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애쓰지 않기
신입 시절,
새벽 1시 생방송을 진행하던 때였다.
심야 시간은 고객에겐 피곤한 하루가 끝나고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시간대다.
참고로 홈쇼핑 생방송은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무려 20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송이다.
그래서 심야 시간대 쇼호스트는
‘더 밝고, 더 생기 있게’
고객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하려고 애쓴다.
졸린 고객의 눈꺼풀 대신
우리의 텐션이 떠받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을 다해 1차 상품 설명을 마치고
주문이 잘 들어왔다.
그리고 시계가 1시 34분을 지나갈 무렵,
2차 설명을 힘차게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심야가 되면 쇼호스트도 슬슬 체력이 떨어지고
입이 꼬이기도 한다. 핑계는 아니다.
아무튼 그날의 상품은 멀티 캠코더였고
방송 타이틀은 <가전 페스티발 시간>이었다.
나는 박력 있게 외쳤다.
“자~ 오늘 가전 패스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렇게 터졌다.
“가전 패스티... C..~발!에”
<가전 패스티발 시간에>가 꼬여
<가전 패스티, 시발에>가 된 거다.
순간,
스튜디오는 일시정지 된 것처럼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같이 진행하던 후배 쇼호스트와 전문게스트,
카메라 스텝, 모델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부조정실의 담당 Pd를 비롯한 모든 스텝들까지 모두 숨을 죽였다.
시간은 멈춘 듯 흘렀고,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내가 지금 씨... 뭐라고 했지?”
“정말 그 발음이 생중계 됐을까?” 등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나는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멘트로 넘어갔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레전드 실수로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깨달았다.
잘해보려는 마음의 감정이 강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사람이 크게 놀라거나 힘들면
시간이 느리게 가다가 멈춘다는 걸.
반대로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