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한 마침표를 찍는 관계의 아름다움
문득 이별의 결정적인 장면이 있다는 건 축복이라는 생각을 했다.
수많은 이유들로 갈등이 일어나고 관계가 끝나게 되지만, 갑작스런 사고 같은 이별은 드물다. 특히 연애에 대해서는. 균열은 두 사람 사이에서 슬그머니 시작되곤 한다. 불안한 징조가 뒤따르고 외면할 수 없는 슬픈 예감이 불쑥 불쑥 찾아온다. 막연히 느껴질 뿐인 이별의 징조를 얼마나 예민하게 포착하고 진지하게 문제삼는지에 따라 한 사람이 겪는 이별의 과정은 달라진다. 찰나의 예감은 불안을 야기하고 그 불안은 한 존재를 잠식한다. 그리고 서서히, 마음의 고운 힘들을 갉아먹는다. 속없는 쾌활함, 너그러운 이해와 용서, 좋은 것만을 보고 낙관하던 자세가 사라진다. 실망과 원망, 의심이 쌓이고 수지타산의 이상한 계산식을 대입하게 되면서 쓸쓸하게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추락한다. 서로간 조금씩 시들어가는 열정과 침묵과 감정의 찌꺼기들. 그 차갑고 뜨거운 싸움들이 더 나은 '우리'를 위해 나아가는 노력이 아니라, 더 이상 '우리'가 아니게 되는 예견된 결말의 전조라고 생각하게 되는 순간. 이미 끝은 거기에 있다. 이 전조에 애써 눈감으며 끝을 지연시키는 노력이 더 괴로웁게 이별을 증식시키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지난한 시간동안 이별을 조금씩 받아들이고 행해왔던 관계는 그 끝이 하나의 특정한 장면으로 고정되기가 쉽지 않다. 시간이 흐른 뒤 회상해보려 해도 그 때 그 관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끝났는지 떠올릴 수 없다. 끝을 선언하는 순간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이별의 결정적인 장면으로 각인되지 않으니까 말이다. 오래전부터 천천히 이별해왔던 관계에서는 마지막 장면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긴 시간 축적된 무겁고도 답답한, 가슴 한켠을 꽈악 옥죄는 느낌의 일부만이 살아날 거다. 마치 손 끝으로 오래 비비어 뭉갠 나머지 경계가 분명하지 않은 그림처럼. 헤어짐을 너무 괴롭게 느끼거나 반대로 너무나 쉽게 여기는 나머지, 직접 만나지 않은 채 관계를 끝내는 연인들도 있다. 길고도 짧은 메시지로 마지막을 통보하기도 하고 '읽씹 후 잠수'나 '차단'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고. 관계의 의미에 대해서는 당사자들이 가장 잘 알겠지만, 나는 이런 관계끊기의 방식이 서로를 배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비겁하기까지 하다고 느낀다. (물론 이런 식으로밖에 내칠 수 없는 비상식적인 이들도 존재하지만) 적어도 장기간 마음을 나누고 서로를 아껴왔던 연인이라면 마지막까지 그 관계를 잘 매듭지으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아름다운 이별은 없지만 이별의 아름다운 방식은 있다고 난 믿는다. 그건 함께 했던 이전 시간에 대한 존중이면서 동시에 앞으로 각자의 길을 갈 두 사람을 위한 애도이기도 하다. 미처 하지 못한 말, 전하지 못한 감정을 털어놓을 기회를 서로에게 허용하지 않은 채 성급하고 서툴게 끝을 봉합해버리면, 해소되지 못한 것들이 착잡한 이물감으로 오래 남는다. 그것들이 새롭게 시작한 나날들 속에서 불현듯 내 발목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후회나 미련, 회한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다.
나는 연애를 시작하면 오래 만나는 편이었고 그래서인지 이별도 오랜 시간에 걸쳐 조금씩 해왔다. 대부분의 이별의 기억이 희미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 그러나 절대 잊혀지지 않는 이별의 장면이 내게도 하나 있다. 봄이 한창 짙어가던 평일의 정오였다. 그날의 화창한 하늘과 우리가 마지막 식사를 했던 식당의 통창 한 켠으로 늘어진 꽃나무의 무거운 가지를 기억한다. 그 때 우리는 둘 다 끝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대화는 무거웠고 나는 내 몫의 밥을 절반도 먹지 못했지만 늘 그랬듯 가장 맛있는 반찬을 그의 수저 위에 올려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마실 여유 없이 차를 탔다.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그는 학교 정문에 나를 내려주겠다고 했다. 운전을 하면서 그는 '이게 정말 우리의 마지막이야?' 라고 물었고 '응, 마지막이야'라는 나의 대답으로 그 순간은 영영 우리의 마지막 장면으로 박제됐다. 그는 내가 내려달라고 했던 지점이 오래 정차를 할 수 없는 횡단보도임을 알고 울먹였다.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헤어지는건가?' 눈물이 차오른 그의 오른뺨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던 기억이 난다. 전방을 주시해야 하면서도 옆자리의 나를 틈틈이 돌아보았던 그의 젖은 시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뒤따라 오는 차들에 속력을 줄이지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오른팔을 다독이며 '끝은 이래도 그동안 너무 행복했으니까'라고 난 진심을 말했다. 그가 깜빡이를 키고 차를 인도변에 댔다. 나는 얼른 차문을 열어 뛰어 내렸고 명랑하게 안녕!을 외치며 문을 닫았다.
그는 빵빵거리는 경적 소리에 쫓기듯 길을 떠났고 그의 차가 멀어지자마자 나는 무너졌다. 정말 끝이었으니까. 신호가 바뀌고 6차선을 가로지르는 횡단보도의 무성한 인파 속에서 나도 발 맞춰 걸었지만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강의실 앞에 도착하기까지 순전히 울음 때문에 계속해서 걸음을 멈춰야했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아야 해서, 호흡이 차올라서, 소리를 틀어막기 위해,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는 차 안에 혼자 남겨진 그가 나처럼 울고 있을 것임을 알았다. 우리는 각자가 감당해야 할 슬픔의 몫을 꺼내놓지 않으려 부단히 애썼다. 그것이 우리의 마지막이었다. 학교 정문 앞 횡단보도에서 강의실에 이르는 캠퍼스는 여전히 내가 매일 걸어야 하는 길이다. 몇 년이 지난 후에도 그 길 위에서 그 날 이별의 오랜 파편을 발견할 때가 있다. 오래 닳아 모서리가 뭉특해진 그 조각들은 더이상 내게 상처가 되지 못한다. 어떤 날은 추억으로, 어떤 날은 행복으로, 또 어떤 날은 여전히 깊은 사랑으로 내가 미소지을 수 있게 해준다. 그럴 수 있던 이유는 한때 너무나 사랑했던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그 따뜻한 시선에 다정하게 응하며 마지막을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헤어진 이유는 수백가지였지만, 어쩌면 단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를 인정하기 싫었기 때문에 수백가지의 이유를 만들었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랜 갈등과 고민 끝에 우리가 끝을 결정했을 때,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변명처럼 그 이유들을 되풀이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에게 가장 중요했고 앞으로 가장 든든한 힘이 될 몇 마디를 신중하게 골라 들려주었다. 고마웠고, 사랑했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거라는.
이별의 장면은 깊은 사랑과 용기에 의해 만들어진다. 결말이 쓰여지지 않은 글이 완성되었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한 관계와 그 사랑이 진정한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서로가 함께 분명한 마침표를 찍었을 때라는 걸. 각자의 슬픔과 힘듦의 몫을 잘 감당해 나가리라 믿으며, 마지막까지 아름답고자 하는 서로의 노력이 필요한 거다. 지난밤 긴긴 포옹을 나누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