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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림 Sep 30. 2023

어서 와, 운전연수는 처음이지?

운전 연수를 신청해야 했다. 지인에게서 배우는 경우도 많다고는 들었지만 처음부터 고려하지도 않았다. 나는 분명 헤맬 것이고, 분명 말귀를 못 알아들을 것인데, 몇 안 되는 인간관계를 이런 일로 위험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사실, 평일 대낮에 부탁할 만한 사람이 없기도 했다. 운전연수를 신청하기 전에 세운 기준은 두 가지였다. 

하나, 내 차로 운전을 배울 것 

둘, 여자 선생님을 구할 것

.... 이런 식의 계획을 세우는 데 익숙한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정말 어쩌다 차를 덜컥 산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정말 미치지 않고서야 싶지만!!) 되돌릴 수는 없는 일이므로 일단 앞을 향해 나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포털창에 '운전연수' 네 글자만 입력해도 전국  규모 업체가 수두룩하게 검색되어 나왔다. 대부분의 업체에서는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도록 했다. 운전연수 선생님의 차를 타고 연수를 받는 방법과 자차로 연수를 받는 방법. 나는 무조건 자차연수를 원했다. 40여 년 함께 한, 내 몸의 감각에 대한 절대적인 불신이 가장 큰 이유였다. 다른 차를 운전하다가 그 경험을 응용해서 내 차를 운전하는 일 같은 것을, 내가 해내려면 아주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았다. 


그리고 원했던 건 여자 선생님. 이혼소송을 시작하면서 여러 변호사 사무실을 다녔던 경험이 이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었다. 나는 왜인지 남자 변호사를 마주하면 똑바로 말을 하기가 어려웠었다. 상대가 하는 말에 반박을 하는 것도 어려웠고, 내 생각을 조리 있게 펼쳐내지도 못했다. 꾸준히 회사를 다니던 나였기에, 이런 스스로가 꽤나 한심하게 느껴졌었다. 이게 뭐야. 바보냐? 어쨌거나 상황을 받아들일 필요는 있었다. 7년 여의 결혼생활이 낯선 남자라는 존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런 결과를 가져왔나 보다, 짐작할 수밖에. 

   

어쨌거나 이런 상황이니 여자 선생님이 필요했다. 여러 업체와 상담을 하면서 깨달았던 건, 여자 선생님을 원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사실이었다. 여자 선생님을 원할 경우, 평균적으로 1~2주는 기다려야 했다. 처음엔 '나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이 많은 걸까?' 하는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 다들 이혼 후 차를 사고 남자를 불편하게 여기게 된 걸까? 

한 업체에서 들려줬던 답변이 기억이 난다. 일단 수많은 강사 중 여자 선생님 비율이 압도적으로 적다고 했다. 그럼에도 도로연수를 원하는 성별은 여성이 많았고, 여성 수강자 대다수는 여자 선생님을 원한다고. 수요는 많고 공급이 적으니 예약이 밀릴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었다. 육아휴직자인 내 상황에서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예약을 하고 몇 주를 기다렸다. 


연수 당일, 나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선생님을 만났다. 이 선생님을 만났던 건 행운이었다. 차종은 달랐지만 쉐보레에서 나온 차를 타고 계셨기에 차에 대해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나 궁금했던 트렁크 여는 법도 배웠고, 보닛 여는 버튼도 알게 됐고(.. 아직 혼자 열어본 적은 없다), 운전석 쪽을 장식하고 있는 수많은 버튼의 사용법도 배울 수 있었다. 하루 2시간, 아이를 학교에 보낸 후 월화수목금요일 운전을 배웠다. 대망의 마지막날이 다가올 때쯤, 나는 새로운 업체에 연락해 새로운 선생님을 다음 주에 예약해 두는 치사함(?)을 선보였다. 목요일이 됐을 때 온몸으로 알 수 있었다. 이대로는 아이를 태울 수 없어!! 도로연수가 더 필요해!! 


하지만 여자선생님만 고집했던 처음의 태도는 버린 채였다. 당장 다음 주부터 수업을 듣기를 원했고, 성별이 같은 여자라 해도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꽤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좀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할 것도 같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선생님을 자주 자극했기 때문에 선생님은 자주 내 이름을 목이 터져라 부르셔야 했고, 깜짝 놀랄 만한 큰 소리에 나는 자주 주눅이 들었다. 주눅이 들었다는 건 어찌할 바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고, 나는 남자변호사를 마주했을 때만큼이나 허둥대곤 했었다. 그러니까 이건, 내 문제였다. 하이톤으로 내 이름이 크게 불렸던 기억나는 한 장면. 유턴을 하다가 나는 우뚝 멈춰 섰다. 앞 앞차도, 앞차도 잘도 유턴을 해서 돌아갔지만 눈앞의 보도블록이 정말 부딪힐 것만 같아서 유턴 중 나는 브레이크를 밟아버렸다. 

"ㅇㅇ씨!!!! 가져야죠!!!! 뒤에 차 와요!!!!"

"박.... 박을 것 같아요!!"

"안 박아요! 가세..."

빠아아아아아아앙! 

선생님의 끝마디는 뒤차의 우렁찬 클랙슨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도 않았다. 




누가 봐도 내가 잘못한 걸,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연수를 이어가야 했고, 소리 지르지 않을 선생님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나이가 많고 경험이 많은 남자선생님을 요청했다. 


나의 두 번째 선생님. 60대쯤 되셨을까. 선생님은 스스로도 경력이 오래되셨다고 자신을 소개하셨다. 지난주의 경험을 돌아보건대, 이 위험한 일을 오래 하셨다니 엄청나다 싶기도 했었다. 이 1:1 연수를 받으면서 가장 많이 느낀 건, 이분들이 정말 위험한 일을 하고 계신다는 사실이었다. 나만큼 헤매는 사람이 세상 유일하게 나 하나인 건 아닐 텐데, 안전장치 하나 없는 남의 차에 올라타서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상대에게 핸들을 맡기고 전후좌우를 다 살피며 길을 알려주는 일. 이건 정말 위험수당이 필요한 일이 맞았다. 평균적으로 10시간에 25~30만 원 정도인 도로연수는 따지고 보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은 아닌 듯했다.


어쨌거나 이 분은 다행히 엄청나게 느긋하셨다. 

"핸들이 이상해요!!! 차가 차선 가운데로 안 가요!!!" 내가 아무리 다급하게 외쳐도 정말 절대로 동요하지 않으셨다. 목소리가 커지는 일도 없었다. 

"다시~ 가운데로 맞추면 됩니다. 차선에 적힌 숫자가 오른쪽 다리 위로 지나가면 차선 가운데다~ 이건 배웠잖아요? 다시~ 좀 더 왼쪽~ 어허~ 이 정도면 옆차선에서 화나죠~." 

뭐랄까, 도로 상황을 중계해 주시는 듯한 느낌이랄까? 실제로 선생님이 "어허~" 하실 때면, 옆차든 뒤차든 기다렸다는 듯 클랙슨을 울렸다. 빵! 빵! 수많은 운전연수 경험은, 이분을 어떤 득도의 경지에 다다르게 만든 것 같았다. 여자 선생님은 주로 차 많은 시내로 나를 이끌었고 마트 지하 주차장을 경험시키셨지만(절대 이분이 잘못 가르치셨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초보자에게 필요한 경험-셀프주유, 주차장 등등은 이분이 다 가르쳐주셨다), 두 번째 선생님은 외곽으로 멀리로 나를 이끌고 다니셨다. 뒤차가 아무리 빵빵대도 "이런 속도로 가면, 화가 날 수 있겠죠~ 밟으셔야 해요~" 하는 식이었다. 원래 성격이 여유가 있으신 건지, 엄청난 경험치가 이분을 이렇게 단련시킨 건지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선생님을 생각하면 한 가지 기억이 떠오른다. 첫 만남. 처음 만나 20분 남짓 흘렀을 때, 그러니까 주차장에서 차를 빼서 주춤주춤주춤 20번쯤을 거쳐서 겨우 골목을 벗어났을 때, 선생님은 차분한 목소리로 내게 물으셨다. 

"자전거 못 타시죠~?"

내가 얘기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런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어떻게 아셨어요?'를 묻고 싶었다. 문제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선생님을 바라봤다는 것과 내가 운전 중이었다는 사실. 나보다 선생님의 말이 더 빨랐다. "어허~ 앞을 보셔야죠~" 

아무튼 선생님은, 타고난 운동신경에 따라 운전에 익숙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다고 하셨다. 수~많은 학생들을 봤을 때 자전거를 타본 적이 없거나 노력했어도 못 탄 사람의 경우엔 시간이 더 오래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그리곤 한 제자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ㅇㅇ씨처럼 자전거 못 타고, 스스로도 운동신경이 없다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연수를 8번인가 9번 받으셨어요. 지금은 혼자 차 잘~몰고 다니세요."

그것은 언젠가는 잘하게 된다는 격려였을까, 연수를 더 받아야 한다는 충고였을까. 지금도 잘 모르겠다. 내가 순간 떠올린 건 오로지 계산기였다. 평균 25만 원에 곱하기 8을 하면... 200?? 연수에만 200을 들여야 혼자 차를 몰 수 있게 되는 거야? 맙소사! 그놈의 자전거가 또 등장할 줄이야! 




아무튼, 그렇게 월화수목금 2시간씩 2주를 배웠다. 총 20시간. 그리고 나는 그 2주 내내 한결같이 온몸이 아팠다. 차에 앉아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하다가, 주차를 하고 선생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면 절로 "하아...." 한숨이 나왔다. 우리 집은 3층. 빌라 계단을 터벅터벅 오를 때면 "아이고, 죽겠다"하는 말이 절로 터져 나왔고, 한 손으로 손잡이를 꽉 잡고 의지하며 힘을 짜내 계단을 올라야 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나 힘든지는 정말 알 길이 없었다. 따지고 보면 가만히 앉아 있었던 2시간인데, 다리는 후들후들 손가락은 달달 떨렸다.


현관문을 열고 신발을 벗고 나면 그대로 현관 앞 바닥에 누워야 했다. 저질 체력이긴 했지만 '온몸의 에너지를 남김없이 다 써버렸다'하는 느낌을 받는 일은 살면서 잘 없었는데, 연수 후에는 늘 그런 기분을 느꼈다. 몇 걸음만 더 가면 침대였지만, 정말 도저히 움직일 힘이 없었다. 현관 쪽 바닥에 털썩 누우면 '와........... 오늘도 살아 돌아왔다.......!'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세상에!!!! 집이다!!! 오늘도 살아서 집까지 왔어!!!


고작 2시간 운전하고 힘이 다 빠져 현관에 엎어진 주제에, 집에 왔음을 기뻐하는 내가 너무 웃겼다. 누운 그대로 피식피식 웃다가 돌아누우면서는 또 "아이고, 어우-" 하는 내가 정말 너무 하찮았다. 대체 나는 차에서 무엇을 하는 걸까.  얼마나 용을 써야 이 상태가 되는 걸까. 

어쨌거나, 그렇게 20시간을 도로에서 보내고 나는 용케도 살아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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