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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zak Dec 29. 2023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퇴원 후, 본격적인 마음고생 시작


암과의 싸움은 수술과 회복이 전부가 아니다.

숙제가 한참 남았다.

그 숙제를 제대로 하기 위해 퇴원이 무색하게 병원을 자주 드나들어야 한다.




아직 물 담긴 머그잔을 들 수 없고

화장실도 엄마와 대동해야하지만

발목에 꽂은 링거도 옆구리에 꽂은 배액관도 없으니 몸은 훨씬 가뿐하다!


수술 중 떼어낸 암세포의 정밀 분석을 들으러 가는 것이 퇴원 후 첫 번째 일정이었다.


일단은 크기부터 말씀해주신다.

수술 전 보는 초음파와 MRI로는 추측만 할 뿐, 정확한 크기 등을 알 수 없기에

수술 후에야 품고 있던 암 덩어리의 진짜 스케일이 밝혀지는데

내 경우 왼쪽은 0기암 8.5cm, 2기암 3.8cm. 이렇게나 큰 줄은 몰랐다.

오른쪽은 소엽 상피내암 0.5cm (요건 초음파에서 본 크기 그대로)였고

기수는 가장 큰 걸 기준으로 하기에 결론적으로 유방암 2기라 진단됐다.

다행히 림프 등 다른 곳으로의 전이는 없었다.


여기까지는 심플하고, 중요한 것은 치료 방향이다.

양쪽 가슴 조직을 모두 싹싹 도려낸 덕분에 방사선 치료는 패스.

암세포는 발생 원인에 따라 약물 선택이 달라지는데

크게 세 가지로 나눈다.


첫 번째,

호르몬 양성. 가장 흔한 경우로

우리나라 여성 유방암 환자 3명 중 2명은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라고 한다.  

이 타입은 에스트로겐(ER) or 프로게스테론(PR) 수용체에 양성 반응을 보이고,

양성도가 강할수록 치료 효과가 크다고 한다. 다른 타입의 유방암 보다 덜 공격적이라

순한 암이라고도 부르지만 잔잔하게 오래 가는 스타일이라

꾸준한 모니터링과 최소 5년간 항호르몬 요법(약물 복용)이 필요하다.


두 번째,

HER2 양성

HER2 양성은 인간 표피 성장 인자 수용체 2 (Human epidermal growth factor receptor 2)에

반응을 보이는 타입이다.

유방암 세포 표면 HER2 수용체에 달라붙어 암세포의 성장과 분열을 촉진하는 원리라고 한다.

유방암 환자의 약 20%에서 나타나고, 암세포가 빠르게 분열하는 것을 막기 위해

허셉틴. 퍼제타 등 표적 치료제를 사용한다.

준비하시고 쏘세요! 표적을 조준하고 쏘는 셈.

여기에 세포 분열을 멈추게 하는 탁센계 항암제 도세탁셀을 추가하기도 한다.      


세 번째,

가장 드문 삼중음성.

삼중음성유방암은 위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즉, 에스트로겐(ER). 프로게스테론(PR). HER2

모두 음성인 타입으로 전체 환자의 약 10%만이 해당한다.

위 두 타입은 적이 어디서 오는지 알고 그걸 막아내는 방식이지만

이 타입은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셈이다.

하지만 최근엔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게 만드는 면역 치료 항암제를 개발 중이며

항암제와 면역치료제의 콜라보레이션으로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싸움이 좀 더 쉬울텐데 그렇지 못하기에 보다 폭넓은 관리가 필요하다.


나의 경우 첫 번째, 호르몬 양성이라 알고 있었고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여성호르몬(에스트로겐)이 과다하다는 것!)

이 경우 소위 말하는 항암 치료보다는 여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 치료가 더 효과적이라 알려져있다.

하지만 혹시 모를 가능성에 대비해 외국으로 내 세포를 보내 검사하기로 했는데

여기에 하나 변수가 생겼다.

수술 후 세포 분석에서 오른쪽은 여전히 같은 여성호르몬 수용체 양성, HER2음성 소견이었지만

왼쪽에는 HER2 양성도 섞여있을 수 있다고. 애매모호한 수치라 재검사가 필요하다고.

만약 HER2 양성이 나올 경우 외국으로 세포를 보낼 것도 없이 항암 치료의 길로 들어간다고.


이건 예상조차 못했던 난관이었다.  

"저 항암하기 싫어요..."

"항암하기 좋아하는 사람 없어요. 일단 결과를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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