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amidento Feb 16. 2017

기묘한 이야기

feat. 층간 소음

 이것은 층간 소음으로 인한 이웃 간의 분쟁 내지는 불화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가 스스로 믿어 의심치 않는 이성에 근거한 판단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술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짧은 해프닝이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릴 것 같다.



 우리 윗집에는 오래된 노부부가 단둘이 살고 있는데, 이건 믿을만한 소식통을 통해 들은 것이니 아마 사실일 것이다. (믿을 만한 소식통=경비원) 근데 이 할머니, 밤낮없이 쿵쿵거리면서 마늘을 빻는 것은 기본이고 도대체 무얼 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정말 쉴 새 없이 상당량의 물을 내다 버린다.



쉴. 새. 없. 이.



정말 말 그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이 물을 버리는데 낮에는 물론이고 새벽에도 이 행위는 그치지 않는다. 새벽 1시쯤에 버리는 건 이른 편에 속하고 정말 새벽 3시 혹은 4시쯤에도 이 물 버리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쯤 되니 이 소리 자체가 주는 거슬림보다는 대체 지금 윗집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하는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우린 농담 반 진담 반, 정말 토막 살인 사건이라도 난 걸까 하는 생각까지 했으니까.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과도 같은 스토리가 윗집에서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니 뒤꼭지가 쭈뼜섰다. 하지만 그러기엔 두 노인이 무슨 기력이 있어서 토막을 그것도 매주 한 명씩 낸단 말인가. 결국 나미와 난 소일 삼아 김치를 만들어 내다 팔고 있다, 라는 우리가 위안 삼을 수 있는 현실 타협적인 결론을 내리고 맘 편히 살기로 했다. 낮, 밤,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쿵쿵 울려대는 마늘 빻는 소리와 물 내다 버리는 소리는 우리에게 적잖은 스트레스를 줬지만, 그 정도는 오래된 아파트에 들어와 살기로 한 우리가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결정적으로 그렇게 너그러워질 수 있었던 계기는 작년 어느 여름날 새벽(5시가 조금 안됐었는데, 지금도 그때 기억이 생생하다) 윗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알고 난 뒤부터였다. 갑자기 아이고~ 아이고~ 하는 곡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는데, 순간적으로 알 수 있었다. 두 분 중 한 분이 돌아가셨다는 걸. 조금은 섬뜩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래도 주무시다 돌아가신 건 복이라 생각하고 이내 난 다시 별일 아니란 듯 잠을 청했다. 전날의 밤샘 작업 앞엔 귀신도 별 수 없다. 그야말로 죽음이란 삶의 대극으로서가 아닌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는 돈오의 새벽이었다. 그리고 한동안은 두 눈이 퉁퉁 부은 채로 다니시던 할머니를 볼 수 있었고, 우린 조만간 이 집에서 이사를 가시겠구나 하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맘 편히 물을 내다 버리시라고, 그게 홀로 남겨진 할머니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 예상보다 한참 그 이상을 할머니는 홀로 마늘을 빻고, 불철주야 물을 내려보내면서 그 집을 지켰다.

 


 사람의 적응 능력이란 게 참 대단해서 어느덧 새벽의 물 버리는 소리가 자연스레 우리 삶의 일 부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난 그날 이후 물 버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기찻길 옆에 살면서 지나가는 기차 소리에 맞춰서 섹스를 했다던 하루키의 단편 소설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얼마 전 윗집에 이사 사다리가 걸쳐졌다. 드디어 그날이 온 건가. 이육사의 광야가 절로 떠올랐다. 나미와 난 조촐한 축배라도 들고 싶을 정도였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신경을 긁어대던 물 버리는 소리가 이제 내일부터는 정말로 안녕이란 말이지. 난 여전히 믿기지가 않았다. 그 망령이 이리 쉽게 떠날 거라곤 생각지 않았었으니까. 혹여 중간에 새로 가구가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싶어 경비 아저씨로부터 몰래 확인까지 마쳤다. 이것이 정녕 이사가 맞느냐고. 하지만 윗집 할머니의 이사는 사실이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웠던 것은 마지막으로 떠나는 할머니를 붙잡고 도대체 그 안에서 뭘 하신 게냐고 묻고 싶었는데, 그걸 묻지 못하고, 오리엔탈 특급 사건처럼 끝까지 미궁으로 남은 채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는 거 그것이 아쉬웠다면 좀 아쉬웠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너무나도 자연스러워서 처음엔 깨닫지 못했다. 처음엔 난 내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리는 설마?


쏴아~~~~


그랬다. 그놈의 물 버리는 소리는 여. 전. 히. 나고 있었다. 너무 당황스러웠다. 처음엔 뭐가 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다음날 바로 경비 아저씨께 따지듯 (아저씬 무슨 죄야) 물어봤다. 우리 윗집 이사 나간 거 맞냐고. 정말 확실히 그 할머니 이사 간 것 맞냐고 혹시 다른 집이냐고. 분명 그 할머니는 이사 가신 것이 맞았다. 경비 아저씨는 그 할머니가 어느 동네로 이사 갔는지까지 알려줬다. 정말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결국 그 물 버리는 소리는 할머니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대전제부터 잘못된 것이다. 헐. 정말 말 그대로 헐 이었다. 지난 몇 년간 할머니는 억울하게 토막 살인 사건의 주인공이었다 가내 수공업 김치 판매자였다 하면서 나에게 미움 아닌 미움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와~ 정말 유주얼 서스펙트를 보면서 겪었던 반전보다 더한 반전을 실제로 느끼게 될 줄이야. 다시 한번 층간 소음의 확실한 진원지는 생각보다 알기 어렵구나라는 LH 공사 같은 멘트를 혼자 중얼거리며 아니 그렇다면 도대체 어느 집에서 이렇게 불철주야 물을 버리고 있다는 얘긴가? 두 노부부가 아니라면 다시 이야기는 원점으로 돌아가 이거 진짜로 토막 살인 사건일 수도 있단 얘기잖은가??? 하지만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쉽다. 난 이내 이 정체불명의 소리의 근원을 찾기를 포기한 채, 다시 기찻길 옆 커플의 섹스를 떠올리며 잠을 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이제, 슬슬 이 길고도 별 내용 없는 글의 마무리를 지을 시간이다. 다음날, 난 허탈한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내가 목격한 것은 분명 위에서 이사 갔다던 그 할머니가 유유자적 우리 집 엘리베이터에서 걸어 나오는 모습이었다. 다시 한번 이야기를 원 점으로 돌린 이 사건의 진실은, 윗집에 새로 이사 온 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 자식 식구들이었고, 할머니는 다른 동네로 이사 간 것은 맞지만, 여전히 이 집에 자주 들락거리신다는 것. 그렇다면 다시 그 물 내리는 소리의 주인은 할머니가 맞다는 거야? 아니라는 거야? 김장을 하셨다는 거야? 토막을 냈다는 거야? ㅎㅎㅎ 하지만 난 이제 더 이상 이 이슈에 대해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신 이 일로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 내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결론 내버렸던 수많은 팩트들이 사실은 얼마나 허물어지기 쉬운 잘못된 정보 위에 존재하고 있느냐는 것이었다. 덕분에 오늘도 난 여전히 새벽의 물소리를 듣고 있지만, 더 이상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일은 없어졌다. 고맙다고 한다면 고마운 일이다 ^^

할머니 만수무강하셈.

fin.


2011.

작가의 이전글 헬 카페_임성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