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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 포카리를 건네다. [ 인생 포카리 ]

by 경첩의사



환자에게 포카리를 건네다. [ 인생 포카리 ]

1.


"그때 포카리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인생 포카리였습니다."



환자가 기쁜 마음,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 가득 담아서 나에게 말한다.

내가 환자에게 건네준 포카리 하나가 그 이유다. 물론 포카리뿐 아니라 환자가 많이 회복, 치료하는 과정을 내가 해주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몸에 부러진 뼈 개수, 이름만 하여도 예닐곱 개, 환자 몸에 들어간 새빨간 혈액 봉지도 열 개 가까이 된다. 환자 스스로도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말하였다.

일주일 전, 중환자실에서 나는 환자에게 포카리 한 캔을 건네주었다.


"환자 이제부터 물 마셔도 됩니다."


환자 상태가 회복되면 담당 의사는 지시한다. 여러 이유로 금식을 하는 경우가 병원에서 많다. 전체적인 문제, 혹은 의식이 저하된 환자이거나, 복부에 문제가 있는 경우 상당 기간, 회복되는 것에 따라 금식을 한다. 환자에 따라 다르지만 그 과정에서 물을 달라고 보채는 환자도 많이 있다. 치료 목적의 금식이라고 설명하는 과정도 힘들기도 하다. 그 과정을 환자가 이겨내고 회복하면 물을 마시라고 지시한다.

중환자실에 있는 환자, 그리고 환자 옆에 담당 간호사에게 지시한다.


"이 환자 물 주세요!"


나는 이 환자에게 물을 마시라고 하고, 한 번 더 물었다.

물을 마시라는 말에 환자 표정이 시큰둥하다. 아마도 평상시 물을 잘 안 마시는 사람인가? 아니면 너무 오랫동안 금식을 하여 더 자극적인 무언가를 찾는 것으로 보인다. 마치 내가 장거리 러닝을 한 후, 시원한 물도 좋지만 이온음료를 더 찾으려 하는 그런 느낌 같았다.


"물 마셔도 되지만 시원하게 포카리, 이온음료도 가능합니다.

혹시 포카리 좋아하세요?"


'포카리'라는 말에 환자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잽싸게 중환자실 앞, 자판기로 향했다. 포카리를 하나 뽑아서 환자에게 가져다주었다. 중환자실 환자 침대에 누워있는 환자이기에 캔을 바로 마시기 어렵기에 빨대와 물통이 필요하였다. 옆에 간호사는 내 마음을 아는지 옆에서 이미 물통을 준비하고 있었다.


빨대를 통해 포카리를 마시는 환자 얼굴에 아주아주 환한 미소가 가득하였다. 마치 인생을 다 가진 것 같은 표정?

마라톤 풀코스를 뛴 후 내가 시원한 포카리를 마셨던 그 표정과 똑같았다.


"포카리가 정말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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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징크스가 있다.

나에게 좋은 징크스이다.



수년 전부터 중환자실 환자에게 무언가 사다 주곤 하였다. 뭐 대단하고 비싼 것은 아니지만, 예를 들어 요플레나 포카리 같은 것을 사다 주었다. 내가 환자에게 먹을 것, 포카리나 요플레를 사다 준 환자들은 더 잘 회복한다는 것이다. 중환자실 환자가 회복되어 물, 식사를 할 수 있는 경우에는 오로지 생수와 식판에 나오는 식사뿐이다. 간혹 일주일에 두세 번 있는 면회시간에 보호자가 와서 간단하게 먹을 것을 사 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환자 상태에 따라 갑작스럽게 물, 식사 시작이 결정된 경우에는 먹을 것이 정말 없다. 환자 상태가 아직 불안정하기에 먹을 것도 제한되지만 그 흔한 음식 배달 어플 사용도 못 한다.



수년 전 우연히 어느 환자에게 요플레를 사다 준 적이 있다. 내가 손수 병원 내 편의점까지 가서 내 돈으로 환자에게 요플레는 사다 주었다. 일반적으로 오랜 기간 동안 인공호흡기, 기관 내 삽관을 한 환자의 경우 목이 부은 상태로 오래되어 음식물 삼키는 것이 어렵다. 그런 경우에는 물을 마시는 것도 자칫 사례에 걸려 위험할 수 있다. 이럴 때는 요플레, 바나나, 혹은 카스테라 빵같이 삼킴이 쉬운 음식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물을 마시고 싶고, 무언가 먹고 싶은 환자 표정을 보면서 안쓰러웠다. 그렇다고 환자의 보호자가 먼 거리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터라, 요플레, 카스테라 빵을 당장 사 오라고 말하기도 애매하였다. 환자도 제아무리 칼로리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게 담긴 커다란 봉지에 담긴 수액 주사가 혈관을 타고 들어간다 해도 입으로 먹는 것이 최고의 영양공급이다. 내 환자가 빠른 회복, 잘 회복하는 것은 나의 기쁨이자 병원에서 최고의 목표이다. 요플레 몇천 원, 그리고 내 발걸음 십여 분으로 환자가 잘 회복한다면 얼마든지 하겠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 후로 나는 자주, 꼭 필요한 순간에 무언가 내돈내산으로 환자에게 먹을 것을 사다 주었다.


이렇게 나의 행복한 징크스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인생 포카리'로 행복한 징크스는 이어진다.




때로는 가족이, 환자의 엄마가 직접 무언가를 가져와서 그것을 환자에게 준다.
그것이 가장 좋은 치료약이 되기도 한다.




가방 안에서 검정 비닐봉지를 주섬 꺼낸다. 봉지 안에는 바나나우유가 세 개 들어있다. 빨대와 함께 가지런히 담겨 있다. 편의점에서 쉽게 보이는 바나나우유와 전혀 다르게 보인다. 하나하나 모두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묻어있는 바나나우유다.


이틀 전 내가 말했다.


"아이가 잘 먹는 것 있을까요?

좋아하는 것이요?"


단 1초도 지나지 않아서 바로 엄마는 말한다.


"바나나우유 좋아해요!"



지난 10여 일간 인공호흡기, 입에 관을 꽂은 채 지내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관을 제거하였다. 아직 목이 부어있어 기침도 원할지 않고, 물도 삼키기 힘든 상태이다. 그러나 조금씩 아이는 힘을 내기 시작하고 있다. 옆에서 격려해 주는 의료진을 따라 스스로 기침을 조금씩 하려 한다.

이렇게 하루 이틀 아이가 노력하면 입으로도 먹을 수 있는 상태가 예측되었다. 아직 10대 후반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아이, 어린이로 보인다. 아이에게는 무엇보다 본인만의 최애 음식, 먹는 것이 있을 것이다. 아직 정신이 혼미한 아이이기에 엄마에게 물어보면 가장 정확하다.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음료는 뭐가 있을까요?"


이렇게 해서 검정 봉지 안에 바나나우유가 들어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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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나의 작은 베풂이 누군가에게 아주 큰 행복이 되어준다. 그것은 작은 한마디 말일 수도 있고, 캔커피 하나가 될 수 있다. 거액의 명품 가방이 꼭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무조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검은 흑심이 묻어있는 그 명품 가방은 결국 누군가에게 부메랑 칼날로 돌아올 것이다.

"그때 포카리 너무 고맙습니다!"

"정말 인생 포카리였습니다."

이렇게 말한 환자는 퇴원하는 날, 나와 인사하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였다.



"살려줘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마도, 나는 다음에 또 어느 환자에게 포카리, 아니면 다른 무언가를 사다 줄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다. 그만큼 내 앞에 있는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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