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한 취미이긴 한데, 바쁘고 피곤할 때 줄창 영상을 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 그 중 제일은 봤던 드라마 또 보기. 좋아하는 드라마가 몇 개 있는데 지난 주에 고른 건 ‘마더’였다.
다섯 손가락 안에 손에 꼽히는 인생 드라마, 스토리도 굉장하고 출연진의 연기가 다들 미쳤다. 줄거리를 정리해보자면 엄마와 동거남으로부터 아동 학대를 당하는 아이 '혜나의 임시 담임교사로, '수진'이 오게 된다. 수진은 혜나와 똑같이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동거남에게 학대 당한 피해자였고, 그 후 보육원에서 길러지다가 입양을 가고 굉장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지만 여전히 결핍을 가진 인물이다. 엄마와 동거남이 혜나를 쓰레기 봉지에 넣어 묶어 집 앞에 버린 추운 겨울 밤, 임시 교사 일을 마치고 유학을 떠나기 전 수진은 혜나의 집에 갔다가 쓰레기 봉지 속 혜나를 보게 되고 유괴하기로 결심한다. 아동 학대 피해자인 아이에게 자신을 그대로 투영해서 보고, 직접 낳지 않았지만 평생 사랑으로 길러준 엄마를 보며, 그런 이해할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선택을 한 거다. 아이를 유괴하다니. 설정이 참 어마어마하다. 결국엔 경찰에 붙잡히게 되고 임시교사의 엄마는 유괴범이 된 자신의 딸을 위해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다.
[ 자기 배로 애를 낳아야만 엄마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여자가 엄마가 된다는 건, 다른 작은 존재한테 자기를 다 내어줄 때에요. 혜나 엄마는 낳기만 낳았지 엄마가 아니고요. 우리 수진이가 진짜 엄마에요. ]
이 드라마를 몇 번이나 봤다. 아주 무거운 주제에 대해 아주 무거운 마음으로 보지만 가끔 한번씩 생각이 나거든. 세상에 없을 것 같은, 드라마 같은 사랑 이야기를 보며 생각한다. ‘엄마란 뭘까.’
특히 저 대사가 나오는 장면을 보며 ‘엄마가 되는 걸, 나 스스로 선택하긴 쉽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엄마는 아이에게 자기를 다 내어주는 것. 그것이 '모성 신화' 같은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이런 부담스러운 워딩 때문에 좋은 엄마 콤플렉스가 생기고, 수 많은 엄마들에게 죄책감을 심어준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실은 내 주위 사람들을 봐도, 우리 엄마나 언니를 봐도, 철 없던 시절부터 함께 했던 친구들을 봐도 ‘엄마’의 위치가 되면 거의 대부분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걸 봤다. 객관적으로 좋은 엄마가 아닐지라도(근데 좋은 엄마의 객관은 뭐고 주관은 뭘까) 정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혼자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내는 과정이, 내 것을 다 내놓지 않고서 가능한 일이냐는거다.
누군들 안 그렇겠냐마는 나는 '다 내어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사람이었다. 몇 번에 연애에서도, 사랑해 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가족 관계에서도, 다 내어주는 것이 싫었다. 더 솔직한 감정은 내 삶이 낭비되는 것이 싫었다. 낭비라니. 며칠 전 읽은 책에서 이 문장을 만나고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무척 찔렸다.
나는 엄마의 유일한 딸이라서 모든 마음을 다 받고 자랐다. 염려, 걱정, 사랑. 엄마를 사랑하면서 엄마 곁에서 보내는 시간을 낭비로 여긴다는 게 미안하다. 엄마는 나를 키우는 동안 자신의 삶이 낭비되고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을까.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때, 기저귀를 갈 때, 우유를 먹일 때. 121p, <페퍼민트>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나 같은 사람은 그저 혼자인 것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유익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기적이라 숨길 수 없는 두려움을 잊을 만큼 강렬한 감정이 찾아오지 않는 한, 누군가의 엄마가 될 일은 없겠구나 생각했다. 드림스 컴 트루. 꿈(!)이 이루어졌다. 결혼하지 않고 혼자 중년으로 접어 들었다. 누구라서 자신이 있어 했겠냐고, 닥치면 다 하게 된다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는 말에도 나는 그 일이 내게 닥치지 않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는 고사하고 강아지에게도. 아직도 여전히. 한번씩 내 마음을 마주한다. 조금도 허투루 내어주고 싶지 않으면서, 그러면서도 아무에게 아무 존재가 되지 않는 것이 쓸쓸하다고 말하는 것에 약간의 죄책감을 느낀다지만 외로움 때문에 아이를 나을 순 없다. 그럴 수는 없는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