 할까? 그렇게 나만 아는 애틋한 재회의 기쁨을 나눈다. 이제 폰타나의 이름을 잊는 일은 없을 것이다.


https://brunch.co.kr/@arhelger/10

가운데  칼 자국으로 이차원의 회화를 삼차원으로 만든 루시오 폰타나

현대 예술은 개념예술이고 그 예술은  해석의 기술이 중요하며 또한 그 해석은 그대 작품의 창조자를 위한 해석이 아니라 작품을 대하는 나의 해석이다. 때문에 나의 경험과 기억과 추억을 엮어 대면하고 있는 작품을 해석해 보라고 사고의 범위를 확장켜보라고! 현대예술은 그런 과제를 던진다. 그래서 그런지 현대 예술을 보면 마치 일종의 도전장을 받은 것처럼 느껴진다. 어느 때는 가볍게 무시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한 동안 멈춰 서서 골똘히 생각해 보기도 한다. 마치 이런 '이불'의 작품을 대할 때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이불'의 설치미술작품을 한동안 전시했었다. 그 때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지 않았더라면 '이불'이라는 작가도 인지하지 못했을 텐데 고맙게도 그 기억이 남아있고 그 기억은 다시 이곳 테이트 모던에서 소환되었다. 역시 기억이 쌓이고 그 켜켜이 쌓인 기억 위에 다시 시각적 기쁨이 보태지면 하나의 의미로 어떤 기억의 형태로 새삼 친숙하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우리에게 앤디 워홀의 캠벨 스프캔 작품이 슈퍼 진열대의 참치캔처럼 흔하고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흰 캔버스에 붉은 붓으로 막 스프링처럼 휘둘러 칠한 저 작품은 '톰블리 CY Twombly'의 작품 <에너지와 과정>이라는 작품인데, 이곳보다 톰블리를 위한 곳은 단연 뮌헨의 '브란트호르스트 미술관 Museum Brandhorst'일 것이다. 오로지 이 작가 한 명만을 위한 거대한 전시공간을 배정해 놓은 곳이니 그 규모와 전시 품목은 상당한 수준이다.



CY Twombly'의 작품 <에너지와 과정>


이 외에도 다양한 현대 예술가들의 작품이 이 곳 테이트 모던에 포진해 있다. 영국 런던의 또 다른 미술관에서 조우하게 될 현대미술이겠지만 늘 미술관을 나서는 발걸음은 아쉽다. 좀 더 오디오를 붙잡고 만지작거리며 놓친 것은 없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다시 기웃기웃.... 단 하루 이곳에 주어진 이 몇 시간의 길지 않은 시간이 나의 기억에서 어떤 곳에 어떻게 자리 잡을지 모르기에 쫓기는 심정이었다고 고백한다. 내가 선택한 지금 이곳, 이 장소에서 만난 이 작품들이 언제 다시 회고될지... 또다시 어떤 작품을 보며 그때 내가 선명한 오렌지색 건물을 지나며 떠올렸던 생각과 아마 그때는 뚜렷한 형태가 아니었을 어떤 생각의 실마리를 다시 잡을지 미래의 나를 생각하며 이 아쉬움을 쉽게 잊지 않으려 노력하기도 한다.


저 아이들, 바닥에 앉아 편안하게 스케치하던 아이들과 앙증맞은 손으로 오디오를 눌러가며 현대 예술을 보던 어린이들, 설치미술을 보며 대화를 나누던 저 사람들! 미술관의 존재 이유와 세대를 통합하는 예술의 가치를 여기 관람객들을 보면서 새삼 다시 느낀다. 위로와 평안, 호기심과 자극이 필요한 사람들이 잦을수 있는 그런 숲같은, 이곳은 바로 그런 곳!



미술관 6층에서 보니 밀레니엄 브릿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 다리는 대영박물관의 건물과 외벽 사이의 공간을 덮은 Great Court를 설계한 '노먼 포스터 Norman Foster'가 설계한 다리다. 테이트 모던 옆으로는 한창 신축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지금쯤은 완성돼서 좀 더 다양하고 새로운 현대미술작품들이 걸려 있을 것이다.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의 재건축 공사 마감 연도가 2025년이니 그곳도 기대되는 곳 중의 하나다. 끊임없이 신축되고 재건축되는 유럽의 미술관들을 보니 미술관 순례가 계속되어도 늘 새로울 것만 같다.



테이트 모던을 나와 조금 걸어가면 유명한 시장이 있다. 바로 '버로우 마켓'!

건물도 영국 공공건축물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양식으로 여기서는 따뜻한 녹색의 철기둥이 '먹자골목'을 떠받치고 있다. 저 유명한 몬모스 커피집 앞에는 오직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사람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이런 곳은 유연하게 패스하기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더라...



내 눈길이 머문 곳은 빠에야 가게 앞! 비록 스페인의 국민 밥이지만 이곳은 다국적 마켓이니까 햄버거부터 쌀국수까지, 머핀부터 피시 앤 칩스까지 온갖 음식이 다 있고 빠에야도 여기 영국에서 당당히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뮌헨의 나름 유명한 대학교 앞 분식집인 <쭘 코레아노  Zum Koreaner>에서는 순두부찌개부터 된장찌개에 이르기까지 한국음식은 다 판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어느 것도 한국에서 먹던 그 맛은 아니다. 물 맛이 달라서가 아닌 것이 칼칼한 순두부 찌개는 뭔가가 빠져서 그 맛을 뭐라 할 수는 없지만 순두부에 물과 고춧가루를 푼 맛만 남아있었다. 그거! 요리 좀 하는 한국사람이라면 다 아는 마지막 간할 때 넣는 그것! 바로 새우젓이 빠진 맛이다. 간이 안 맞는 그런 맛! 그 분식집 주방장이 중국어로 오더 받는 것을 듣고서야, 아... 그래서...라는 이해의 고갯짓이 절러 나왔다.



이 빠에야 쥔장도 한눈에 척 봐도 모로코 사람이다. 내가 여기서 빠에야를 먹는다면 혹시...새우젓 빠진 순두부찌게를 먹는 것은 아닐까? 1초간 걱정이 앞선다. 여행객, 관광객의 소위 말하는 경험비를 지불하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기도 하다. 난 이때까지만 해도 스페인에 가본 적도 현지 빠에야를 먹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후에 스페인에서 접한 빠에야 가게 어느 곳에서도 이렇게 맛보라고 한 술 건네시던 주인장은 만나지 못했으며 그곳의 빠에야가 훨씬 더 고급스럽고 스페인스러운 새로운 맛으로 나를 감격시키지도 않았다.


여기! 진국이다!~ 여기 빠에야는 스페인의 음식 명성에 모로코식 인심이 더해져서 런던 버로우 마켓의 명물로 탄생했을 것이다. 거듭 사진 검열하시면서 최종 승인한 이 기막힌 한 컷! 아저씨 대박 나세요~~ 런던 버로우 마켓에는 멋진 빠에야 가게에 인심 좋은 모로코 아저씨가 본토에서보다 더 맛난 빠에야를 판다.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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