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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날엔 Sep 30. 2023

오전 10시, 대리운전을 불러야겠다

운전연수는 20시간으로 마무리했다. 물론 '10시간만 더 받을까?', '이 상태로 도로에 나가면 안 될 것 같은데?' 하는 갈등이 수천 번 일어났지만 이미 충분히 돈을 쓴 상태. 멈춰야만 했다. 어쨌거나 두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토대로, 집에서 아이 학교까지 10분 남짓의 거리만 왕복하며 2주를 보냈다. 두 선생님은 공통적으로 "차선을 바꿀 때는 도로의 흐름을 보라"는 이야기를 하셨었지만, 그 흐름이라는 것의 정확한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흐름이라...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가 되고 싶은 마음은 정말로 없었고, 흐름에 몸을 맡긴 채 부드럽게 헤엄치는 도로 위 물고기가 되고도 싶었지만, 안 보이는 흐름을 어떻게 파악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모를 땐? 그저 남이 시키는 대로 하는 편이 최상의 선택지 아닐까. 선생님이 콕 집어준 위치에서 매일 차선을 바꿨고, 정해주신 자리에 아이를 내려줬다. 나는 꽤 안정지향적인 인간이었다. 도전이니 모험이니 절대로 하지 않고, 배웠던 그대로만을 따르며 2주 남짓을 채웠다. 


2주는 자신감 아니, 쓸데없는 자만심이 무르익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등하교를 성공적으로 마치자, 이제 슬슬 '본격적으로' 연습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피어올랐다. 차가 있는데 등하교에만 쓴다는 건,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멍청한 짓 같았다. '어차피 실력을 쌓으려면 연습을 해야 하잖아? 학교 말고 다른 곳을 한 번 가보자' 합리적으로 생각했고, 운전연습 장소로 추천받은 여러 곳 중에 집에서 가장 가까운 '월드컵 경기장'을 목적지로 택했다. 집에서 20분 남짓 걸렸고, 시외로 빠지는 길목이었기에 차가 별로 없었고, 크고 큰 도로만 따라가면 되는 길이었기에 가능하게 보였다. 




"나, 나야?"

아이를 데려다주면서도 느꼈지만, 운전을 하면서 이 말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다. 어디선가 빵- 클랙슨이 울리면, 사방에 붙은 거울을 하나씩 살펴봤다. 나야? 내가 뭘 또 잘못한 거야? 내 잘못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안다는 말은, 바꿔 말하면 잘못이 없는 상황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하지만 나는 전혀 알지 못했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왜? 왜? 왜 빵- 한 건데? 나한테 한 건가? 누군가 빵- 소리를 낼 때마다 나야? 나야?를 외쳐댔다. 모든 빵빵- 의 이유를 정말 알고 싶었다. 내가 뭘 잘못했다면 알려주세요, '너한테 하는 거 아님' 이 말이라도 좀 해주세요, 제발. 운전석에 앉아 도로 위로 나가면, 늘 매순간 작아졌다. 초보라서 미안합니다, 제가 잘 몰라요, 이 도로의 거대한 흐름을 제가 깨고 있나요. 끊임없이 백미러를 보며 뒤차의 눈치를 살폈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했다면 높은 확률로 뒤차가 빵- 소리를 낼 것이기에. 빵- 소리가 들리면 일단 뒤차를 봤고, 보일 리가 없는 뒤차의 기분을 알고 싶어 했다.


이런 상태였으니 눈 앞의 신호를 제대로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백미러를 흘끔 본 후 정면을 봤을 때, 바로 앞의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뀌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 노란불! 반사적으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익-'

내 차에서 난 소리가 아니었다. 내 차 바로 뒤에서 급정거를 하는 듯한 엄청난 소리가 났다. 뭐지? 하며 사방의 거울들을 살폈고,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곳은 시외로 빠지는 외곽도로였고, 출퇴근 시간이 지난 때였기에 도로도 한산했다. 여기저기에 60km라고 적혀 있었지만, 그 속도를 지키며 달리는 차들은 별로 없었다. 다들 로켓 마냥 날아다니는 느낌이었는데, 그 길을 나는 40km 정도의 속도를 유지하며 유유자적 가고 있었다. 그 이상 속도로 달리면 심장이 부들거려서 더 밟을 수가 없었다. 어쨌든 나는 느렸고, 백미러를 확인했을 때 뒤차는 꽤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갑자기 우뚝 서버린 거였다. 뒤차 운전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핸들을 살짝 꺾었고, 차의 앞부분이 옆차선으로 넘어간 채 겨우 멈춰 선 상태였다. 옆차선이 비어 있었기에 아무런 사고도 벌어지진 않은 상황. 


뒤차 운전자는 아마도 쌍욕을 수천 번 날리고 있을 듯 했다. 급브레이크를 밟으면서도 핸들을 틀어 사고를 내지 않은 뒤차 운전자의 순발력에 감탄하면서도, 저 사람이 순발력을 그대로 살려 차문을 박차고 나올까 봐 두려웠다.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기 전에 뒤차 문이 열리면 어떡하지. 내쪽으로 다가와 문을 똑똑- 하면 어떡하지.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겠다' 생각했을 즈음, 문득 연수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역시 사람은 배워야 하는 거였다. 첫 번째 선생님이 알려주신 '사과법'을 떠올린 나는 망설임 없이 비상등 버튼을 눌렀다. 깜박깜박. 운전자들 사이에서 'sorry'와 'thank you' 모두를 표현하는 의미라고 알려주셨던 소통법. 신호가 바뀔 때까지 비상등을 눌러두고, 제발 저분이 차에서 내리지 않기만을 바랐다. 


그리고 초록불. 나는 급하게 정지했던 속도만큼이나 액셀을 팍팍 밟으며 달아나길 택했다. 혹시나 저분이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좇아올까 봐 두려워하면서. 끊임없이 백미러를 확인하며 달아났다. 두근두근. 내 심장은 노란불을 확인한 그 순간부터 점점 더 격렬하게 뛰어대고 있었다. 입을 벌리면 심장이 나올 것 같은 기분이랄까. 월드컵 경기장이라는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을 땐 단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했다. 

'빨리 차에서 내리고 싶어!!' 


정말 나는, 대단히 대단한 유리멘털임을 절감했다. 따지고 보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인데, 잔뜩 놀랐고 잔뜩 겁을 먹었고, 평정심은 바로 무너져 버렸다. 차에서 내리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자동차라는 이 흉측한 물건에서 운전자인 내가 내리려면, 주차라는 거대한 관문을 통과해야만 했다. 평일 오전에 월드컵 경기장에 왜 사람이 많은 것일까. 왜 주차 자리가 별로 남아있지 않은 것일까. 마땅한 자리를 찾으려 주차장을 뱅뱅 돌다가 진이 빠져버린 나는 주차장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주차표시가 없는 곳에도 보도블록에 맞춰 일렬로 주차가 되어 있었기에, 그 행렬의 맨 뒤에 차를 대면 큰 문제가 될 것 같진 않았다. 에라 몰라. 아무렇게나 차를 세워버리곤 벨트를 풀고 차에서 탈출했다.  


이 순간의 최고 장점이라면? 어쨌거나 저쨌거나 혼자 운전을 해서 월드컵 경기장에 도착했다는 것. 문제는 온 만큼 다시 되돌아가야 집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도착의 기쁨을 만끽하기엔 뒤에 남은 미션이 너무 거대했다. 운전이라는 것을 다시 할 만한 힘도 남아있질 않았다. 

'대리운전을 불러야겠다. 이 상태로는 절대 집까지 못 가. 큰일 날 거야.'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이 시간에 대리운전을 부를 수 있을까? 이런저런 업체에 전화를 해봤지만, 단 한 곳도 연결이 되진 않았다. 어떡하지. 일단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가 밤에 와서 대리운전을 부를까? 밤에 애를 혼자 집에 둘 순 없는데. 어떡하지. 

일단 가장 필요한 건 휴식 같았다. 평정심,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그 녀석을 다시 찾아와야만 했다. 두 다리로 천천히 땅을 밟으며, 마침 떠오른 노래를 찾아들었다. 


♪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내게 남아 있는 작은 힘을 다해 마지막 꿈속에서 모두 잊게 모두 잊게 해 줄 바다를 건널 거야'

(패닉 '달팽이' 가사 중 일부)


노래가 클라이맥스를 향해갈수록 그렁그렁 눈물이 차올랐다. 집에 가는 길이, 진짜,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내가 집을 좋아하는 줄은 알고 있었지만, 눈물까지 글썽이며 집에 가고 싶어 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난감하고 서럽고 한심하고 힘들었다. 평일 오전 10시에 월드컵 경기장을 뱅뱅 돌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사람. 일상의 여유를 즐기고 있는 이들의 눈에는 좀 이상하게 보였을까. 그 사람은 그저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이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고 싶어. 집에 가서 눕고 싶어.....




자판기에서 인스턴트커피를 뽑아 마시고, 햇볕을 받으며 달팽이 노래를 여러 번 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는 내가 마치 달팽이가 된 듯 했다. 집을 지고 기어가는 달팽이야, 나는 있잖아, 차를 타고 집까지 가야해. 좋겠다 너는. 집이 바로 등 위에 있어서. 내 집은 너무 멀어. 


다시 운전석에 앉기까지 한참이 걸렸지만, 결국은 집으로 돌아왔다. 기억에 남은 것이 별로 없는 것으니, 아마도 특별한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와 현관에 털썩 누워 '무사 귀가'에 감격하며 피식거렸으리라. 이날 이후로도 주 2~3회는, 가기 싫다는 내 맘을 내리누르며 월드컵 경기장으로 향했다. 50km 정도의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됐고, 옆 칸에 차가 있어도 주차를 할 수 있게 됐다. 이 과정을 통해 내가 깨달은 건, 정말, 돈의 힘이었다. 어린 시절 자전거를 '사 버렸다면' 나는 아마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분명하게 들었다. 월드컵 경기장이고 뭐고 운전석에 앉기 싫은 날마다 나를 움직인 건 딱 하나. '이 돈을 썼는데, 이 차를 타야 할 거 아니야?' 하는 생각이었다. 1000만 원을 할부로 샀잖니! 보험도 들었고 연수도 받았잖아! 이 돈을 썼으면 타야 할 거 아니야?!

.................... 자본주의 세상. 역시 돈의 힘은 굉장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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