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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helger Jan 21. 2017

보슬비 내리는 본 공원 묘지

본 Bonn 2. - 베토벤의 어머니가 계셨다.

구시가지를 돌아 공원 같이 넓은 공원묘지를 찾아 헤맸다. 작은 도시라고 방심했다가 조금 헤매고 도착한 '구 공동묘지'! 늘 방심은 금물, 낯선 곳에서는 눈과 온 몸의 촉수를 네비게이션처럼 움직여야 하는 법이거늘~~


독일에서 보슬비 정도는 비 축에도 안 끼기 때문에 누구 하나 우산 든 이 없다. 이렇게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날에 사람 없는 공동묘지가 제 맛이다. 슬쩍 머리에 손수건 하나 얹은 채 운치 있고 초록빛과 신선한 풀 냄새로 진동하는 이 곳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길가의 출입문을 열고 공동묘지로 들어가면 한가운데 돌로 지은 교회가 오롯이 한 채, 그리고 그곳을 중심으로 앞, 뒤, 옆으로 수 백개의 묘비가 세워져 있다. 독일 공동묘지는 그 사용용도가 다 돼서 더 이상 매장묘가 들어오지 않으면 도심 공원으로 사용된다. 베를린 노이쾰른에도 바로 집 앞이 공동묘지였고 뮌헨에서도 집 앞 공동묘지에서 아침 조깅을 하며 정말 세상사 다 적응하기 마련이라고...이러다가 여기서 캠핑도 하겠네! 했던 생각이 난다. 온갖 도깨비와 귀신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어른들 눈 피해 공동묘지에서 데이트 하셨다던 옛날 어르신들 말씀도 있는데 지금 서울에서는 그런 운치마저 근거리에서 찾을 수가 없는 점이 아쉽다.



이 공원 묘지에서 가장 유명 인사는 아마 베토벤의 어머니일 것이다. 마리아 막달레나 베토벤은 18살의 어린 나이에 이미 과부가 되었지만 두 번째 결혼에서 둘째 아들 루드비히 반 베토벤을 낳았다. 그러나 그가 16살이었을 때 안타깝게도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이 묘지에 묻히게 되었다는데, 이 묘비 글귀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베토벤의 절절한 어머니 사랑을 접하니 격정적이고 자유로운 영혼의 베토벤에게 이런 심성이 있었나 놀랍기만 하다.


"그녀는 제게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어머니이자 내 생애 최고의 여자 친구였습니다"


베토벤이 1787년 9월에 요제프 빌헬름 폰 샤덴 (Joseph Wilhelm von Schaden in Augsburg )에게 보낸 편지에도 저 묘비 문구와 동일한 문구가 적혀있다. "그녀는 내게 정말 사랑스러운 어머니셨어요. 나의 최고의 여자 친구였지요. 오! 아직도 어머니라는 사랑스러운 이름을 말할 수 있는 나보다 누가 더 행복하겠어요!"



사실 베토벤의 무덤이 있다면 더 굉장했겠지만, 그의 무덤은 오스트리아의 빈에 있으니 베토벤의 절절한 애정이 아로 새겨진 이곳 본의 어머니 무덤은 좀 더 알려지면 좋겠다. 이렇게 악성 베토벤의 사적인 단면을 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독일문학을 하는 이들에겐 잘 알려진 아우구스트 빌헬름 쉴레겔 August Wilhelm Schlegel의 묘도 바로 본에 있다. 부인이었던 도로테아 슐레겔, 형제였던 프리드리히 슐레겔, 장화 신은 고양이로 유명한 루드비히 티이크, '푸른꽃'의 저자 노발리스 등과 독일 낭만파를 이끌었고 셰익스피어의 작품 17개를 독일어로 옮긴 위대한 문화역사학자이자 비평가, 번역가, 인도 문학 전문가이자 문헌학자! 이렇게 뜻밖의 시대와 조우하는 곳이며, 산자가 죽은 자를 통해 시간여행을 하게 되는 곳, 바로 그런 곳이 유럽의 묘지인 것 같다. 늘 유럽 어느 곳을 가든지 공원 묘지들은 아름답고 환상적이고 쓸쓸하며 삶과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베토벤을 만나러 왔다가 그의 어머니와 독일 낭만주의자 슐레겔을 접하니 그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천재적인 예술가들과 작가들의 이름이 머리를 흩고 지나간다. 나폴레옹이 독일로 진격해 오자 바이마르의 괴테는 예나 전투에 참가했고 그 혼란한 시기를 틈타 허락받지 못했던 결혼을 감행했던 일화와, 베토벤이 나폴레옹을 찬양하며 만들었다 스스로 황제로 취임한 일에 분개해 3번 심포니의 타이틀에 부치려던 '„intitulata Bonaparte 보나파르에게 헌정하며 썼노라“를 지워버렸다던 일화도 떠오른다. 이런 과거는 자연스럽게 현재와 겹쳐지고 포개지며 연상을 낳고 반성을 낳고 상념을 낳는다.


사실 유럽연합의 국가로 불려지는 노래가 바로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다. 독일 고전주의의 대표격인 쉴러가 1785년에 쓴 '송가 Ode'를 베토벤이 교향곡 9번 4악장에 사용했기에 독일 고전주의와 낭만주의가 융합되어 웅장한 곡이 된 것 같다. 그 송가의 싯구만큼이나 단결과 화합 그 기쁨이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이 노래는 동유럽 국가들의 혁명가이기도 했으며 독일 통일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연주되기도 했고 생뚱맞지만 짐바브웨의 국가이기도 했다. 그 송가의 내용이 정말 멋지다!                        

당신의 마법이 다시 붙인다 Deine Zauber binden wieder
유행이 단단히 갈라놓았던 것을, was die Mode streng getheilt,
 모든 사람들이 형제자매가 된다, alle Menschen werden Brüder,
 당신의 부드러운 날개가 머무는 곳에서. Wo dein sanfter Flügel weilt.


얼마전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 트럼프 취임식 당일 마인강과 라인강이 만나는 독일의 코블렌츠 시에 유럽 극우 지도자들이 집결했다고 한다. 자국 이익에 최우선을 두는 고립주의 노선을 추진하겠노라고 천명했던 이 날 행사장 밖에서 지그마르 가브리엘 독일 부총리는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를 불렀다. 간절한 기도처럼! 극우의 망령이 되살아나 민족주의의 탈을 쓴 채 그동안 묶여 있던 교양의 족쇄를 풀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증오와 백인우월주의를 뿜어내는 모양이다.




이곳저곳에서 예술품처럼 세워진 묘비 구경을 하며 이 생각 저 생각에 하릴없이 공원을 왔다 갔다 했다. 저 묘지 건너편 노숙자 쉼터가 있어서일까... 빗방울이 맺히지 않은 벤치에는 이미 담배 물고 술 병 쥔 남자들이 하릴없이 앉아 있었다. 공기 중에는 대마의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고, 그들의 불안한 눈길과 주고받는 속닥거림도 공원 묘지의 음산한 기운에 더해지고 있었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과 이미 시든 꽃들을 치우는 묘지 관리인 아저씨는 그런 이들이 이 곳에 상주하게 된 환경에 이내 못마땅해하시며 말을 거신다. "쉼터를 옮겨야 해, 예전에는 여기 안 그랬었거든! 다 이리로 지나가!"

그 신화가 여기 독일에도 있나보다. 과거는 영화로왔고 아름다왔으며 엄마가 해주신 음식은 늘 맛있었다는 그 신화...



두 묘비 가운데 싹을 틔운 나무는 우람하게 자라 두 묘비를 쩍 갈라놓을 정도로 높게 뻗었다. 돌과 시멘트 조차 품 안에 껴 앉고 자라는 나무를 보니 생명의 힘이 죽음의 고요를 갈라놓는 것 같아 보여 사념에 잠긴다. 긴 산책은 생각에 생각을 낳고 머리 속에 떠오른 생각의 고리는 끊길 줄을 모른다. 공동묘지를 나와 먼 길을 다시 돌아 시내 중심가로 다시 돌아왔다. 땅에 떨어진 낙엽과 이미 떨어진 해, 은은하게 밝힌 건물 조명이 하루의 마감을 알린다. 이런 차분한 저녁, 네온사인도, 현란한 조명도 삼간 이 어둑어둑한 밤의 풍경, 어디선가 들리는 저벅저벅 빗길 발소리마저 이 풍경에 꼭 들어맞는 한 조각 퍼즐 같은 그런 밤이다.


왼쪽 카우프호프, 중안 베토벤 동상, 오른쪽: 뮌스터

글, 사진 모두 Arhel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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