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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Dec 17. 2016

별별 예찬, 오 시크한 사람들!

런던 여행 10.- 여행은 우연, 친절한 우연은 기분 좋은 인상으로 남아

airbnb

로 정한 숙소와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마치 동짓날 동지 팥죽 먹는 일처럼 합이 척척 맞는다. 굉장한 호기심과 현지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시작된 여행 계획은 현지에서 맞닥 드리게 되는 낯선 숙소와 어색한 숙소 주인과의 첫 만남부터 갑작스러운 여정 변경과 예기치 못한 사건사고가 이어지는 열린 결말로 질주하며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낯선 나라, 다른 집,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 그 사람이 들려주는 현지 맛집과 정보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잊고 지내던 모험에 대한 환상과 비슷하다. 내가 머물게 된 곳인 런던 첼시의 숙소는 어느 멋진 피아니스트의 집이었다. 독일어와 영어,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집주인과 무엇보다 커다란 그랜드 피아노가 집 한가운데 떡 하니 있는 그런 곳! 첫눈에 반한 런던의 이 숙소는 나를 영국 런던이 아닌 호그 바트의 마법학교라도 데려다줄 것 같았다.


실내풍경 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치유가 될 것 같은 거실, airb&b의 사진과 어느 것 하나 다르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루이 슈비츠게벨이자 내 집주인이었던 루이의 앨범 여러 장!


피아니스트 루이와의 만남

은 거의 여행이 끝나갈 무렵에나 가능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는 루이는 중국과 스위스 부모를 둔 멋진 청년이었지만 정작 나를 맞이한 사람은 루이와 집을 셰어 하는 젠틀한 첸이었다. 첸은 독일에서 나고 자란 중국인으로 금융의 중심 런던의 금융가에서 일한다 했다. 둘은 독일에서 만났지만 지금은 런던에서 집 하나를 렌트해 같이 지내는 절친이었다. 첸에게서 집 열쇠를 건네받은 후 나는 첸도 루이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들은 무척 바빴다!' 여행자인 나와 현지인인 첸과 루이는 그만큼 생활의 리듬도, 삶에 대한 기대도, 동선도 달랐던 것이다. 현지인은 삶에 치이고, 살인적인 물가에 늘 낯선 여행객을 집에 들여야 했으며, 아름다운 3층짜리 집에서도 뜨내기처럼 거주하지 못했다. 나는 벽난로 앞의 체어에 앉아 책도 읽고 그러다가 그랜드 피아노도 뚱땅거리고 아침이면 베란다에 나가 모두 똑같은 첼시의 집들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며 여행과 삶의 깊은 간극에서 오는 양가적인 느낌을 마주했다. 이곳의 현실이 내게는 동화ㅡ그들에게는 잔혹동화일 수도 있겠다.


첸은 꼭두새벽에 키친에서 토스트에 잼 발라 먹고는 사라졌다 한 밤중에 들어와서 우리는 동선이 서로 겹칠 일이 없었다. 그는 나 이전에도 많은 낯선 이들을 집에 들였고 그들은 모두 '여행객'이었으며 첸과 나에게는 딱 그만큼의 거리가 존재했다. 어느 날 집에 활기가 돌았다. 루이는 집에 돌아온 첫날부터 요란했다. 한국과 스웨덴 부모를 둔 여자 친구가 찾아왔고, 신나는 피아노 연주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가 한 10분 후에는 정신없이 후다다닥 밖으로 뛰어 나가는 이들의 소리는 정말 듣기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다. 어느덧 집주인의 마인드였던 나는 적막한 집에 생기가 돌아 좋았고, 우리는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서 이야기하며 런던 한 복판의 이 다국적인 만남에 기뻐했다.


육중한 쇼파, 벽난로, 베란다! 완벽한 거실, 런던에 대한 환상을 꿈으로 만들어 주었던 집이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순백의 첼시, 이렇게 질서정연하여 찾아오기 힘든 곳도 없을 듯!


핌리코 역의 너무도 친절해서 낯설었던 역무원!

이 집은 낮동안 생쥐라도 쪼르르륵 돌아다닐 정도로 적막해서 좋았고 동네 전철역인 핌리코 역 역무원은 첫날부터 Ben's 쿠키처럼 달달한 친절로 나를 감동시켰다. 길을 묻던 나에게 거의 역 밖까지 나올 기세로 길을 알려주던 '핌리코 역'의 역무원은 예상치도 못한 친절로 내게 당혹감을 안겼다. 인력 감축과 업무시간이 칼 같은 독일의 건조한 역에 익숙해져 있어서 그런지 도대체 사람을 역에서 본다는 것도 좋았고 주눅 들지 않고 뭔가를 물어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고, 게다가 질문할 때 이렇게 상냥하게 설명을 듣는 것도 낯설고 기뻤다. 사람 사는 냄새랄까... 피부색도 언어도 다른데 이 푸근하고 익숙한 느낌은 뭐지? 친절이 제도화되어 있어 그들의 감정노동을 당연한 듯 받는 곳에서는 이 친절의 맛을 모를지도 모른다. 반대로 친절도 고급 노동이어서 일반적으로 누구나 받을 수 없는 곳에서는 대중교통에서 만난 이 친절이 당혹스럽다. 두 가지 감정을 모두 느꼈던 나는 나중에 맛있는 쿠키를 사서 그녀에게 선물했다. 낯선 여행자에게서 받은 쿠키맛은 어땠을까! 내가 받은 친절만큼이나 달콤했을 것이다.


저 멀리 중년의 노신사에게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 오른쪽에서 두 번째 분, 형광색 옷 입은 남자분 옆이 그 상냥한 미소로 열심히 길을 알려준 핌리코 역의 승무원이다.

오늘도 친절하신 그대! 인물사진은 가까이서 찍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 늘 망원으로 줌인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곳인 것만 같은 첼시 지역의 <핌리코 역>


빅토리아 역의 신발 수선 가게 아저씨

를 꼭 다시 찾아갈 거라고 런던 여행을 마칠 무렵 다짐했다. 나와 친구도 아니고 손을 잡거나 깃을 스친 사이도 아니며 성함도 모른다. 해리포터에도 나오지 않고 여행 책자에도 나오지 않으며 007 시리즈에도 나온 적이 없다. 나와 당신과 우리처럼 무수히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며 평범하고 흔하며 필요할 때 말고는 별로 눈길 줄 일 없는 열쇠와 가방과 구두 수선집 아저씨에 관한 이야기다. 여행 짐을 쌀 때 나는 무척이나 스파르티식으로 짐을 꾸린다. 옷은 입은 옷 말고 여벌 딱 하나 신발도 신은 것 딱 하나! 제주도 여행도 이것보다는 많이 가져갈 것 같은 그런 꾸림이 기본인데 이번 여행에서는 그 신발이 말썽을 부렸다. 밑창이 몽창 빠져버린 것이다. 값싼 접착제가 신발 밑창을 그대로 펄썩 놓아버린 바람에 달리 신발을 사거나 옷을 사거나 할 의도가 전혀 없던 런던이었으므로 이 신발을 고쳐야만 했다. 나의 다급함과 절박함과는 반대로 이 분은 쿨하게 신발을 받아 들고 떨어져 버린 밑창을 다시 튼튼한 접착제로 고정시켜 주셨다.


빅토리아 역의 신발가게 주인 아저씨는 멋지다네~


수공, 손으로 뭔가를 하면 무조건 상당한 금액을 예상해야 하는 독일에서 나는 될 수 있음 자가 수선을 했다. 머리는 길렀고, 너무 길면 손수 잘랐고, 신발이며 옷이며 모두 내가 기웠고 수선했다. 그래야 했다. 드라이클리닝은 해 본 적이 없으며 화장실 갈 때마다 내야 하는 50 cent도 아까운 게 유학생활이었다. 아저씨가 수선을 하시는 동안 나의 '여전한' 유학생 마인드는 무척이나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20 유로 정도는 족히 나올 것 같은 느낌에 조바심과 약간은 염려가 뒤섞여 손은 자꾸 비비 꼬였고 할 일없는 발가락은 계속 꼼지락꼼지락 좌불안석이었다. 파운드가 또 얼마나 비싸던가 말이다.


나는 이날 수선대 앞에 놓인 기부금 함에 1 파운드를 기부했다. 그깟 접착제 좀 붙여주는 데 뭐 수선 값을 다 받으랴... 하는 눈길의 아저씨가 기부금 함을 가리키며 정 원하면 기부하라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이 아저씨 내 뒤통수를 제대로 치셨다. "하... 뭐 이런 친절하고 시크한 나라가 다 있담!"


저 열쇠를 몇 개 사가지고 왔어야 했다. 멋지잖아!

사라를 만난 건

에든버러로 가는 기차 안에서였다. 한 곳에서 오래 머무르는 여행을 하는 나는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겉모습만 보는 여행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한 달을 살아도, 일 년을 살아도 부족한 것이 여행지에서의 삶이지만 가능하다면 최선을 다해 현지에서 살아보려고 하기 때문에 골목을 누비며 한 없이 걷고, 사람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곳의 색채를 보고 그곳을 가득 채운 향을 들이마시며 이국적인 언어를 타고 흐르는 리듬에 흔들거리기도 하고 낯선 음식에서 나오는 냄새를 킁킁 맡으며 돌아다니는 여행을 한다. 그런데 이번 런던 여행에서는 며칠 외도를 하기로 했다. 스코틀랜드를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킹스크로스 역에서 탄 기차는 시원하게 북쪽으로 북쪽으로 동해안 해안선을 따라 올라갔다. 바다가 이렇게 지척이라니!! 탁 트인 전망에 눈은 시원했고 기대감은 상승했으며 지나치는 자그마한 해안선 마을마다 마음을 빼앗겼다.



잘 정비되어 가지런히 일렬종대로 각 맞춘 집들과 황갈색의 박공지붕들, 아치 형의 다리와 저 멀리 지평선, 겨울에도 빳빳하고 초록 초록한 잔디들, 마을을 호령하듯, 중심을 잡아주듯 높이 솟아오른 교회의 첨탑들, 어느 것 하나 섬세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것들이 없어 보이는 영국 땅을 지나가다가 기차가 황량한 벌판 한가운데 정차했다. 고장이 난 것이다.


기차는 에든버러 역을 1시간 남짓 앞두고 다시 뉴캐슬 역으로 되돌아간다고 방송했다. 기차역의 방송이라는 게 현지인도 잘 못 알아듣기 십상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뉴캐슬 기차역에서 하차해 다른 플랫폼에서 대체 기차를 기다리게 되었다. 에든버러의 숙소에서는 날 기다리고 있는데..... 나의 핸드폰은 유심이 없었고, 마음은 다급했고, 기차는 엉뚱한 곳에 정차해 있다. 이런 절박한 심정이 또 있을까!....



사라는 부모와 여행 중이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통통한 엉덩이, 귀욤귀욤 한 이 소녀의 어머니가 핸드폰을 빌려주셔서 에든버러 숙소 아저씨와 통화를 잘할 수 있었다. 다시 뉴캐슬에서 에든버러로 가는 기찻길 내내 나와 사라는 즐거운 여행을 했다. 사진을 찍었고 같이 사진을 보고 웃었고, 사라는 직접 사진을 찍어보며 재미있어했다. 사라는 통통한 엉덩이를 내게 비벼대며 낯설게 생긴 나에게 착 달라붙어 놀았다. 느닷없이 기차 바꾸어 타고 서서 한 시간이나 가는 길이었지만 이런 낯선 만남은 늘 즐겁다. 어린아이만이 가질 수 있는 천진무구함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있는 사라, 그녀와 에든버러에서 다시 우연히 만나지는 못했다. 우연이 가져다준 인연이 옷깃도 스치고 뽀뽀도 했지만 에든버러까지는 연결되지 못한 모양이다. 딱 뉴 카슬에서 에든버러까지 우리가 함께 한 시간, 저 멀리 지평선까지 탁 트인 전망과 어린아이의 따뜻한 체온을 무릎에 느끼며 스코틀랜드 땅으로 올라가던 그 길! 여행이 촉각으로도 기억되는 그런 진귀한 경험, 에든버러 가는 길이 이리 버라이어티 할 수가 없다.


그림같은 해안가 마을을 지나고 있다~


사라 안녕? ㅎㅎ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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