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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ple life Dec 28. 2021

학교가 싫다

의사소통이 뭔지도 모르는 교사가 큰소리칠 수 있는 곳

2021년 12월 27일 오후 4시 둘째 아이 학교를 방문하였다. 둘째 아이를 키우면서 이러한 일로 방문하기는 처음이다. 이유는 2주가 지나가고 있지만 아이의 마음에 남아 있는 일에 대하여 담당 교사들에게 물어보고, 아이의 마음에 남아 있는 앙금을 덜어낼 방법을 찾기 위해서였다.
내가 아이에게 들은 ‘그 일’은 이러하다. 학교에서 축제를 온라인오프라인믹스(?)로 진행하기로 결정하였고, 각 동아리들에게 공지를 한다.

☆중요 공지☆
●●●(온라인) 동아리 활동 영상 제출
1. 기간: 12월13일(월)~12월15일(수)
2. 동영상길이: 3분~5분
3. 제출형태: 지난번에 나눠준 usb에 담아서
4. 동아리 소개 멘트 제출: (20자 이내) 온라인 축제 진행 시 사회자가 해당 동아리 소개할 멘트 간단히 A4 종이에 써서 가져오기
ex) 키네마-*** 최고의 영화 제작 동아리
5. 제출 : 창체부 축제담당 ●●● 선생님께

여기서 과제는 그동안 동아리 활동한 내용을 영상으로 담아 제출해달라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동아리 활동한 내용보다는 자신이 속해 있는 동아리가 경제동아리 임으로 경제동아리의 성격을 나타내 줄 수 있는 애플의 마케팅 전략을 소개하는 것으로 내기로 마음먹고 각 이미지를 구하고, 더빙까지 하여 약 5분 정도의 동아리 영상을 제출했다. 영상 제작을 조금 아는 나로서는 사진과 bgm 그리고 간단한 자막으로 만들 수 있는 동영상을 놔두고 이미지를 하나하나 찾고, bgm 넣고, 마이크까지 친구에게 빌려서 더빙까지 해가며 그렇게 손 많이 가는 동영상을 만든 아이의 열정에서 안쓰러움을 느꼈다.

사실은 아이는 올해 동아리 사업계획서를 제출하여 동아리로서는 적지 않은 자금(?)을 마련하였다. 그것은 경제 동아리답게 사업을 하여 이윤을 창출하고 창출한 이윤은 모두 기부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다. 그래서 사업계획서를 내고 사업 아이템을 동아리 부원들과 잡고 친구들을 동원하여 사업 아이템 디자인을 하고, 지역 사회적 기업에 제작 요청을 하고, 펀딩 사이트를 알아보는 등 바쁘게 움직였다. 심지어 필요하다면 자신의 소중한 저금 일부를 이 사업에 투자한 후 회수할 계획까지 세웠다.

그런데 2학기도 중반을 넘어간 어느 날 사업이 제품 제작 단계에서 협의되고 있을 때 함께 동아리 활동을 도와주던 지역 청소년 센터 동아리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청소년 동아리 지원금으로 이윤 창출을 하면 안 된다며 사업 중지 요청을 들었다.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동아리 지원금을 주었는데, 한창 진행되어가고 있는 사업을 계획대로 진행하면 안 된다는 통보를 들었으니 아이는 엄청나게 당황했을 것이다. 그럴거면 지원금을 주지 말지... 아마 영문도 모른 채 억울해했을 것이다.
고민을 하던 아이는 자신의 첫 사업을 접었다. 그간 야심 차게 추진했던 동아리 사업이 수포로 돌아갔던 것이다.

동아리 축제 영상제작에 아이는 무엇을 담고 싶었을까 아마 멋지게 성공한 동아리의 사업, 동아리 부원들과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지역에 기부하며 조금 우쭐한 부원들의 모습, 그런 모습들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이유야 어쨌든 사업계획서를 검토하고 지원금까지 모두 주었는데, 사업을 철회하라고 한 지도 선생님의 이해할 수 없는 통보로 생각했던 동아리 사업은 할 수가 없게 되었고, 담고 싶던 모습이 없어지니 영상도 사라졌다. 


그래서 경제 동아리이니까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평가받는 애플 마케팅 분석 영상을 자신의 생각엔 좀 많이 멋있게 만들고 싶었던 거 같다. 그리고 이런 내용들도 활동에 포함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언어란 원래 자신만의 언어이기도 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교집합이 있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학문을 할 때는 술어라는 것으로 학문에 사용하는 언어를 모두 표준화한다.

사실 소통이 어려운 것은 언어를 모두가 동일하게 사용하지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사실 물질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언어는 대부분 각자가 생각하는 내용이 다르다. 예를 들면 친절이라는 단어도 이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모두 각자 다른 친절을 마음속에 갖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런데 활동이라는 명확하지 못한 언어에 기대어 만든 동영상을 제출하고 활동에 대한 다른 견해를 말했을 때 영상을 보지도 않은 동아리 담당교사 입에서 나온 말은 “그걸 말로 해야 하냐?” 였다고 한다. 어떻게 아이들을 돕는 직업을 가진 교사가 자신이 돕는 학생의 의견을 내용 검토도 하지 않은 채 송두리째 부정하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것도 윤리를 담당한다는데 본인의 직업윤리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아이는 학교를 좋아하고 있었다. 학교를 좋아한다는 것은 학교 건물을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수평적으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다면 그 전의 수직적 통보로 인하여 좌절된 동아리 사업으로 인해 쌓인 억울함과 불신도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다시 일방적인 의사전달로 인해 아이는 분노하고 있었다.  

이 앙금은 2주가 지난 뒤에도 사라지지 않아 결국 나는 학교를 방문하였다. 사실 나는 전화로 몇 가지 여쭙고 도움을 요청하면 다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담당교사는 전화로도 화를 내기 시작하였다. 두 아이를 학교에 보냈지만 이런 교사는 처음이었다. 교사가 학부모가 전화를 하면 방어적이 될 수는 있지만 얼굴도 모르는 상대에게 무조건 화를 내는 교사는 지금까지는 없었다. 그 교사는 자신에게 질문을 하는 것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거 같았다. 그 교사에게 필요한 대답은 "에" 외엔 없는 거 같았다.

그 교사는 평소 언어습관이 그렇게 수직적이어서 그 정도는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당해본 나의 느낌으로는 명백하게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하였다.

요즘 아이들은 가정에서부터 수평적인 환경에서 자라는 경우가 많은데, 수평적인 관계 형성을 모르는 교사가 학생들의 학습을 돕는다면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이에게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해보라고 말했을 때 아이는 “벽보고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경험해보니 벽보다 더했다. 벽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쳐내기만 하지 나를 공격하고 막말을 하지는 않는다.

결국 학교 정문에 들어서고야 말았다.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 년 되감기를 한 거 같았다. 학교는 내가 다녔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요즘 아이들을 어찌 옛날 방식으로 도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아니 돕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지도한다고 내가 학교 다닌 80년대처럼 생각하는 거 같았다.

축제라는 것이 또는 교육이라는 것이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는 내 생각은 플라톤의 이데아였다. 축제 영상의 내용도 아이들은 전달받았고, 아이들은 전달받은 내용을 충실하게 구현하는 도구면 되었다. 그리고 조금 다른 내용은 버리는 것이 당연했고, 문제를 제기하면 문제아로 만들면 되는 것이다. 아이들이 도구가 되어 제작한 영상은 학교 내의 누군가의 승진 고과로 사용되면 되는 것이었다. 누구의 승진에 도움이 될 것인지는 축제를 담당한 교사의 태도로 알 수 있었다. 그 교사는 성공적으로 치러진 훌륭한 축제라고 내 앞에서 침을 튀기며 거칠게 자화자찬했다. 자화자찬하는 태도마저 폭력적이었다. 그 교사에게 한 학생의 좌절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고, 학생이 자신이 내린 지침에 딱 부합하지 않은 영상을 제출한 것은 잘못이었다.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한 톨의 쌀알이 더 무거웠다.
 
이런 사람을 아이들은 상사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평가권을 쥐고 흔들면서 자신들을 도구로 사용하는 상사.

이런 사람들은 소통을 의사전달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소통은 일방의 전달이나 수직적 의견교환이 아닌 존중과 배려의 표시이며 때로는 숨어있는 창의력과 잠재력을 캐는 호미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리고 교육 내용이 대부분 온라인에 있는 요즘 오프라인 교육 현장은 소통 능력 전문가가 필요하다.


나는 어제 학교에서 받은 충격을 숨긴 채 오늘 아침에도 아이를 등교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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