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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소대나무 Sep 28. 2020

마늘 한 망

손톱 밑은 아리고 알리신 특유의 향취에 코는 마비되었다. 불과 20년 전만 해도 지엄하신 지아비가 마늘을 까는 것이 상상이나 되었겠느냐만, 요즘 같은 시기에 구시대적인 성역할론을 펼치다가는 아내에게 소박맞기 딱 좋다. 직장 동료로부터 선물 받은 마늘 한 포대, 직접 농사를 지었다는데 그래서인지 알이 실하다.

마늘을 물에 2시간 이상 담가두면 더 수월하게 알을 깔 수 있다기에 다라이에 마늘을 줄기째 담근다. 투명의 수돗물이 1시간쯤 지나자 흙과 섞여 탁해진다. 줄기에 영근 마늘 알을 하나하나 부수고 마늘 꼭지를 칼로 도려낸 뒤 손가락으로 알을 눌러본다. 생각만큼 수월하지는 않지만, 껍질이 벗겨지긴 한다. 수차례 아내와 반복하니 다라이의 물이 흙탕물이 되었다. 수면을 조용히 응시해본다. 흙탕물 가득한 도랑을 헤쳐가며 가재를 잡는 90년대 초반, 코흘리개 시절의 내가 보인다. 

      







나는 태생이 촌놈이다. 지금은 마천루가 제법 위용을 자랑하지만, 어렸을 때만 해도 우리 동네는 도로에 차 몇 대 다니지 않는 산골이었다. 산과 들은 아이들의 좋은 놀이터가 되어주었고 땟국물 가득한 촌 아이들은 꿩새끼야 살쾡이야 토끼야 잡아보겠노라 서로 으름장을 놓으며 산으로 들로 뛰어다녔다. 그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가재잡이었다. 


특이하게 평지가 아닌 산기슭의 도랑에 가재가 그렇게 많이 살았는데 동무들과 하류에서 상류로 치고 올라가며 가재를 잡아내곤 했다. 유일한 무기는 1.5리터 페트병. 한시진 정도 동무들과 산을 타면 새끼손가락만 한 가재들을 페트병 절반 정도 잡을 수 있었는데 그런 날이면 어린 나는 대단한 일이라도 해낸 양 뿌듯하게 집으로 복귀하곤 했다. 쓰지 않는 세숫대야에 가재들을 풀어놓고 키운답시고 밥알이야 벌레 사체들이야 부지런히 떨궈주기도 했지만 불쌍한 녀석들은 며칠 못가 세상을 하직했고, 그런 날이면 저녁상에 가재가 수북이 올라간 된장찌개가 차려졌다. 어린 나는 그게 어찌나 가슴이 아프던지 한 시간도 가지 않을 단식을 선언하곤 했다. 애당초 내가 잘 있는 자연에 손을 대지 않았으면 벌어지지 않았을 촌극이었음은 머리가 조금 더 굵은 뒤에야 깨달았다. 




생각보다 마늘 양이 많다. 빨간 망 하나를 통째로 다라이에 담갔는데 까기 시작한 지 30분이 넘었건만 진전이 보이지 않는다. 왜 하필 일요일 저녁에 이 작업을 하냐는 아내의 핀잔에 설득력이 실린다. 언젠가는 우리가 해야 할 작업 아니냐며 항변해보지만 나는 말재간에서 아내를 이길 자신이 없다. 마늘의 알리신 성분은 내 코를 톡 쏘고, 아내는 날 쏘아붙인다. 와중에 20년 전, 내 심장에 정전기를 톡 쏘아주었던 그녀의 향기가 떠오른다. 




그녀는 한 살 연상의 학과 선배였다. 화장기 없는 얼굴에 눈은 서글서글했고 흰 면티에 청바지를 즐겨 입었다. 말투는 늘 상냥했으며 수수한 옷차림에서는 맑은 향이 났다. 그녀는 남중, 남고를 거친, 여성이라곤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숙맥의 내가 처음 마주해본 이성이었다. 


새내기 환영회에서 제법 친해진 그녀와 나는 자연스럽게 점심때가 되면 식사를 함께하고 찻집에서 따로 만나 청춘에 대한 개똥철학을 논하곤 했다. 그 친근한 감정은 머지않아 설렘으로 변질되었고 상고머리에 무스를 잔뜩 칠한 나는 손편지를 들고 그녀 앞에 서기에 이른다. 결과는 뻔했다. 그녀가 직전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내가 봐도 반할 정도로 멋진 스포츠맨이었는데 시골에서 갓 올라온, 촌국물 흐르는 나 따위에게 그녀가 이성적 호감을 느낀다는 것이 더 이상한 노릇이겠다. 나름의 강단은 있답시고 태세를 정비한 후 2번 더 대시를 했는데 그러는 족족 거절만 당했을 뿐이다. 이후 손에 술병을 쥐고 며칠을 앓으며 나름 방황을 했던 우스꽝스러운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달 지나지 않아 그녀가 다시 그 스포츠맨을 만난다는 풍문이 학내를 한 바퀴 감싸돌았다. 촌에서 올라온 상고머리 촌놈은 그렇게 단과대학 공인 ‘쪼다’가 되었다. 어리숙한 청춘은 꼬장꼬장한 자존심에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를 능가하는 스포츠맨이 되어 돌아오겠노라 해병대에 자원입대하며 쓴 첫사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마늘을 깐 지 벌써 2시간째, 어느덧 마늘 알이 많이 줄었다. 아내의 툭 튀어나왔던 입은 어느새 들어가고 핀잔은 줄었다. 얼른 작업이 끝나기만을 염원하는 듯 손놀림이 기계적이다. 


“며칠 전에 어머니가 알마늘 주셨을 땐 이런 작업을 하셨는지 몰랐지. 울어머니 정말 고마우시다.”


며칠 전 본가에 갔을 때 어머니가 시장에서 한 망을 사서 TV보며 깠다며 알마늘을 한 통 가득 주셨는데 이런 작업이 수반되는 것인 줄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사실이다. 엄마는 항상 그랬다. 내가 지켜본 엄마의 삶은 늘 고되고 거칠어 보였다. 낯선 사람들이 집에 몰려와 얼마 없는 세간에 빨간딱지를 붙일 때도, 3명의 자식과 병든 시모의 생계를 위해 농장과 건축현장 허드렛일을 오가며 품을 팔 때도 엄마는 단 한 번도 약한 모습을 내비친 적이 없다. 철없는 내 눈에 비친 엄마는, 원래 고기를 싫어했으니까, 새 옷보단 헌 옷을 더 좋아하고 단물보단 맹물을 더 좋아했으니까, 엄마의 삶은 원래 그렇게 억척스러운 것이고 가족에게 뭐든지 양보하는 것이 엄마에게 자연스러운 것인 줄로만 알았다. 


엄마는 마늘 한 망을 홀로 까시며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하다못해 깐마늘을 내어주시면서 ‘아이고 힘들더라.’며 언질이라도 주실 것이지 자식 앞에서 한없이 과묵하기만 한 엄마에게 왠지 모를 서운한 감정도 스쳐 간다. 




일요일 밤 12시, 내일 출근을 앞둔 시점에 아내와 나는 주어진 과업을 간신히 해치울수 있었다. 핀잔을 주던 아내는 이내 숙제 잘했다며 뿌듯해한다. 쉬지도 않고 2시간여를 작업한 터라 손은 아리고 알리신의 톡 쏘는 향이 온 집안을 진동한다. 


휴일 밤 아내와 마늘을 깠는데 그 마늘껍질에는 산과 들을 마음껏 뛰어놀던 코흘리개가 있었고 어리숙한 시골 청년의 첫사랑이 있었고 자식에게 무한하게 베푸는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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