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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g Sep 11. 2023

어쨌든 강해졌다

좋은 건가

절망과 고통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이게 내 인생의 바닥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든 적 없다. 그 당시의 힘든 느낌을 약화시키기 위해 발동한 방어기제일지도 모르지만, 또 사실만 짚어 보면 난 아직 잃을 것이 많은 - 긍정적으로 말하자면 가진 것이 많은 - 것도 사실이었기에.


그 덕분일까, 아니면 우울함과 절망에 면역이라도 생긴 걸까. 사실만 본다면 (팩트 좋아한다 ㅇㅇ) 더욱더 절망적인 상황에 빠졌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은 오히려 차분하다. 너무 어색한 차분함이라 사실 이것이 무감각의 상태인가도 싶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어떤 상황과 비교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담담하게 “응, 나 곧 죽는대. “라고 말하는 기분이랄까? 아 그런데 사실 잠깐이지만 시한부 선고를 받는 게 차라리 낫겠다는 생각을 했으니 완전한 무감각은 아니었을까.


이틀을 못 넘기고 터지던 눈물이 잠잠해진 지 며칠이나 지났다. 지난주만 해도 숨이 넘어가도록 울어재끼느라 친구들과의 약속에 거의 한 시간이나 늦는 민폐를 범했는데, 요 며칠 그러지 않았다고 인생이 조금은 정상궤도로 돌아온 느낌이다. 오늘도 조용하지만 뜨거운 눈물만을 흘리고 말았으니 좀 괜찮은 거 아닐까. 사실을 그렇게나 좋아하지만 기분에는 이리도 휘둘리는 사람이었다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며칠 전까지만 해도 머릿속에는 ‘못 죽어서 사는 꼴이로구나’ 하는 메시지가 하루종일 메아리쳤다. 계절이 바뀌고 또 다른 한 학기가 시작되는 9월, 생일과 추석까지 있는 이 달은 가장 에너지가 넘치는 시간이었다. 작년의 9월과 지금의 나를 비교해 보니 내가 너무 불쌍했다. 그래도 작년까지는 삶이 이렇게 될 줄 모르고 기대도 즐거움도 느꼈구나.


가족에게 평생 생각도 못했던 제안을 하고, 계획에 전혀 없던 결정을 이야기한다.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지만 무서워서 시도 비슷한 것도 하지 않으리란 나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것이 더욱 절망스럽다는 이야기를 매일같이 남편에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내가 남이라고 생각하고 말을 얹는다면, 일단은 쭉 살아보면 예상치 못한 방향이나 일이 생길 거라는 이야기를 건네겠지.


희망을 입에 올리기엔 너무 무너져버렸다. 오늘도 내일도 기대되는 것은 없고, 여전히 속이 텅 비어 있는 가운데 눈물만 나는 일상이지만 그래도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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