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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Oct 17. 2023

진심으로 환자를 보다

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진심.



심으로 환자를 보다

 

어느 외상외과의사의 진심.




 

최근 어느 블로그에서 십여 년 전 나가수 영상, 그리고 그에 대한 글을 보았다. 어느 가수의 노래( 물론 나는 그 가수를 모르지만 ^^ )와 그 가수의 진심에 대한 글이었다. 나가수가 한참 유행할 때 몇 번 본 기억은 있지만 그 가수 노래는 역시나 처음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잘 모르지만 내가 듣기에도 진심으로 노래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심이란 것이 무엇인가?



진심이란 사전적 정의는 거짓 없는 참된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어느 일을 하던, 사람을 대하던 진심으로 대하여야 한다. 그것이 인간 사이, 사회에서, 그리고 모든 일에서 기본이 되어야 한다. 물론 이렇게 말하고 듣는 것은 도덕 교과서에 나 나올 말이다. 세상은 절대로 이렇게 교과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경찰, 판사 같은 직업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병원에 있는 나는, 외상외과의사인 나의 진료 원칙에 대해 고민해 보았다. 환자를 진심으로 보는 것에 대한 내 원칙, 내가 하는 것에 대해 써보겠다. 항상 머릿속에 실타래로 얽혀 생각만 하던 나만의 원칙, 진심이지만 한번 글로 적어보려 한다.

 

 

 지금 여기 중환자실에 내가 봐야 할 중증외상 환자가 바로 앞에 있다.

당연히 몸 여기저기에 수많은 관들이 꽂혀있고 주렁주렁 수액과 피가 달려있다. 환자는 인공호흡기에 호흡을 전적으로 맡기고 환자가 할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스스로 숨도 못 쉬고 오로지 이곳 의료진들이 처치, 처방으로 주는 약물, 수액, 그리고 혈액으로 환자 목숨을 유지 중이다. 단 한순간이라도 소홀히 하면 환자는 곧 죽음의 문턱 아래로 떨어지게 된다.

 


 

이미 환자에게 서너 개 승압제가 달려있다. 각기 조금 다른 역할을 하는 혈관수축, 심장근육을 짜주어 환자 혈압을 올려준다. 심한 저혈압이 지속되어 중요 장기인 뇌, 심장, 폐, 간과 신장 등에 혈액이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을 경우 치명적인 결과가 오기에 최소한의 혈압 유지가 중요하다.

 

진심으로 환자를 본다면 승압제만 주주 장창 달아놓고 기다리는 행위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이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인위적인 약물이 전부가 아닌 실질적으로 필요한 수혈, 수액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봐야 한다. 어느 것이 우선순위인지 아무도 모른다. 모든 것이 함께 우선순위가 될 수 있지만 자칫 근본적인 원인 해결을 소홀한 채로 억지로 약물로 쥐어짜주는 것만 한다면 환자 몸은 더 망가지게 된다.

 

다시 죽음과 사투를 하고 있는 이 환자를 다시 살펴본다.

 





 

1.

 전체적으로, 즉 머리부터 목, 가슴과 복부, 골반으로 거쳐 다리, 발끝까지 다시 본다. 물론 방금 영상 검사, CT를 통해 어디서 골절 부위, 출혈되고 있는지를 대략 보았으나 다시 내 눈으로 하나씩 보게 된다. 미처 발견하지 못한 피부 어딘가에 작은 상처에 나는 피도 점점 출혈이 지속될 경우 더 큰 재앙으로 결과될 수 있다. 물론 단순하게 환자 피부, 전신 상태를 육안적으로 보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몸에 달린 굵은 관들, 혈관주사관을 통해 수액, 혈액들이 정해진 속도, 양으로 잘 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모두 각각 본인 고유의 악기 소리를 정확히 내야 그것이 모여 화음, 아름다운 연주가 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지금 들어가고 있는 수액, 약물, 수혈이 모두 각각 역할을 잘해야 한다.

 

 





2.

 이제 출혈, 어디서 피가 나는지를 다시 평가하고 그것에 맞춰 치료해야 한다.

출혈 부위를 치료함에 있어 반드시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것이라면 치료 시점을 절대로 늦춰서는 안 된다. 만약 뇌 안 출혈이 증가된다면 이는 뇌를 압박하고 뇌조직을 죽일 수 있으므로 즉각 머리뼈를 열고 출혈을 잡는 수술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출혈 부위를 수술적 치료로 하지 않는다. 골절을 동반한 뼈 주위 출혈에 대해서는 골절에 대한 수술적 치료와 압박을 통해 지혈이 되게 해야 한다. 최소 서너 곳 이상에서 동시에 피가 나는 경우 이 모든 출혈에 대해 하나의 출혈이라고 생각하고 치료해야 한다.

 

 우리 몸 전체의 7-8% 가 혈액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인 70kg라고 가정하면 약 5-6리터의 혈액이 몸 안에 있다. 각각 200-300 cc 출혈이라고 예상되는 서너 개 부위 출혈이 동시에 발생한 다면 환자는 치명적 결과를 가져온다. 출혈의 근본적인 치료는 그 출혈을 막는 지혈이 되어야 하지만 즉시 지혈하기 어려운 경우라면 출혈되는 양만큼 수혈을 즉시 해야 한다. 이는 저혈압, 몸속에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중요하다.

지난여름 지하차도에 물이 순식간에 차 들어와 안타까운 생명을 잃은 사건이 있었다. 그 사건에서 첫 시작은 작은 물줄기였겠지만 그것이 감작스럽게 증가되어 생명을 위협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첫 출혈은 작아 보이지만 그 출혈이 점차 증가되고 커질 경우 생명을 위협할 수 있을 만큼 커진다.

 

 




 

3.

 우리 몸 안에 60%는 수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외 뼈, 근육 등이 있으나 수분이야말로 신체를 유지하기 위한 기본 성분이며 필수이다. 다발성 중증외상, 특히 여러 부위에 출혈이 동시다발적 발생할 경우에

출혈 이외 몸 안에 수분도 함께 빠져나간다.

 이러한 환자에게서 전체적 몸 안에 수분, 체액 상태를 평가가 중요하다. 실시간으로 출혈되고 몸 안에 체액이 빠져나가고 또 수액, 혈액으로 보충되는 상황에서 환자를 평가하기 어렵다. 그러나 냉정히,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환자 상태를 보여주는 모니터에 혈압, 맥박 등 수치를 기본으로 중심 정맥압, 각종 혈액 수치, 피부 상태, 소변색과 소변 나오는 양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루 최소한의 수분 요구량이 있다. 날씨, 신체 상태, 활동량 등에 따라 다르지만 이런 지속적으로 피가 나는 중증외상환자라면 몇 배 더 수분이 부족하기에 적절한 수액으로 공급해 줘야 한다. 이런 신체 내에 수분, 수액이 부족하다면 이는 신체 여러 부위에 악영향을 줘서 신장 기능 저하, 신부전도 발생하고 이런 다발성 장기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다발성 장기 부전, 쇼크로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다.

 몇 시간 전 응급실에서 환자를 보고 평가한 후 지금 다시 이곳 중환자실에서 환자 상태 변화를 보고 정확하게 수분, 이 환자 수분 상태를 평가하고 적절한 수액을 줘야 한다. 수액도 종류가 다양해 기본이 되는 생리식염수부터 다양한 수액들을 이 환자에 맞춰 정확한 양만큼 줘야 한다.

 

 




 

4.

 수혈이 시작한다. 소위 '피는 피로 따라간다'라는 말이 있다. 즉 몸 안에 나오는 실혈량, 이미 출혈량보다 수혈을 더 줘야 한다는 말이다. 이미 출혈된 양에 앞으로 출혈이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라 충분히 예상하기에 그것에 맞춰 수혈을 해야 한다. 최근 헌혈 인구의 감소 등으로 혈액 공급이 원활하지 않기에 무조건 수혈이 아닌 꼭 필요한 상황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흔히 수혈하는 종류로는 적혈구, 혈장, 혈소판 종류가 있다. 각각 다른 상황에서 적절히 수혈을 해줘야 한다. 퇴원을 하거나 중환자실에서 치료가 잘 되어 일반 병실로 전실하는 환자의 수혈 숫자를 조회해 보곤 하였다. 가끔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란다. 100, 200을 훌쩍 넘긴 수혈 숫자를 보고 이 환자가 살아서 생명을 되찾는 데는 이곳 의료진 노력뿐 아니라 전국 여기저기서 헌혈을 한 사람들의 정성과 마음이 합쳐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수혈만으로 모든 치료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방법들을 이용하여 피가 신속하게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5.

 이 환자에게 지금까지 들어간 수액, 혈액을 모두 합하면 이미 10리터가 넘어간다. 환자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그리고 출혈되는 혈액을 보충해 주기 위해 주었다. 육안적으로 약 70kg 정도로 보이는 이 환자 몸에 수분이 대략 40리터 정도로 예상된다. 부러지고 피나고 부어오는 조직들에서 빠져나간 수분양이 정확히 가늠이 안된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물론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수액, 수혈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계속 들어가는 수액, 혈액은 우리 몸 어딘가에 쌓이게 된다. 치료에 있어 몸 안으로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빼주는 것도 중요하다. 우리 몸 밖으로 배출되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소변이다. 그렇기에 중환자실 환자에서 시간당 나오는 소변량을 중요하다. 일반적인 기준, 목표는 시간당 환자 몸무게(kg)의 절반(cc)으로 한다. 70kg인 이 환자에게서 시간당 최소 35cc가 소변이 나와야 원활한 순환, 배설이 이뤄진다고 말할 수 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미 수 시간 동안 10리터 가까이 들어갔기에 이는 우리 몸 여기저기에 고이게 된다. 대부분은 정맥 혈관을 따라, 폐, 심장에 몸 순환, 혈압을 유지하기 위해 쓰인다. 하지만 이미 초과가 된 경우에는 여기저기에 부종, 체액 저류를 일으킨다. 팔다리, 몸통이 부어오르고 가장 문제 되는 것이 폐부종이 발생한다. 만약 다발성 늑골 골절과 수상 당시부터 혈흉, 폐에 피가 차는 손상을 당한 환자라면 더 심하게 차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것을 빼줘야 한다. 손가락 굵기의 흉관을 새롭게 가슴에 꽂아 배액을 시켜서 폐를 더 팽창시켜 환자 산소 공급을 효율적으로 해준다. 만약 배에도 피가 많이 고인 경우 복압 증가로 문제가 발생하기에 관을 꽂아 넣어 고인 혈액을 빼준다.

 환자 몸에 관을 그것도 굵은 관을 새롭게 꽂는 자체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으로 인해서 신중히 결정하고 또한 관을 넣는 시술 자체도 조심스럽고 정확히 해야 한다.

 

 





 

6.

 환자는 절대 모니터 숫자, 각종 검사 수치만으로 봐서는 안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몸, 그 자체를 봐야 한다. 팔에 감긴 혈압계를 통해 모니터에 보여주는 혈압 숫자가 전부가 아니다. 피부, 몸통, 다리에 외상외과 의사, 주치의인 내 손, 손가락으로 혈압을 느껴본다. 내 손에 혈압, 맥박을 정확하게 수치화하는 기계가 달린 것은 아니지만 실시간, 바로 몇 시간 전 환자 몸에 가져갔던 나의 손끝 느낌은 정확히 그 사이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의과대학 교육, 의대생 실습에서 복부 진찰에서 기본적으로 '시청촉타'를 배운다. 이는 시진, 청진, 촉진, 타진이라고 배를 직접 보고, 청진기를 통해 청진하고 만져보고 두드려보는 것까지 순서대로 모두 환자 옆에서 하는 것을 말한다. 불변의 진리, 기본이며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고 진료하는 의사가 해야 하는 것이지만 이 또한 변해간다. 다 건너뛰고 환자를 모니터, CT 검사 하나만으로 평가, 진단하려고 하는 요즘 MZ 의사들이 보인다.

안타깝고 슬프지만 현실이다. 나는 이렇게 변하지 않고 내 손으로 환자를 진심으로 보고 더해서 각종 검사까지 합해서 최종 진단과 치료를 하려 한다.


 



 

 

7.

 아직 갈 길이 멀다. 이미 팔다리 네 개 중 세 개가 부러지고 몸통, 가슴과 배 안에 피가 계속적으로 나고 있다. 급한 불은 껐으나 아직 넘어가야 할 언덕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다. 지금 첫 언덕을 간신히 넘었다고 절대 안심하면 안 된다. 마라톤 풀코스 42.195km를 완주하기 위해서는 본인과 싸움, 더위, 언덕 등 수많은 고비를 넘겨야 한다. 자칫 처음부터 오버 페이스나 자만심을 가진다면 중간에 스스로 주저앉아버린다. 마찬가지로 이 환자 치료에서도 절대 무리하지 않고 첫 치료 순간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나가야 한다.




 몇 시간 전보다 혈압이 조금 안정되고 가슴에 꽂힌 관에서 나오는 피의 양도 조금 줄어들고 색깔도 옅어지고 있다. 아울러 찐하게 조금 나오던 소변도 점차 노란 소변색에 가깝고 양도 늘어나고 있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다시 이 환자를 진심으로 치료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전신부터 다시 보기 시작한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놓친 부위가 없는지, 각종 혈관주사관으로 들어가고 있는 약물, 수액, 혈액이 정확하게 내가 처방한 속도로 들어가고 있는지 살핀다. 출혈 부위가 처음 치료 계획대로 잘 될지 여부도 다시 판단한다. 지금 방법대로 지혈을 기대할 수 없다면 다른 수술적 치료방법도 언제든 할 수 있을 준비가 되어야 한다. 좀 전까지 들어가던 수액, 수액 주입 속도가 지금도 이 환자에게 맞는지 다시 생각한다. 과유불급이라고 수액양도 너무 부족하거나 많을 경우에 또 다른 합병증을 가져올 수 있다. 환자 몸통, 가슴, 복부, 팔다리를 만져보고 부종이 있는지 전체적인 수분 상태가 부족하지 여부도 한 번 더 평가한다.

추가적으로 일정 시간이 지나 환자 흉부 X-ray, 혈액검사를 통해 지금 치료 방법, 환자 상태가 호전되는지 참고 자료로 한 번 더 체크한다.

 

 



 

 혈압, 맥박 등 활력징후, 각종 혈액 검사 수치가 이제 조금씩 정상수치로 가까이 가고 있고 환자 또한 힘을 내고 있다. 그러나 이제 마라톤으로 치면 출발점을 지나 10km를 지나는 언덕을 넘었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방심하지 않고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이 환자가 끝까지 버티고 좋아져서 집으로 갈지,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최선, 그리고 진심의 치료를 계속하는 것. 그것이 외상외과 내가 하는 진심으로 환자를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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