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Signature를 찾아야 하는 이유
삼성전자는 최근 임직원 업적 평가의 공정성 강화를 위해 분기별 1회 이상의 업적평가와 피드백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렇게 되면 1년 중 최소 4회 이상 평가를 진행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회사의 관리자들이 1년에 한번 평가하고 면담하는 것도 큰 부담이였음을 생각해 보면 이 변화가 어떤 상황을 조직에 일으켰을지 상상이 된다.
이에 비해 구글은 최근에 연2회 평가를 1회만 평가하고 기존의 동료 평가 대신에 직속 상사의 평가 위주로 진행하기로 했다. 연2회 평가에 대해 직원들이 강력하게 불만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결과만 본다면 두 IT 업계의 거장들의 행보가 상반되어 보인다.
뭐가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각각 기업이 처한 상황과 풀어야 할 문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대 퇴사의 시대(Great Resignation)'에 치솟는 물가로 보통의 급여 인상으로는 직원들의 기대치를 만족할 수 없게 되었다. 삼성전자의 경우도 급여가 이미 직급 상한에 도달한 직원의 경우 승진하지 못하면 급여 인상의 기회가 없고 그렇기에 이번에 샐러리캡 인센티브라는 제도를 도입했다고 한다.
평가는 잘 받았지만 이미 급여 수준이 높은 직원들의 경우 승진을 하지 않으면 급여 인상을 제한했던 제도로 오히려 고성과자들이 불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평가를 분기별로 하는 것은 그 만큼 평가의 공정성에 민감해 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글의 경우 평가는 1회지만 분기별로 직원들의 경력개발 위주의 면담(check-in)을 상사와 진행한다. (평가를 위한 면담이 아니다)
재미있는 것은 새로운 평가제도 하에서 5개의 등급으로 최종 평가를 하는데, 대부분의 직원은 중간 평가 등급을 받게 된다고 한다. 중간 등급인데 등급의 정의가 "Significant impact' 인지라 문자 그대로 본다면 고성과자에 해당한다. 급여 인상 요구에 대해 평가 등급을 상향 조정하여 자연스럽게 평가 결과가 반영된 연봉 조정이라는 정당성을 확보한 것 처럼 보인다.
승진제도도 바뀌었는데, 이전에는 직원이 직접 많은 양의 관련 자료를 준비해서 승진 요청을 하는 방식이였는데, 좀더 단순하게 ,직원의 서류 준비가 필요 없는 방식으로 바꾼다고 한다.
"구글의 아침은 자유가 시작된다(영원제목 : Google Work Rules !) 라는 책이 기억이 난다.
구글의 인사 책임자였던 라즐로가 구글의 모든 인사제도와 프랙틱스를 자세하게 공개해서 화제가 되었고, 이후 수많은 기업들의 인사 책임자들에게 교과서 같은 역할을 했었다. 그 덕분에 한 때 구글의 인사제도가 IT업계에 표준인 것처럼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서도 상당부분을 성과관리, 승진, 보상 등의 내용에 할애하고 있다. 특히 승진에서 자천(스스로 추천)하는 제도에 대해서도 언급되어 있는데, 바로 이 제도가 이번에 변화되었다. 라즐로도 이 책에서 겸손하게 구글이 모든 것에서 완벽하다고 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일면 세계 일류 회사의 최고의 프랙틱스라는 자부심도 분명보였고, 여러 통계자료나 논문을 인용하며 그 근거를 '구글스럽게' 제시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다시 리셋의 길을 가고 있다.
어쨌든 이번 구글의 인사제도 변화에 단초가 된 것은 'Googlegeist'라고 하는 매년 실시하는 직원 설문 결과 때문이였다.
뛰어난 경영성과에 업계 최고 수준의 복리와 이상적인 조직문화, 심리적 안전감의 대표적인 기업이며 혁신을 리드하는 곳이지만 직원들의 정서는 긍정적이지 않았기에 이 결과가 경영층에게 충격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Great Resignation' 현상이 가중되어 인력의 이탈 등이 나타났다.
아이러니 하게 구글의 주가는 지난 2월에 52주 최고치를 경신했다가 현재(22.5.16) 2,288달러로 연초 고점 대비해서는 많이 조정되었다. 새로운 인사 혁신안이 나온 것이 3월이였으니 회사의 주가와 직원의 정서가 꼭 정비례 관계는 아님을 알 수 있다.
표면적인 것은 인사제도의 비효율성에 대한 불만으로 나왔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보상 이슈가 그 내면에 있어 보인다.
미국은 현재 IT업계는 특히 절대인력의 부족과 그로 인한 임금 인상(인력이 부족하니 급여를 더줘야 하고)이 다시 물가 인상을 가중해서 급여가 올라도 실직소득이 늘지 않아 보이는 모순에 빠졌다.
그러니, 구글같은 일류 회사의 잘나가는 직원들도 더 높은 급여를 받고 싶은데, 승진은 엄청 복잡하고 어렵고, 평가도 좋은 결과를 받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평가를 1년에 몇 번하고 어떤 제도와 프로세스를 도입하더라도 작금의 이 문제들은 해결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삼성전자 이든 구글이든 현재 당면한 문제는 제도의 효율성이나 효과성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생각의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조직 운영 시스템의 한계이고, 사회전반의 관료제에 대한 거부와 금융에서 촉발된 탈중앙화의 기조가 점차 주류(main stream)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인이 국내 모 그룹사의 요청으로 전세계 유수 글로벌 기업들의 HR Practice를 조사하고 각 회사의 주요 담당자와 연결하여 그들과 몇 차례의 인터뷰를 진행한 프로젝트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보통 이런 벤치마킹 프로젝트는 타겟 회사의 내부 직원의 정보 제공이 필요하기 때문에 은밀하게 진행되고 비용도 꽤 들기 마련이다. 그렇게 해서 수집된 정보들과 각 회사의 제도의 상세는 다시 컨설턴트에 의해 정리되어 하나의 보고서로 만들어 진다. 어떤 인싸이트가 나왔고 어떤 제안을 받았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우리 나라 기업들은 베스트 프랙틱스를 좋아 한다는 점이다.
특히 구글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넷플릭스 처럼 잘 나가는 회사들의 인사 제도나 정책들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관심을 갖는다. 구글의 사례에서 보지만 그동안 그들이 고수해 오던 레거시(Legacy)를 한 순간에 부정하거나 단절하는 조치들이 나오면 그동안 그것을 열심히 쫓아가던 후발 기업들의 입장에서는 말 그대로 패닉에 빠질 상황이 될 것이다.
'구글도 그렇게 합니다.'라고 주장했었는데, 구글이 그렇게 안한다니 이게 왠 날벼락인가.
그렇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 기업들도 소위 글로벌 기업, 리딩 회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어야 한다.
급변하는 환경, 설명하기 힘든 세대간의 차이, SNS 등으로 인해 이슈에 과하게 반응하기도 하고 이성적 논리 보다는 감성과 느낌이 주류를 형성하는 시대에서 앞서간 기업들의 사례를 보고 반면교사로 삼아 순차적으로 '우리 것화(化)' 하던 방식은 이제는 맞지 않는다. 오히려 큰 오류를 낼 가능성이 높다.
이제는 컨설팅사도, 경영 Guru들도 베스트 프랙틱스를 쫓는 일부 기업들에 대해 차가운 비판의 시선을 보낸다. 그리고 자신의 것, 고유성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보라는 조언을 한다.
영어권 문화에 'Tutu for Dog costume'이라는 비유가 있다. 투투는 발레복 같은 약간 공주필의 화려한 드레스인데 그것을 애견들을 위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서 입히는 것이다. 뭘 입혀도 개는 역시 개일 뿐이다 라는 은유적 표현인데 겉으로 어떤 포장을 해도 본질은 바뀌지 않음을 빗댄 말이다.
물론 타사의 사례에 대해 참고는 가능하다. 무시하거나 가치가 없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자신에 맞는 방법과 해결을 찾지 않는 다는 것은 당면한 문제에 대해 정말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진정성과 태도의 문제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작금의 상황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해결방안은 계속적인 실험정신을 갖추어 가는 것이다.
어차피 정답이 없다면 시도하고 다시 피드백하고 수정하고 다시 테스트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통해서 나만의 고유한(Signature) 해결안을 만들어 가는 그 과정, 물론 그 과정에서 조급해 하지 않는 경영자의 인내심 꼭 필요하다. 이게 사실 제일 어렵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