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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민희 Sep 02. 2019

나의 첫 포틀랜드 맥주

5/21 Grassa Bionda(Allegory Brewing)

포틀랜드에 도착했다!


은은한 커피 향이 여기부터 포틀랜드라는 인사를 건넸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커피 향을 맡을 수 있는 공항은 포틀랜드가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렘도 잠시, 늘 그랬듯이 긴장한 티를 숨긴 채 어설프게 대중교통 티켓 자판기를 찾았고, 늘 그랬듯이 블로그에 적힌 대로 티켓을 끊었다. 덕분에 포틀랜드 도심을 이어주는 전차인 MAX에 손쉽게 오를 수 있었다.


다 예뻐 보였던 MAX 밖 풍경

유진과 책 <Very Portland>를 펼쳐 가고 싶은 곳을 구글맵에 저장하다 보니 내릴 정류장이 다가왔다.


잔뜩 경계하며 길을 걸었다. 곳곳에 홈리스가 너무 많았다. 여행을 준비하면서 스쳤던 글이 떠올랐다. ‘힙하긴 개뿔 마약쟁이들이 길거리 곳곳에 누워 있는 포틀랜드(뭐 대충 이런 내용이었다).’ 최대한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호텔을 찾았다.

나무로 된 유리문을 힘겹게 밀면서 유진과 안도의 눈빛을 교환했다. 인스타그램에서 수도 없이 봤던 에이스호텔 로비가 눈 앞에 펼쳐진 것이다.


포틀랜드의 명물, 에이스호텔

역시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달랐다. 따뜻한 공기, 북적이는 분위기, 은은하게 풍기는 커피 향까지. 사진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것들이었다.


새빨간 웰컴 플라워가 짙은 나무색 인테리어와 찰떡이었다

짐만 대충 놓고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노란 별이 쏟아지는 구글맵을 뒤적이다가 호텔과 가장 가까운 Grassa를 골랐다.

줄을 길게 서야 한다는 블로그의 말과는 달리 한적했다.(포틀랜드 여행 내내 줄을 한 번도 안 섰다. 럭키!)

여기서 가장 유명한 메뉴인 포크밸리 맥앤치즈와 파스타 하나를 시켰다. 그리고 이 가게의 이름이 들어간 맥주를 시켰다. 잘 모르는 식당에 가면 메뉴판 첫 번째에 있는 음식을 시키면 평타는 친다-가 나의 먹생 철학이다.


맥주가 먼저 나왔다.

gif로 모셨다

시트러스 향이 살짝 나면서 달고나 맛이 감돌았다. 공항에서부터, 사실 비행기에서부터 쌓였던 긴장이 맥주 한 잔에 사르르 풀렸다. (밴쿠버에 살고 있는 유진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포틀랜드로 넘어갔다. 작고 귀여운 비행기였는데 고속버스처럼 2X2 좌석에 탈탈대던 프로펠러 소리는 비행기를 수십 번 타본 사람일지라도 긴장이 될 거다.)

여하튼.
이 맥주 한 잔으로 내가 드디어 포틀랜드에 왔구나 싶었다.


포크밸리 맥앤치즈와 이름도 맛도 잊어버린 파스타

포크밸리 맥앤치즈는 ‘맛탕처럼 설탕 시럽이 코팅된 베이컨 덕분에 단짠단짠을 느낄 수 있다’고 블로그가 알려줬다. 설렜다. 서촌의 한 수제버거 가게에서 베이컨 맛탕이라는 괴랄한 메뉴를 먹은 적이 있었는데, 당시 단짠단짠의 행복을 맛본 터라 어금니와 볼 사이에 짜릿한 침이 고였다.

아.

슬프게도 이 베이컨에서는 단짠단짠의 부조화를 느낄 수 있었다. 단짠단짠이 아니라 단!!! 짠!!!!!!!! 단!! 짠!!!!!!!!이었다. 중간을 모르는 맛이었다. 다행인 것은 맥앤치즈의 간이 약해서 같이 먹으면 먹을 만했다.

적당히 향긋하고 적당히 쌉쌀하며 적당히 달콤한 이 맥주 덕분에 미친 듯이 짰던 Grassa의 포크밸리 맥앤치즈를 무사히 다 먹을 수 있었다. 블로그에서는 이 가게가 생면 파스타를 팔기 때문에 인기가 많다고 했는데, 사실 파스타의 질감은 하나도 기억 안 난다. 오로지 달디달고 짜디 짰던 포크밸리 맛 밖에......

포틀랜드를 떠나기 전 마지막 식사를 꼭 이 맥주와 맥앤치즈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포틀랜드에 왔을 때 불안했던 마음이 사르르 녹았던 것처럼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불안함이 사르르 녹길 바라면서.



5월 21일에 마신 맥주 기록(1)


Grassa Bionda 

Allegory Brewing / Blonde Ale / 5.25%

Grassa에서 마신 포틀랜드 첫 맥주.
페일 에일 향이 약간 났는데 좀 더 가벼워서 짠 맥앤치즈랑 먹어도 술술 넘어갔다.

약간 달고나 맛도 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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