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트의 한 끗 차이 (4)

너무 애쓰지 않기

by 성민기

신입 시절,

새벽 1시 생방송을 진행하던 때였다.

심야 시간은 고객에겐 피곤한 하루가 끝나고

눈꺼풀이 천근만근 내려앉는 시간대다.

참고로 홈쇼핑 생방송은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
무려 20시간 동안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송이다.

그래서 심야 시간대 쇼호스트는
‘더 밝고, 더 생기 있게’
고객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하려고 애쓴다.


졸린 고객의 눈꺼풀 대신
우리의 텐션이 떠받치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열정을 다해 1차 상품 설명을 마치고
주문이 잘 들어왔다.


그리고 시계가 1시 34분을 지나갈 무렵,
2차 설명을 힘차게 다시 시작했다.


그러나 심야가 되면 쇼호스트도 슬슬 체력이 떨어지고
입이 꼬이기도 한다. 핑계는 아니다.


아무튼 그날의 상품은 멀티 캠코더였고
방송 타이틀은 <가전 페스티발 시간>이었다.


나는 박력 있게 외쳤다.
“자~ 오늘 가전 패스티...”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나도 모르게 입에서 이렇게 터졌다.

“가전 패스티... C..~발!에

<가전 패스티발 시간에>가 꼬여
<가전 패스티, 시발에>가 된 거다.

순간,

스튜디오는 일시정지 된 것처럼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흘러갔다.

같이 진행하던 후배 쇼호스트와 전문게스트,

카메라 스텝, 모델 모두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부조정실의 담당 Pd를 비롯한 모든 스텝들까지 모두 숨을 죽였다.

시간은 멈춘 듯 흘렀고,
나는 속으로만 되뇌었다.

“내가 지금 씨... 뭐라고 했지?”

“정말 그 발음이 생중계 됐을까?” 등

만감이 교차했다.


물론 나는 최대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음 멘트로 넘어갔지만,


그 순간만큼은

지금도 레전드 실수로 회자되고 있다.


이 사건 이후, 나는 깨달았다.
잘해보려는 마음의 감정이 강하면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리고 사람이 크게 놀라거나 힘들면

시간이 느리게 가다가 멈춘다는 걸.


반대로 시간이 빨리 간다는 건

좋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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