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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Dec 30. 2016

겨울 도시, 바람의 신전 에든버러

런던 위 에든버러 2 - 한여름에도 겨울 서정 가득 품은 바람의 도시

귓밥을 거세게 걷어차는 강풍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날씨, 맑은 청색에서 짙은 먹 회색까지 팔레트를 펼쳐놓고 마치 색 고르기나 하는 듯 시시각각으로 달라지는 하늘색, 그리고  두 눈 가득 들어오는 하늘 밑으로 나지막한 건물들이 더욱 넓은 하늘을 보여주는 곳, 한여름의 에든버러는 푸릇푸릇한 잔디와 나뭇잎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황량하고 척박한 대지의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이 황량함은 이스탐불에서 안탈라로 내려가는 덤불 투성이의 그 건조한 고속도로 밖 풍경과는 또 달랐으며, 독일 함부르크 근방의 끝없이 펼쳐진 평평한 밀밭을 바라볼 때 느끼던 황량함과도 달랐다. 마치 지평선처럼 끝없이 평평하고 변화 없는 그 방대한 그 밀밭은 구불구불한 언덕과 둔덕진 산, 활엽수와 침엽수 잡목들이 우거진 조밀 조밀한 우리네 산하와 너무나 달라 나는 허허벌판에 내동댕이라도 쳐진 느낌이었다. 그러나 에든버러의 이 황량함은 그 어느 곳과도 다른 장엄한 아우라를 동반하고 있었다. 바람 때문인가... 에든버러 성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바다와 하늘을 통째 휘감는 구름이 거의 초와 분 단위로 변하고 있었다. 한여름인데.... 바람 속에는 벌써 냉기가 가득 찼고 구름은 금방이라도 눈발로 변할 것만 같다. 이 거칠고 자유로운 자연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이 풍경이 한 장소에서 거의 순간 같은 1분 남짓한 시간에 담은 것이니... 이국적인 맛이 듬뿍 담긴 사진이다.



에든버러 성 위에 서서 보는 저 멀리 칼튼 힐 calton hill. 바다를 끼고 있는 평평한 유럽 국가들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이 바로 저 변화무쌍한 구름인 것 같다. 런던 하이드파크에서도 저 구름들, 네덜란드 위트레히트에서도 저 구름들, 초현실주의자들의 그림을 찢고 나온 것처럼 탄력적이고 쫀득한 질감의 구름이다. 저 칼튼 힐의 모습에 반해서 새벽녘과 해 저물 때 두 번 언덕을 올랐다. 어느 때 가도 거센 바람과 황홀하고 지독하게 외로워 보이는 풍경이 내 뺨을 거세세 때렸다.



태곳적부터 전해지던 신화와 전설, 민담과 영웅담이 돌덩어리 하나에, 무너진 돌담 위에, 세우다 만 도리아식 기둥들에 스며들어 근대의 이성과 충돌하는 곳! 저 칼튼 힐에 서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으니 에든버러가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해진다. 에든버러 올드 타운과 성이 인간이 자연과 맞서고, 숙적 잉글랜드와 맞서는 요새라면 저 칼튼 힐은 문명과 이성, 역사와 시간의 선형성과 극명하게 대치되는 곳으로 다가온다. 과거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우리의 역사적 사고를 무시하는 곳, 기둥만 세워 놓고 손 놓은 신전이어서 정말 다행이다!


독일의 대 문호 괴테는 바이마르 도시의 넓은 공원 한 구석에 폐허처럼 보이는 성의 일부를 만들게 했다. 셰익스피어의 영향이기도 했고 2 년 간의 이탈리아 여행이 ' Park an der Ilm, 일름 강 옆의 공원'에 남긴 감성적인 흔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무너져가는 성을 표방한 폐허는 지나간 것, 영락해 가는 것, 인생과 같은 그 황량함을 풍긴다. 그곳에서 괴테는 carpe diem도  memento mori도 생각했을 것이다. 아니 낭만적인 채색 가득한 이탈리아와 영국을 떠올렸을 수도 있다. 이 곳에 와보니 이 세상 가장 낭만적인 감성이 담긴 곳이 바로 이 칼튼 힐이 아닌가 싶다. 이 언덕에 올라 저 오래된 돌 색을 바라보는 것, 그냥 단전호흡하듯 호흡을 고르며 창조적인 멍 때리기의 시간을 갖는 것, 그냥 무위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곳, 런던의 하이드파크도 도시의 숨통을 틔워주는 텅 빈 자연의 모습을 그려내지만 이 칼튼 힐은 그 자연에 바람을 보너스로 보탰다.  



한여름에도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곳, 그저 거대한 돌기둥 11개가 서 있고 미완이라는 이름으로 남겨졌지만 이 칼튼 힐의 바람이 통과하는 저곳은 아름다운 '바람의 신전'이다. 고대 서사시인 헤시오도스(Hesiodos)는 바람과 관련해서 바람의 신 세 명에 관한 일화를 전해주고 있다. 바람의 신들은 티탄 족의 한 명인 아스트라이우스(Astraeus)와 새벽의 여신 에오스(Eos)사이에서 세 명의 자식으로 태어난다. 온화한 서풍이며 봄을 재촉하는 미풍인 제피로스(Zephyros)와 어깨에 날개가 솟아오른 근육질의 사나운 북동풍 보레아스(Boreas) 그리고 이상하게도 신화나 회화에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남풍인 노터스(Notos)! 이 곳은 이 세 형제가 모이는 장소라도 되는 양 사납고 거친 바람이 부는 가하면 살랑살랑 미풍이 불기도 한다.


바람의 신 하면 또 하나 떠오르는 호메로스의 대 서사시에 등장하는 아이올로스도 이 바람의 신전에 어울리는 이름이다. 나무 한 그루 찾아 볼 수 없는 Arther's Seat 어딘가 아이올로스가 바람을 가둬놓은 동굴이 있을 것만 같다. 이렇게 바람이 거센 곳에서는 아이올로스의 동굴이 열린 게지....


2016년을 두 밤 남겨둔 오늘 이렇게 서슬 퍼렇게 온 몸을 때리던  바람의 신전 제단에 에든버러의 추억을 올린다. 사제가 된 듯 한 해를 정성스레 마무리하는 글과, 한 해 이 불타는 듯 역동적으로 한국을 달궜던 이슈를 올리고 잘 불태워 신에게 올려 보내는 의식이다. 칼튼 힐의 저 매서운 바람이, 한여름에도 겨울왕국의 냉기를 품은 저 보레아스의 입김이 나라의 가득찬 액운과 나의 소소한 염려를 날려 보내고 2017년에는 제피로스로 돌아와 주길!

 A dieu 2016!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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