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오랜만에 하프를 달리고 왔다.

걷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by 경첩의사


오랜만에 하프를 달리고 왔다.



정확히는 하프코스 마라톤 대회에 다녀왔다. 혼자가 종종 뛰는 하프 러닝이 아닌, 만 명이 넘는 러너들과 함께 뛰는 대회이다. 하프코스 대회에 나가본 지는 십여 년이 넘었지만, 언제나 대회가 다가오면 두근거린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걷지 않고 두어 시간을 뛸 걱정이 가장 크다. 무사히 내 두 다리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코스를 마무리할 생각이 가장 크다.



1759061301013.jpg



[ 그저 뜀박질에서 시작한 것이, 10km 하프, 마지막 풀코스까지 이어졌다. ]


풀코스 마라톤은 마친 그 느낌, 한마디로 말하면 이것이다.



'할 수 있는데 안 해봤잖아!'

그래서 해봤는데 되잖아!


해봤는데 되잖아.


그렇다.


마음속에 두려움이 하나 사라졌다.

두려움을 갖는 것이 아니라 하면 된다.

이제는 하면 되는 것이다.


'끝까지 걷지 않고 뛰었다.' 이 말은 이번 레이스에는 못하였다.

다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골인 지점에 도착하였다.


그렇다.


그렇게 나는 오늘 나 자신이 한 번 더 성장하였다.


https://brunch.co.kr/@mdearnest/99





오늘 다녀온 곳은 내가 가장 많이 나간 하프코스 대회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대회 신청이나 출발 전 주차 등이 수월하였으나 작년부터 러닝 열풍으로 이것저것 곤란한 상황이 생긴다. 가장 문제가 주차, 출발지까지 이동이 문제다. 출발 한두 시간 전 여유 있게 도착, 준비하면 되지만 주차난으로 좀 더 서둘러서 가야 하는 문제이다. 출발에서도 이전에는 종합운동장 트랙 안에서 여유롭게 준비, 순서대로 출발하였으나 인원이 만 명을 넘어가면서 외부 도로에서 출발, 도착하는 번거로움이 생겼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같은 주로를 뛴다는 웅장함, 감동은 그곳을 뛰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쾌감이다. 오늘 나도 그 만여 명의 사람 중의 한 명이 되어 하프를 뛰었다. 비가 오는 관계로, 기록에 대한 욕망을 잠시 내려놓고 안전하고 즐기는 오늘의 하프를 처음부터 생각하였다. 비가 살짝 내려 더위만 시켜주기를 바랐지만 중간중간 내리는 엄청난 빗방울과 시야도 방해가 되고 도로에 물웅덩이는 계속해서 나를 어렵게 만들었다.


1759061300844.jpg


역시 마라톤은 정직하다.

지나 봄, 핑계가 절반의 이유, 나머지는 나의 나태함으로 제대로 운동을 못하였다. 한 달에 채 100km 못 채우는 경우가 허다하였지만, 여름부터 나름 더 노력해서 달렸다. 한여름에 노력하고 흘린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9월이 되어 몸이 가볍다는 느낌이 저절로 나에게 왔다. 더불어 몸에 달리기 마일리지를 열심히 쌓아가는 9월이 되었다. 그런 결과가 바로 오늘 9월 28일 하프 코스에서 나왔다.





마지막까지 걷지 않고 달렸다.



매번 무너지는 마지막 3km에서 속도가 느려지는 것이 아닌, 아주 살짝 늦어졌지만, 마지막까지 나만의 속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내가 처음 목표한 시간 안에 완주하였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내 두 다리, 심장이 튼튼하게 나를 버텨주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비를 맞으며 뛰면서 온갖 생각들이 머리 안에 복잡하였지만, 골인 지점을 넘는 순간에는 그 모든 잡다한 것들이 사라져 버렸다. 이렇게 비가 세차게 내리는 마라톤은 인생에 기억이 남을 것이다. 아울러 오늘 대회에 함께 나간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에게 감사하다. 함께 모여 뛰고 끝나고 함께 식사하고 서로에게 응원과 덕담을 건넨다. 특히 오늘 첫 하프를 뛴 두 친구에게 축하와 응원을 다시 보내본다.


언제나 그렇지만, 뛰는 중간 특히 마지막 3km 가량은 너무 괴롭고, 내가 왜 돈을 내고 이 고생을 하는 것인지 자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 골인 지점에 들어오고 완주 메달을 받는 순간 가슴 뿌듯한 무엇을 얻는다. 내가 오늘 뛴 거리는 21km, 단 2시간이지만 나는 앞으로 또 다른 21일, 21개월, 21년을 더 멋지고 재미있게 살아갈 힘을 얻고 왔다.



이러니, 내가 이렇게 비를 맞으면 또 뛰러 나가는 이유이다.

하프를 뛰고 와서 이 정도라면, 풀코스를 뛰고 온다면 어떤 느낌이 들지???


오늘 나와 함께 같이 마라톤을 나간 친구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만여 명의 러너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역시 함께 뛰고 땀 흘리고 같은 마음으로 달리는 동료가 있어 인생은 더 따뜻하고 살만하다. 역시 마라톤은 정직하다.



걷지 않고 끝까지 뛰었다.


2025년 9월 28일.



1759061301128.jpg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삶을 살아가기 위해 중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