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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Mar 29. 2021

운전과 독립

홀로 장시간 운전한 운전 독립 기념일

일찌감치 운전면허를 배우지 못한 이유는 학원비가 없어서였다. 취직을 하고 나서는 도무지 연습을 시도할 시간이 없었다. 도시에 살면서 대중교통을 활용한 삶에 별불만이 없던 나는 운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환경에 대한 우려까지 겹쳐져 앞으로 자동차를 몰 일이 없을 거란 막연한 다짐같은 것도 했었다. 그러다가 재난영화 <2012>를 보면서 인간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중요한 기술에 대한 깨달음같은 걸 얻었다. 주인공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운전을 하고 물 속을 수용하는 걸 보고난 뒤, 세상이 망할 때를 대비해 운전과 수영을 꼭 배워놔야 하지 않을까라는 농담같은 말을 던지고 다녔다. 그렇게 대충 30대를 보내고 40대가 되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대개는 차를 가지고 다녔고 내가 운전을 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곤 했다. 

"운전을 하면 자유로워질 수 있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그러나 이런 친구들의 말이 그다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유라니? 운전을 하면 술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는데? 

미국 대도시에서 살면서 서울보다 낙후된 대중교통을 매일 이용해야만 했지만 그리 큰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대중교통 범위 내에서 우리 예산으로 살만한 집이 점점 줄어들었다. 내가 운전을 하면 찾아볼 수 있는 집의 범위가 늘어났다. 게다가 몇 년 동안 복닥거리면서 글을 썼지만 어떤 성과도 못 느끼고 허무하던 시절에 손에 쥐는 '증'을 가지고 싶어서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했다. 

필기시험은 가볍게 통과했지만 실기는 마의 산이었다. 어렵기로 손꼽힌다는 뉴욕시 안에서 주행 시험은 기대했던 것보다도 까다로워서 첫 시험에서 바로 떨어졌다. 운전 선생은 다시 시험 날짜를 잡자고 했지만 기운이 나지 않아서 다시 미루다가 필기 시험 유효일이 다되어갈 때즈음 한 달간 연습하고 재도전에 나섰다. 그리고 참으로 놀랍게도 시험에 붙었다.

목숨을 걸고 내 주행연습을 도와줬던 남편과 친구는 합격 소식에 놀라며 말했다.

"뉴욕이 실수했네."

"응.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운전자가 도로에 나서게 되었어."


농담이 아니라 나는 정말 몇 달간 도로의 무법자가 되어야만 했다.

나이들어서 운전을 시작하기는 힘들다고 여러 사람이 입을 모으는데 그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자동차에 앉으니 도로의 선을 잘 지키고 있는지, 속도를 어떻게 유지해야 하는지, 저 차가 혹시 나를 덥치진 않을지 다양한 걱정들이 휘몰아쳤고 그 걱정을 이기기에 나의 운전 실력은 너무나 미숙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고속도로로 출근을 해야하는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20분 넘게 고속도로를 타게 되었는데 이건 정말 딴 세상의 감각이었다.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문화 충돌같은 거였다. 걸어다니면서 보던 시야와 SUV에 앉아서 고속도로 지평선을 바라보는 시야는 다른 세상의 것이었다. 갈릴레오 시대에 사람들은 지평선 너머로 가면 절벽이라 믿었다는데 내가 딱 그 시대의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저 소실점 너머에 가면 길이 있긴 한 걸까, 줄줄이 지나가는 자동차의 크기는 원근법상 얼마나 큰 걸까, 내 속도는 이 세상에 맞기는 한 걸까. 그리고 수많은 트럭 옆을 벌벌 떨며 지나가야 했다. 매일 뉴욕 고속도로에는 트랜스포머 1편부터 6편까지 찍어도 부족할만큼 수많은 트럭들이 지나다녔고, 그 옆을 지날 때마다 트랜스포머는 액션 영화가 아니라 호러 영화였나 생각이 될만큼 무서웠다. 

고속도로에 들어가거나 빠지거나, 차선을 변경하거나 할 때마다 양보해주는 차들이 매우 고마웠고 다행히도 속도나 느리다며 욕을 해대는 무례한 이들은 없었다. 이사를 한 후에 한달 넘게 한 대의 자동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해야 했고 운전은 연습을 해야하는 나의 몫이었다. 베테랑 운전자인 남편은 사소한 것에도 지적을 아끼지 않아 매일 멘탈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강해졌고 드디어 다른 차를 픽업하러 나서면서 나혼자 운전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이 운전의 좋아하는 부분이라는 음악 들으면서 따라부르기를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Daft Punk 음악을 들으면서 고속도로를 2시간 운전하고 있노라니 드디어 친구들이 말했던 '자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라기보다는 내 힘으로 내가 원할 수 있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에 가까운 듯했다. 원하는 때에 원하는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술. 어디에 기대지 않고 내 스스로 무언가를 해결할 수 있다는 독립감. 육중한 자동차 무게만큼의 책임이 생겼지만 그 책임감이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 마흔이 넘어 자동차 문화를 알게 되고, 다른 시야를 배우고, 어우러지는 기술을 터득했지만 지금이라도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혹시라도 뒤늦게 운전을 시작하려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것이 얼마나 새로운 문화인지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기술을 가르칠 실력을 못되지만 저멀리 지평선 이후가 안 보인다해도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조언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의 속도가 조금 변했다. 변화를 겪는 동안은 고통스럽지만 결과적으로는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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