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것들이 발전을 가로막는 역설에 대해서
같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번역서의 경우 어떻게 제목을 잡고 책 디자인을 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책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다. 번역하는 사람과 출판사의 의도가 보이는 경우다. 아마도 출간 당시의 사회적 이슈나 시장의 반응을 고려하기도 하고 때로는 책을 통해서 사회에 던지는 의도된 메시지인 경우도 있다.
2016년 국내에서 출간된 '아웃사이트'라는 책이 딱 그런 경우다.
원래 이 책은 유수 경영대학원 인시아드의 조직행동론 교수인 허마니아 아이바라의 저서이다.
원저서의 제목은 한국 번역서의 부제 '리더처럼 행동하고 리더처럼 생각하라!'였다.
그래도 한국 번역서는 나름 저자의 주제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 책이 중국으로 오면서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다. 제목도!
중국어 번역서의 제목은 '능력의 덫(能力陷阱)'이다. 부제도 '능력은 강점이면서 덫이다'
이 세책이 모두 같은 저자, 동일한 서적이라는 게 믿기지 않는다.
아마도 저자가 의도했던 글의 주제는 원서의 제목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뭐 당연히도 저자가 출판사와 직접 협의하고 의사결정에 참여했을 테니까. 그런데 한국 번역서는 다분히 출판사의 마케팅 의도가 들어갔다고 보인다. 인싸이트에 대조되는 아웃사이트라는 단어를 통해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겠다고 했던 것 같다.
저자인 아이바라 교수가 당시에 한국을 방문해서 인터뷰했던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09/14/2016091401216.html
그래도 한국의 상황은 어느 정도 저자와 협의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중국판은 어땠을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제목 자체가 참 자극적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면 왜 이러한 주제를 강조하고자 했는지 이해가 된다. 그리고, 현재의 중국 경제 환경에서 출판사가 왜 이점을 강조했는지도 어느 정도 수긍하게 된다.
원래 아이바라 교수는 타깃 했던 독자는 조직 내 역할이 바뀌게 된 승진자 또는 신임 리더, 임원을 대상으로 했다. 그리고 주고 싶었던 조언은 리더가 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역할이고 이를 위해서는 이전에 자신이 인정받았던 것들을 리셋하고 재정의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리더의 역할은 외부의 지식과 새로운 변화의 동력을 조직 안으로 들여오는 것,
그리고 먼저 행동의 변화를 줌으로 사고의 틀을 바꿀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아이바라 교수가 제시한 것이 Authenticity trap이라는 자기 점검 프레임이다.
현재 자신을 인정받게 해 준, 자신 있는 그 무엇, 잘하는 어떤 영역 또는 능력에 집착하려고 하지 않는지를 먼저 점검해 보라는 조언이다.
이 조언과 동일한 맥락으로는 세계적인 리더십 개발의 구루, 마샬 골드스미스의 2007년 발간되었던 책이 생각난다.
10년도 지났지만 진리는 시공을 초월해서 여전히 유효하다. 리더들, 특히 신임 리더나 임원들에게 주고 싶은 그 지혜의 충고가 압축되어 있다.
여기까지 잘 해왔는데, 앞으로 더 성장하고 인정받는 리더가 되려면 이전처럼 해서는 안될 거야. 명심해 더 이상 이전의 성공방식이 통하지 않을 테니까...'
아이바라 교수의 책을 '능력의 덫'이라고 명명한 중국 번역서에서도 아마도 같은 메시지를 중국 사회 전체에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로 누구나 다 이전과 같은 생활로 복귀가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국가 간 교류의 단절,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상화, 언택트 경제 등등... 모두 변화, 변혁을 이야기한다.
중국의 경우, 이미 이러한 변화의 사회적 요구가 이전부터 있어왔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서 중진국의 반열에 오르며 빈부격차에서 야기되는 사회적 갈등도 이미 표출화되었고, 미중 무역전쟁의 패권 쟁탈전에서 수출 위주의 경제 구조에서 내수에 무게를 두려는 정부의 정책도 발표되었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미국을 제치고 최대 소비국가의 반열에 오르며, 특히 소비자들의 구매력과 성장 가능성에서는 대체할 수 없는 마켓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세계의 유수 브랜드들 모두가 중국 시장에 진출하지 못해 안달이었고, 중국 기업들도 3,4선 도시들의 소득 증가와 더불어 거대한 잠재 구매력을 가진 신흥 소비세력과 밀레니얼로 대표되는 1990년대 이후 출생자들의 젊은이들이 소비 주력으로 떠오르면 잠시 정체되었던 성장의 기세를 다시 이어가기 위해 조치를 진행 중에 있었다. 거기에 팡팡 터지는 더블11으로 대표되는 이커머스의 폭발적 성장도 중국 기업과 경영자들에게는 자신감의 이유가 되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을 거짓말처럼 부정해 버리고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보게 한 것이 바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였다.
확실히 현재 상황을 놓고 보면 사회 전반으로 변화의 순간에 들어선 것은 확실하다.
4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지만 시장과 경제의 관점에서는 살아남을 곳과 도태되어 사라질 것들의 기준점은 명확해졌다고 보인다. 외부의 충격에 의한 혁신의 일정이 당겨졌고, 디지털라이제이션의 변화를 이끌어 낸 곳은 그렇지 못한 곳과 확실한 경쟁력의 차이를 드러낼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특히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고 전통적인 영업 채널의 비중이 높았던 산업에서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위의 그래프는 현재의 회사에서 최근에 분석한 영업라인의 판매사 실적과 관련한 자료에 대한 것이다.
Y축은 4월 한 달간 판매사들의 오프라인 매장에서의 실적이다.
X축은 새롭게 회사에서 구축, 전개한 SNS을 통한 소셜커머스의 개인 판매 실적에 대한 것이다.
두 가지 실적을 놓고 산포도를 그려보니 재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이론적으로는 오프라인 실적이 좋은 직원들은 본인이 관리하는 고객풀도 상대적으로 크고, 판매 스킬도 좋기 때문에 새롭게 도입한 소셜커머스를 통해서 추가적인 실적을 내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A 영역(오프라인 실적과 신채널 판매 실적이 모두 좋은)에 속한 판매사의 수가 생각보다 많지 않고 오히려 오프라인 실적은 좋지만 신채널 실적이 좋지 않은 직원들이 상당했다.
위챗을 통한 소셜커머스는 2, 3월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할 수 없을 때 시작되었기 때문에 오프라인 매장이 너무 바빠서 신경 쓰지 못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그리고, 당시 회사에서도 세일즈를 공격적으로 드라이브 걸기 위해 평소의 3배에 가까운 인센티브 정책을 썼기에 동기부여도 충분했다.
더군다나 이 소셜커머스로의 채널 확장은 임시방편이 아니라 향후 회사의 채널 혁신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중요한 프로젝트였고, 채널 구축과 시스템 개발에 이미 수 억 원의 투자를 했었다. 사업부 평가에서도 이 채널에서의 매출 비중을 사업부 책임자의 KPI로 걸어 놓을 정도로 전략적 의미가 강했기에 이러한 분석의 결과가 주는 영향이 작지 않았다.
우선 영업부의 판매사 HR 담당자를 통해서 우수한 성적을 낸 판매사, 점장, 그리고 지역 관리자들과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예상한 대로 차별된 성과를 낸 판매사나 관리자의 경우에는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업무 태스크를 자체적으로 진행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객의 유입을 올리기 위해 가능한 많은 고객들에게 상품 아이템이나 프로모션 관련한 정보를 공유하고 노출시 켜려고 했고 점장의 경우에도 일일 공유 할당량을 판매사들에게 주고 매일 그 목표를 달성하도록 체크했다. 이러한 SNS를 통한 집중적인 판매 활동은 매장 전체의 실적으로 이어졌다.
추가적인 인터뷰를 했다.
이번에는 오프 실적이 높지만 신채널 실적이 저조했던 판매사, 점장들에 대한 조사였다.
회사에서는 개인들이 추가적인 실적을 내서 인센티브를 더 받을 수 있는 도구를 주었음에도 왜 그들은 움직이지 않았을까? 역시나 결과는 동일했다.
그래프에서 보이듯이 매장의 판매사들이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을 통해서 온라인 매장으로 유입된 고객 수와 그 오프라인 매장의 신채널 매출은 확실히 상관관계를 보였다. 실적이 저조한 매장들은 확실히 고객들을 새로운 채널로 유입시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았던 것이다.
표면적인 결과는 이런데 왜 그랬을까? 왜 어떤 사람들은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하고 어떤 사람들을 그렇지 못할까?
판매사들과의 인터뷰에서 그 단초를 엿볼 수 있었다.
"이미 제 월 수입은 오프라인 매장의 실적으로도 충분히 나올 수 있는데, 새로운 뭔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나 했어요.."
"위챗 같은 걸 통해서 고객에게 뭔가를 파는 게 어색했어요. 보통 매장에서는 고객들에게 우선 입어보라고 권하면서 구매로 유도하는데 그럴 수도 없고요..."
"조금 있으면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그러면 고객들이 다시 매장으로 나올 텐데, 그때 더 열심히 팔면 충분히 만회하지 않을까 했어요. 매장만 오픈되면 어느 정도 실적 달성은 가능하다고 자신 있으니까요. 잠깐 쉰다고 생각하고 많이 집중하지 않았던 것 같네요."
여러 가지 원인과 변명이 있겠지만 딱 그 책의 제목과 같다.
'능력의 덫, 능숙함의 트랩'이다.
원래 아이바라 교수의 책은 리더급을 대상으로 한 내용이지만 조직행동론, 심리학적인 개념에서 보자면 계층에 상관없이 다 적용될 수 있는 원리라고 보인다. 늘 실적이 뛰어나고 우수하다고 평가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된다. 환경이 변하고 시장의 규칙이 바뀌어도 쉽게 바꾸지 못한다. 잘해왔던 사람들일수록 더 기존 해오던 것에 집착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인간의 심리학적 특성과 학습의 원리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아이바라 교수의 조언도 의미가 있다. '리더처럼 행동하면 리더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제도와 프로세스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논리의 틀을 바꾸기 위해 노력한다. 교육이라는 형태로, 설명회라는 형식으로, 변화관리라는 제목으로 소통과 교육에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런데 생각보다 효과가 크지 않다.
아이바라 교수의 제언처럼 먼저 행동을 해보게 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
왜 해야 하는지, 그게 어떤 효과를 낼지를 설명하기보다는 일단 표준화된 프로세서와 태스크를 최대한 단순화하여 대상자들에게 그 행동을 완수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고 체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같이 구현이 되어야 한다.
위의 신채널 영업의 경우에도 우선 성과를 낸 실적 우수자들의 Best practice를 정리해서 표준화된 태스크를 정의하고 일선의 판매사들에게 일괄적으로 수행하도록 요구한다. 그리고, 그 수행 여부를 확인한다.
이와 관련한 사례를 중국의 스타벅스 점포 운영 시스템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스타벅스에서는 점포관리를 위한 앱이 있는데 그 안에서 점장뿐 아니라 일반 직원들까지도 당일 해야 하는 태스크, 주간 단위로 완수해야 하는 태스크를 관리하고 있고 완료율을 모니터링해서 상급 관리자들에게 자동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선 행동하게 하고 그다음 실제적인 결과를 경험하게 하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역할의 변화, 업무 프로세스의 변화를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또한 가지 고려할 원리에는 의도적 연습이라는 개념이 있다. 이 개념은 안데르스 에릭슨 박사의 논문에서 처음 제안되었는데, 이를 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작가가 아웃라이어라는 책에서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소개해서 유명해졌다. 그런데, 원래 에릭슨 박사가 제안한 것은 1만 시간을 어느 특정 분야에 투하해서 세계적 수준에 오른다는 것이 아니라 이 '의도적 연습'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아웃라이어 책에서 소개한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본인이 다시 책을 내게 된다. 그 책이 Peak라는 제목의 책이다.
한국에서는 '1만 시간의 재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의도적 연습의 원리는 심플하다. 실행, 피드백, 수정, 반복이다. 위의 판매사 상황에서 응용해 본다면 시스템을 통한 체계적인 피드백과 구체적인 작은 목표의 설정이다.
이미 신채널 판매 실적이 뛰어난 판매사들은 이 원리를 적용하고 있다. 최종 목표인 판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그에 앞서 충분한 고객풀을 확보해야 한다. 고객풀을 키워 내려면 최대한 본인의 네트워크 범위를 넓혀야 한다. 판매사 본인이 공유한 상품 정보를 받은 고객이나 지인이 다시 그 정보를 자신의 네트워크에서 재공유해 주도록 요청한다. 상품을 구매해 주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천을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미 실적을 내고 있는 판매사들은 자신이 공유한 정보가 얼마나 멀리 넓게 퍼져나가는가에 따라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의 2가지 원리, 먼저 행동하게 한다. 의도적인 연습을 반복시키고 피드백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여기에 Gamification 화를 통해 특정 행동에 대한 완성률을 랭킹으로 보이거나(판매사들의 기본적으로 경쟁심이 강하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 또한 자극이 될 것이다.) 목표 행동 완수 시마다 포인트를 발생시켜 레벨 부여를 하고 레벨업에 따라 다른 정책적인 혜택이나 인센티브를 주는 것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User들의 행동을 관리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미 보편화되어 있다. 특히 이커머스 플랫폼에서는 다양한 툴을 통해 유저들의 행동을 추적하고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 이미 검증된 여러 가지 원리들을 활용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경계가 모호해지는 세상, 익숙한 것을 의도적으로 떠내 보내야 한다
거의 모든 업무 영역에서 기존의 전통적인 구분과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학문에서도 융합(Conversion)이라는 단어가 이미 오래전에 소개되었지만 회사 운영의 시스템과 구조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위의 판매사 분석 사례에서처럼 영업 데이터의 분석, 시스템적인 접근, BI의 활용 등 디지털화, 데이터 활용 등에서는 어떤 기능적인 영역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한다. 아니 의미가 없다.
정보의 흐름이 특정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시간과 공간을 넘나들며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전적인 상황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기회로 보이기도 한다.
능숙하다는 것이 나의 성장과 발전에 장애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변화해 가야 하는 것이 현대 사회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도 컴퓨터를 활용해야 하고 다른 장르와 크로스오버가 가능해야 한다.
바로 얼마 전까지도 성악가들이 국악을 4 중창으로 부르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이나 했었던가.
그런데... 조금은 단순했고, 조금은 덜 복잡했던 예전 것들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피어오르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세상은 변해도 사람은 좀처럼 변하기 어렵다는 단순한 이 진리를 나 스스로를 통해서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