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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sgirrrl Aug 30. 2023

갑자기 스마트폰 Sober

휴대폰을 잃어버린 48시간 동안 


뉴욕 시외 기차역 

기차역에 주차했던 차를 타고 휴대폰을 연결하려 할 때 휴대폰이 근처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방금 내린 기차는 이미 역을 떠났다. 식은 땀이 흘렀다. 정말? 애플 워치로 폰을 찾았지만 근방에 없다는 반응만 계속 됐다. 몇 분 만에 어떻게 휴대폰을 잃어버릴 수 있지? 몇 분 전까지도 손에 들고 인터넷에서 단어를 검색했는데?


떨리는 마음을 추스리고 간신히 집에 돌아와서 랩탑을 켜고 'find my iphone'을 가동시켰다. '분실' 설정을 하니 애플 페이가 중단된다는 공지와 함께 폰 화면에 뜨게될 문구를 입력하라고 했다. 남편의 전화번호와 내 이메일 주소로 연락해 달라는 문구를 남겼다. 

폰은 내가 온 반대 방향으로 이동 중이었다. 종착역에 도착한 기차가 다시 맨하탄으로 돌아가는 중인 듯했다. 맨하탄과 롱아일랜드를 잇는 롱아일랜드 레일 로드, 일명 LIRR 사이트에 들어가 분실물 신고서를 온라인으로 작성했다. 유실물 센터는 오직 펜스테이션에 있고 신고한 물품과 유사한 물품이 등록되어 연락이 오기까지 일주일을 감안하라고 써있었다.  

그리고 일단 소셜 미디어와 은행, 주식거래 앱 비밀번호를 바꿨다. 구글 보안 설정에 들어가니 등록된 기계에서 아예 로그 아웃을 하는 설정이 있었다. 연동된 아이폰 sign out을 했다. 


다음은 LIRR의 분실물 절차 후기 검색. Reddit에 올라온 글에는 만약 아이폰이나 갤럭시를 잃어버렸다면 찾기를 포기하라고 써 있었다. 분실물 센터로 가기 전에 누군가 가로챌 게 분명하다면서 말이다. 절망감을 가지고 찾아본 분실물 등록 절차는 이러했다. 

기차 안에서 발견된 모든 분실물은 오직 펜스테이션 분실물 센터 관리자만 열 수 있는 상자에 담겨서 펜스테이션으로 이송되는데 이게 또 며칠이 걸린다. 펜스테이션에 도착한 분실물은 특성별로 카테고리화되어 데이타베이스 시스템에 등록되고, 분실물 신고와 비교하여 매치가 되면 신고자에게 연락이 온다. 그러니까 이송-등록-매칭 과정을 고려하면 며칠이 걸릴 지 알 수 없다. 분실물이 몇 만개에 달하기 때문에 등록이 잘 못 되면 못 찾을 확률도 있다. 평소 미국의 일처리를 생각해보니 그저 한숨만 나왔다. 


다음날 일어나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외로움이 밀려 왔다. 옆에서 계속 조잘대는 룸메이트가 갑자기 사라진 것 같달까. 밤낮으로 손에 쥐고 사서로운 것들을 쉴 틈 없이 보던 순간이 끝났다. 

자책감까지 합쳐져 혼란하고 좌절스런 마음으로 출근을 했다.

매일 운전하면서 듣던 구글맵 네비 사운드와 늘 당연히 존재했던 스포티파이의 팟캐스트와 음악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래된 차에 달려 있는 구식 네비게이션을 켰다. 막히는 구간 따위는 표시되지 않는 순수한 네비게이션이었다. 적적한 마음에 보다 원초적인 기계 사운드의 네비게이션을 들으며 사무실에 도착했다.  


 펜스테이션이 아닌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뉴욕 중앙역)에 도착한 폰은 다음 날까지 계속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최악의 경우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기차 안에 계속 있는 상황. 그런데 앱에 뜨는 장소는 차고지가 아닌 역의 중심부였고,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기차 안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 주워서 특정한 곳에 넣었다는 것? 곧 펜스테이션 분실물 센터로 이동하겠지? 그러나 오후가 되도록 폰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랜드 센트럴에 가서 물어봐야 하나 싶을 때, LIRR 홈페이지에서 각종 문의는 트위터 DM으로 해달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트위터? 어째서? 어쨋든 트위터(현재 X) 유저이니 DM을 보내봤다. 먼저 노고에 감사를 표하며 폰을 놓고 내렸는데 하루종일 그랜드 센트럴에 있다고 나온다, 내가 가면 찾을 수 있냐, 등을 물었더니 몇 분 후 답이 오는 게 아닌가! 아니, 이게 된다고? 이렇게 빨리 답이 온다고? 

DM 담당자는 분실물 신고서 번호를 물어본 뒤, 원칙적으로 펜스테이션 분실물 센터로 이송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데 특별히 네 폰이 여기 있다고 하니 더 빨리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답했다. 이 대답은, 하물며 봇 채팅이 아니구나! 저기, 거기에 사람이 있군요! 

트위터 DM까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 이제는 운에 맡기는 수밖에.

폰을 잃어버렸다고 하니 친구와 지인 모두 행운을 빈다고 했다. 한 친구는 폰이 좋은 사람에 가기를 빈다며 "수성(mercury)이 역행하는 기간은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그래 별자리에 탓을 돌리자. 혼돈이로구나.


알람 시계의 알람을 듣고 깨어나서 폰을 들여다볼 일이 없이 화장실로 향하면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어젯밤에도 퇴근 후에 휴대폰을 안 보게 되니 시간이 남아서 청소를 하고 책을 읽었다. 

아침에도 휴대폰을 안 보게 되니 묘하게 시간이 남았다. 커피를 마시면서 잠시 멍을 때렸다.

다시 자동차 네비게이션을 켜고 어떤 팟캐스트도 듣지 못한 채로 출근을 했다.


그런데 정말 나쁘지 않았다.

카톡이야 어차피 그리 급한 게 아니니 노트북으로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폰을 들여다 볼이 없으니 그 시간에 해야할 일들이 정리가 되었다. 시간이 있으니 미룰 필요도 없었다.

갑작스런 외로움을 금단 현상 같았다. 공교롭게도 남편이 가족들과 여행을 떠나고 나홀로 집에 있는 상황이었고 스마트폰이 없으니 누구와도 연결되어 있는 것같지 않았다.

이것은 세상과의 단절일까? 외로움에 약간의 공포도 포함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하기로 했던 일을 하고 미뤄놨던 책을 읽으면서 요근래 암암리에 미국에서 유행한다는 휴대폰 감옥이 생각났다. 휴대폰을 일정 기간 동안 가둬놓는(?) 박스로 정해진 기간 동안 열 수가 없다. 주말 동안 휴대폰을 넣어 놓고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있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휴대폰을 간절히 원하다가 서서히 적응된다는 식이었다. 비슷했다. 그전까지 코를 박고 보고 있던 그 수많은 소식들이 단번에 끊기니 이래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폰을 분실하기 전 나는 살짝 중독 상태였다. 볼 필요가 없는 것까지 읽었고 덕분에 눈이 계속 안 좋아졌다. 

지속되는 불안감, 일을 계속 미루는 죄책감, 세상에 대한 분노, 어떤 것도 하기 싫은 귀찮음의 감정이 생활을 지배했다. 휴대폰을 손에 들고 소파에 앉아 있는 시간을 휴식이라 믿었다.

시간은 빨리 흘렀고 시간은 늘 부족했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등장하고 있는 휴대폰 가두는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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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된 폰은 기대보다 훨씬 일찍 발견되었다. 트위터 DM의 영향인지 공식 분실물 센터가 아니라 그랜드 센트럴 역 사무실에서 남편에게 연락이 갔다. 오늘 신분증을 가지고 오면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담당자와 드디어 전화를 하고 내 핸드폰을 가지러 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올해의 가장 놀랍고도 행복한 순간이라고 생각했다.

48시간 동안 변화무쌍했던 나의 감정선. 좌절에서 행복까지. 그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감정들이 널을 뛰었다.


그랜드 센트럴 스테이션 역에 도착해 이름을 말하고 신분증을 건네주고 반환 형식에 정보를 기재하고 이틀 전에 헤어졌던 폰을 돌려 받았다. 뉴욕 대중 교통국과 철도청에 진심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여러 사람이 거쳐갔을 텐데 모두들 원칙대로 일을 하고 하물며 좀더 배려를 해주었다니. 미국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고객 서비스 역사상 최고의 서비스였다. 


돌아오는 길에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휴대폰을 켜고 안 쓰는 앱을 하나둘 지웠다.

폰을 찾을 기간 동안, 그 새로 생긴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나는 몇 년간 내가 왜 시간이 그렇게 턱없이 부족한지 깨닫게 되었다,

왜 일을 하기 싫고, 게으름이 늘고, 몇 분이라고 계속 미루고 싶어지는지.

왜 그렇게 수많은 정보들이 머릿속에 뒤엉키고, 무엇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전전긍긍했는지. 

스마트폰 기반의 생활이 그럴 수밖에 없음을.


아날로그 혹은 스마트폰 이전 기술에 대해 익혔던 구세대는 스마트폰과 단절되어도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는 그런 것을 이미 실행하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힙한 유행이 빈지티 폴더폰을 사용하는 것이라는데 그 이유도 알 것 같다.

그 모든 산만함. 그 모든 불안감. 그 모든 귀찮음이 끝도 없이 쏟아지는 알람과 정보 때문이었다니.


폰이 다시 내게 돌아온다면 정신차리고 살겠다고 전지전능한 존재에게 빌었다.(종교가 없으므로 대상은 불분명하다) 역행하는 수성에게 빈 것일 지도 모르겠다.(그리 심각하게 별점을 신봉하지는 않지만)

이 글을 쓰게된 것도 폰이 사라진 동안 생각을 연결할 시간을 얻게 되서이다.

누군가는 고객이 끊임없이 폰을 보도록 만들고 그 정교한 기술을 피하기는 인간 차원에서 힘들 지도 모른다.

단절은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스마트폰 없이 더 오래 시간을 보냈다면 어떤 상황이 되었을까.

뉴욕 교통국이 너무 일을 잘 해주신 덕분에, 알 수 없게 되었다. 


#휴대폰분실 #그랜드센트럴 #LIRR #감사하는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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