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싯적에 1. 신례원역에서
시커먼 쌀독에 하얀 쌀만 가득 차면
든든하시다던 할머니는 아쉬움의 항아리를
반도 못 채우시고 아흔두 살에 돌아가셨다.
새 하얀 머리카락처럼 모든 기억을
까먹으시고 같은 말을 반복하곤 했다.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가?
군산의 미군부대의 사택에서 미군 병사와
살던 고모를 만나고 오던 길이 었다.
신례원역에서 내려야 했지만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 열차가 일반적이었던 당시에는
미리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쉽게
내릴 수가 없었다.
나만 먼저 내리고 신례원역에서 기차는
다음 역인 도고온천으로 떠나 버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내 얼굴엔 비에 흘러내린
마스카라처럼 구정물로 얼룩이 졌다.
시골 작은 역의 지붕에 매달린 커다란
스피커로 동네방네 시끄럽게 할머니를 찾던
역장은 간신히 무선이 다았는지 온양역
전에 있는 도고온천에서
차를 바꿔 타고 할머니가 올 거라고 하셨다.
쉰 초반에 할아버지는 뇌출혈로 돌아가시고,
할머니 혼자서 팔 남매를 키웠는데
그중에서도 둘째가 홍역을 앓다가 죽는 바람에
셋째인 우리 아버지가 둘째로 불렸다.
어찌 된 이유에서인지 할머니는 유독 둘째 아들을
좋아했고 그 아들의 아들인 나를 특별히 사랑하셨다.
친척 아이들이 '경일이 할머니'라고 불렀을 정도니까.
말 다했다.
'여기 도고온천 이유~ 할머니 바꿀께유"
"아이고 갱일아~ 아가 많이 놀랬지? 할머니가 금방
갈 테니까 쬠만 기다리고 있어라~~"
역장님이 말했다.
" 할머니 잠깐 만유~ 저는 역장이 구유~
손자는 옆에 있으니께유~ 금방 바꿔 줄께유~"
아차, 할머니는 역장님이 빨리빨리 안 바꿔
준다고 큰 소리로 혼내고 있었다.
" 아니~ 빨리빨리 애를 바꿔야지... 당신들이 겁나게
사람들 실고 내리고.... 허다가 우리 가 못 내려서 일이
커지긴 했지만서두... 그래도 그렇지 애만 내리고
출발하는 기차가.. 워딨어.. 그래?.. 이? 솔직히
안인 말루다가 말여 기차가 이런 식으로.....
개판으로다가... 운영 허니께 말여.. 이.."
할머니의 길고 긴 설교가 끝나갈 때쯤 기쁨의
인사를 디밀었다.
"할머니 빨리 와... 난 괜찮아... 여기 신례원 역이야"
"그려 우리 얘기 거기 잘 있어라~ 울지 말고~
금방 갈테니께~"
몇 시간 후 할머니의 품에 안겼다.
그 당신 당진읍 까지는 신례원역에서도
비포장 신작로를 1시간을 달려야 나오는
깡시골이었다.
깜깜한 밤이 되었지만, 우리 동네만은 불꽃놀이
하듯 불야성을 이루고 거리에는 술에 취한
뱃사람, 노래하는 작부, 공사장 아저씨들의
고함 소리가 뒤엉켜 왁자지껄 했다.
몇 년간 그 동네에서 어머니는 복장학원과
양장점을 경영했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어린 시절의 동네가 유명한 ‘방석집촌’
이라는 걸 알았다. 양장점 손님들이
유난히 요란한 화장에 진한 분 냄새 날렸던
이유를 안 것도 한참 후의 일이다.
해병대 병사들에게 다구리를 당해 병을
얻었지만 집에 가면 늘 제일 먼저 맞아주는
아버지가 있었고, 쌀독에 흰 쌀만 차면
든든해하시던 할머니는 집에만 들어가면
나부터 발 벗고 뛰어나와 안아 주셨다.
가끔 기차를 타면 마흔아홉에 돌아가신
아버지, 당신이 그렇게 사랑하던 아들보다
몇십 년을 더 살다가 기어이 치매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보고 싶어 진다.
이대로 할머니를 만나러 갈 수 있을까?
플랫폼에 내리면 잊었던 할머니가 나를 꼭
안아 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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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한겨레 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