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림 Sep 23. 2023

최애 신분증을 갱신했다

"와... 엄청나네요."

모니터에 떠 있는 내 얼굴을 보고 감탄했다. 내 모습을 보고 이런 긍정적인 단어를 뱉을 일이 있을 줄이야. 방금 스튜디오 안쪽에서 촬영한 증명사진을, 스튜디오 사장님이 '만져주고' 계셨다. 탁- 탁- 키보드 몇 개를 누르고 마우스를 사진에 갖다 대면 눈이 커졌고, 피부가 깨끗해졌고, 턱선이 날렵해졌다.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빠른 손놀림을 보건대, 아마도 수십 혹은 수백 명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새롭게 태어났으리라. 


"더 고치고 싶은 곳 있으세요?"

사장님의 질문을 들으며 문득 스튜디오 한쪽에 걸려있는 거울이 눈에 들어왔다. 거울은 익숙한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지만, 모니터 속 그녀는 나와 '아주 조금' 닮아있을 뿐 완전히 새로운 존재였다. 

"없어요! 이 정도면 충분한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사장님은 다시 한번 마우스를 움켜쥐고 탁탁- 입술을 더 붉고 반짝이게 만들어주신 후에야 저장을 눌렀다. 

'피부과에 가면 저런 피부를 가지게 될까? 저 사진을 들고 성형외과에 가볼까?' 

자꾸만 거울을 보게 됐다. 아아- 모니터 속 저 얼굴로 살고 싶다. 저것도 내 얼굴인데, 대체 어디부터 손을 대야 저렇게 되는 걸까.

"운전면허증에 쓴다고 하셨죠?"

쓸데없는 망상은 사장님의 질문으로 마무리됐다. 그랬다. 나는 그저 운전면허증을 갱신하러 온 것일 뿐. 나이 마흔에 성형으로 인생을 갱신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지금의 상황과 어울리지 않았다. 10년 동안 잘 쓸 신분증이 하나 생긴 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그리고 여권, 내게 있는 세 개의 신분증. 그중 최애는 역시 운전면허증이었다. 주민등록증과 여권에는 10여 년 전 모습이 담겨 있긴 했지만, 젊음도 생기도 찾아볼 수 없는 '날 것의' 얼굴 그대로가 사실적으로 남겨져 있었다. 자세한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늘 일정에 쫓겨 급하게 만들어야 했고 동사무소 혹은 시청 근처의 사진관에서 대충 사진을 찍어 내는 선택을 했었다. 귀가 보여야 하고, 눈썹이 드러나야 한다고 했던가? 아무튼 그런 상태로 찍힌 내 모습은...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 만큼 엉망이었다. 

운전면허증은 달랐다. 갱신 날짜 한참 전에 친절하게 알려줬고, 늘 준비된 상태로 사진을 찍으러 가서 전문가의 손길을 받은 사진으로 새 신분증을 만들 수 있었다. 사진을 통해 본인 증명이 되고 말고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신분증을 볼 때 내 기분이 좋으면 그뿐. 그렇게 수년간 내 지갑 속 신분증 자리에는 늘 운전면허증이 꽂혀 있었다. 





이번 운전면허증도 대성공이었다. 나와 조금 닮은 여인이 들어앉은 그 신분증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당연했다. 친오빠와 단둘이 마주 앉은 술자리. 나는 자랑스럽게 운전면허증을 꺼내 보여줬다. 

"사진 겁나 잘 나왔지?"

"........"

오빠는 말없이 잠시동안 운전면허증을 바라보다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물었다. 

"이게 누군데? 니가?"

"........"

이번엔 내가 말을 잃을 차례였다. 누차 강조하지만, 이건 신분증이었다. 사진을 보고 본인을 알아볼 수 없다 한들, 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등이 선명하게 적혀 있는 신분증. 그럼에도 오빠는 사진 속 여인이 누구인지를 물어왔다. 그래. 상대는 오빠였다. 전생에 원수였는지는 모르겠고, 이번 생엔 확실히 나와 안 맞는 인간으로 태어난 내 혈육. 머릿속에 숫자와 공식만 가득한 극 이과형 인간. 이 자에게 내가 무엇을 바랐던가. 눈 앞에 있는 내 얼굴을 칭찬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사진 속 인물을 봐달라는 것임에도 오빠는 내 말의 요점을 잡아내지 못했다. 문과형 인간인 나는 스스로가 조금 한심해졌던 것 같다. 내가 지금 누구를 상대로 칭찬을 바랐단 말인가. 바보 멍청이. 이과형 인간은 한 발 더 나아가 내게 질문을 던졌다. 

"아니, 근데... 운전도 못하는 애가 왜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는 건데?"

하고 싶은 말은 많았다. '그게 지금 중요한 문제가 아니잖아', '사진을 좀 보라고, 잘 나온 사진에 대해 '와-' 하고 감탄만 해주면 되는 거라고', '따지지 좀 말라고. 이 이과형 인간아' ..... 말을 해서 무엇하리. 0과 1로 이루어진 명확한 디지털 신호를 만들어 전송해주지 않는 이상, 저 인간은 핵심을 이해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래, 나는 운전을 못했다. 운전면허증을 최애 신분증으로 귀히 여기며 살고 있는 입장임에도 운전대를 잡은 기억은 까마득했다. 20살에 면허를 따서, 30살에 한 번, 40살에 한 번, 10년 '무사고운전'의 대업을 두 번이나 이루며 면허증을 갱신했다. 하지만 나도 안다. '운전 무능력'쯤이 더 정확한 표현인 것을. 강산이 두 번 변하는 동안 운전을 전혀 안 했으니 사고를 낼 일조차 없었다. 20살의 나는 대체 면허를 왜 땄던 걸까. 돌아보면, 이상적 어른의 모습에 운전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른이라 하면, 운전석에 앉아서 자연스럽게 한 손으로 파워 핸들링을 선보이며 바쁘게 다니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스무 살의 청춘은 운전을 어른으로 가는 통과의례라 여겼던 것 같다. 




대입을 앞두고 있던 무렵. 내 할머니 정봉애 여사님이 운전학원 등록을 권하셨었다. 본인은 평생 면허에 도전한 적도 없었지만, 어쩌면 그게 더 이유가 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오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도 운전학원을 대입 선물로 제안하셨다. 

"그건 할미가 해주고 싶은 거다."

어른의 모습에 대한 환상 때문이었는지, 할머니의 단호한 어투 때문이었는지 어쨌거나 나는 세상 가장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때에  운전학원에 덜컥 등록했다. 70, 80대 어르신들도 합격하신다고 강사님은 여러 번 얘기하셨지만, 나는 내가 실기에서 떨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왜? 나는 몸치였으니까. 바퀴 달린 것들을 뜻대로 움직이는 데에 성공한 적이 평생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내 몸도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힘든 마당에, 말도 안 통하는 탈 것들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건 불가능했다. 롤러스케이트니 자전거니, 어린 시절엔 나도 배우면 될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온 동네 꼬마애들도 다 타는 거니까 배우면 할 수 있겠지'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가며 깨닫게 됐다.  내가 못 배워서 못 탄 게 아니었구나. 아무리 배워도 남들처럼 쉽게 해낼 수가 없는 거구나. 세상에. 운동신경 같은 거 나한텐 아예 없구나! 

자전거를 못 탄다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도 말하곤 했었다. 

"겁이 많아? 넘어질 걸 무서워하면 평생 못 타."


글쎄. 나는, 겁쟁이였던 걸까. 겁이 많아서 그 모든 시도들이 실패로 마무리됐던 걸까. 10대에도 20대에도 자전거를 배우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었다. 공원에서 대여도 해봤고, 이런 저런 사람들에 의지해 배우려고 여러 번 시도했었다. 앞서 말했듯 모조리 실패. 하루쯤 배우고 나면 몸이 기억한다던데, 내 몸은 그 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물론 이를 악물고 꾸준히 계속 지치지 않고 매일매일 연습했다면 지금쯤은 성공했을지도 모를 일. 당시의 나는 이 고생을 견뎌내고 자전거를 타야만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넘어지고 소리 지르고 겨우 중심을 잡나 싶은 반나절을 보내고, 다음날 다시 자전거 안장 위에 앉으면 또 휘청댔다. 어제와 같은 하루의 반복. 목이 쉬었고 온몸이 아팠지만 몇 미터도 나아가지 못했던 수 차례의 경험들. 그리곤 완전히 손을 놔버렸다. 

'됐다. 됐어. 자전거 못 탄다고 사는데 지장 없잖아?'


그랬던 내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2종 운전면허시험에 단 번에 붙어버렸다. 주변 모두가 당연한 결과인 듯 받아들였지만, 스스로는 정말 진심으로 깜짝 놀랐었다. 단 한 번만에! 내가! 이 몸치가! 실기를 합격하다니!!! 그건 꽤 놀라운 일이었고, 어른답게 자동차를 운전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20여 년. 그 실기시험이 내 평생 마지막 운전이었다. 40살이 되고 면허를 두 번 갱신할 때까지, 나는 단 한 번도 운전을 해본 적이 없었다. 


자전거를 못 타도 사는데 지장이 없었듯이, 운전을 못해도 사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내가 가고 싶은 곳, 갈만한 곳은 모두 대중교통이 잘 뚫려 있었다. 고속버스, 기차, 정 안되면 택시까지. 찾고 찾으면 어디든 방법은 있었으니까.

결혼과 출산을 해내며, 운전은 점점 더 멀어져 갔다. 버스 타고 출퇴근, 그리곤 육아. 새로운 것을 배울 만한 의지가 도무지 생기지 않았고, 그럴 만한 기력도 남아있질 않았다. 어른이라 하면 파워핸들링 같은 것을 상상했던 나는,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으며 그저 파워풀하게 휘둘리고 있을 뿐이었다. 회사일, 아이일, 집안일 등을 정신없이 쳐내다보니, 어느날 문득 마흔이 되어 있었다. 두 번째로 면허갱신을 할 때쯤엔 스스로도 포기한 상태였다. 면허증을 면허증답게 쓸 일이 내 인생에 있기나 할까. 없을 것 같은데?


그랬다. 나는 역시 상상력이 부족한 인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