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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무 May 23. 2023

#4 오늘은 처음이라

 매일 일기를 쓰면서도 '오늘은 어떤 말로 시작해야 할까'하는 고민에 한참 동안 펜을 잡고 아무 내용도 적지 못하는 밤이 있습니다. 새로운 글을 시작할 때, 문장의 시작을 어떤 단어로 하면 좋을지 몰라서 주저하는 순간도 많습니다. 반복되는 일이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완벽히 똑같은 것은 없기에 처음은 매번 낯설고 두렵습니다.


 아침이 오는 건 어제와 오늘이 동일하지만 하루 안에 일어나는 일은 매일 크고 작은 새로운 사건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어떤 이의 시선으로 보느냐에 따라 장르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는 에피소드에 직접 닿은 당사자로서는 연습 한번 없이 마주한 상황이 낯설고 어색합니다. 모두가 그렇게 사는 걸까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불쑥 고개를 내밀면 꼭 작은 돌부리처럼 걸려 넘어지곤 합니다. 당황해서 퍼덕거리는 팔다리와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표정은 들키고 싶지 않아요. 애써 감춰봐도 높은 구두를 신은 듯 불안정한 걸음걸이에 나를 들킬 것 같습니다.
    

 어쩌면 서툴고 딱딱한 나의 움직임이 누군가의 시선에선 적당한 템포의 춤으로 보일 수 있을까요? 다들 박자에 맞춰 잘 짜인 안무를 추고 있는데 나만 뚝딱거리는 움직임으로 망쳐놓고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고 속상했습니다. 머리로는 다들 그럴 거라고, 각자 움직이기에 바빠서 타인의 실수에는 별 관심 없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해요.


 스스로를 받아들이고 괜찮다고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릅니다. 가끔은 여전히 서툰 나를 보며 얼굴이 달아오를 때가 있지만 괜찮아요. 지나온 나의 모습에 비하면 얼마나 커다란 성장을 이뤄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부끄럽고 못난 모습을 느낄 때면 지난 시간의 나를 찾아주세요. 그때에 비하면 큰 도약과 발전을 이뤄낸 지금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인사는커녕 대답도 못하면서 얼굴만 빨갛게 물들이던 아이는 인사도 잘하고 사교성 있는 친구를 동경해 왔습니다. 매 순간 모든 이에게 사랑받을 것 같은 다정한 말투와 자연스레 몸에 배어있는 따스함을 가진 나른한 햇볕 같은 사람. 그런 동그라미 같은 이들과 달리 나는 어딘가 모나고 구겨져서 타인이 가진 장점을 따라 하기에 바빴습니다. 뾰족한 나를 갈아내고 조금 더 폭신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아직 고장 난 로봇처럼 어색한 표정과 몸짓을 흉내 내고 있지만 지금 내 모습은 수많은 오늘을 지나오며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낸 결과입니다. 여전히 어색하지만 눈을 맞추고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사람이 되었죠.


 누구에게나 오늘은 처음이기에 매일 각자의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비슷한 실수에 실망이 쌓여가도 조금은 너그럽게 받아들여주었으면 좋겠어요. 나와 당신이 자연스럽게 하루를 보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치열하게 보내는 하루 틈에 스며든 시간의 조각에서 편히 숨 쉴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참아왔던 깊고 더운 숨을 내뱉어 빈 공간이 생기면 그만큼 또 무언가 채워갈 힘이 생기길거예요. 엉성한 날이었다 해도 괜찮아요. 그럴 수 있지요. 서툴지만 어딘가 분명히 자라난 곳이 있으니까요. 수많은 오늘을 이어서 만난 순간은 새로운 오늘이 되었어요. 지금 헤매고 있다고 해도 괜찮아요. 열심히 길을 더듬으며 나아가고 있으니까요. 비록 더딜지라도 꼭 도착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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