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스를 잡고 첫 경험. 열댓 번 넘게 회진하였습니다.
[ 첫경험 제목이라고 호기심, 궁금, 깜놀해서 클릭하셨을 것 같아서...
미리 말씀드립니다.
여기서 첫경험은 경첩의사가 첫 집도, 메스를 잡고 첫 수술하였을 때를
회상한 글입니다. 아주 아주 오랜 시절 이야기죠... ㅎㅎㅎ
첫 수술, 첫 집도 수술 이야기... 이제 시작합니다! ]
1.
아침에 가장 먼저 A 환자를 보러 간다.
배에 상처가 우하복부에 3.5cm 작게 하나만 있는 환자다.
A 환자에게 묻는다.
"환자분 괜찮으세요?"
"배 안 아프세요?
가스 나왔나요?"
"이제 조금씩 걸어 다니셔야 합니다. 걷는 운동하세요."
그리고 지긋이 배를 만져본다.
청진기를 배에 댄다.
어제 수술했을 당시 배 안을 다시 상상해 본다.
어제 수술하면서 묵었던 충수돌기, 그 주위 혈관들에서 출혈이 없는지 상상해 본다. 다행히 환자가 어제 수술 전보다 많이 좋아졌다고 말해서 다행이다.
바쁘게 오전에 급한 일들을 처리하고 늦은 오전 시간에 다시 A 환자를 보러 간다. 이번에도 같은 대화, 그리고 다시 청진기를 배에 가져다 댄다.
점심 식사 후 오후 시간에도 다시 찾아가서 환자를 본다.
또 저녁에도 A 환자를 또 보러 간다.
저녁에 볼 때 수술 부위 거즈 속으로 약간 출혈이 보여 다시 드레싱을 한 번 더 해줬다. 이정도의 피가 살짝 묻은 것은 내일 해도 큰 문제가 안되지만 이 환자는 꼭 해줘야 한다.
다음날 이른 아침 시간에 본 환자는 말했다.
"새벽에 가스 두 번 나왔어요!"
환자 말에 내가 더 반갑고 기뻤다!
"그래요! 아주 좋은 것이에요!
이제 수술한 지 2일 째인데 순조롭게 잘 회복하고 있어요!"
이날도 나는 A 환자를 서너 번 보았다.
교수님과 함께 하는 공식 회진은 한 번이나 나 혼자 자체 회진을 서너 번 포함하면 이미 이틀 동안 환자 얼굴, 배를 열 번 넘게 보았다.
이틀 동안 내가 가장 많이 보고 많이 말하고 모든 신경을 쓴 환자이다.
가장 오랜 시간 동안 본 시간은 수술하는 동안 한 시간여의 시간이었다.
[ 이 메스가 첫 집도한 수술 당시 사용한 메스이다.
당시 사용한 메스로 초집도 패를 만들어 선물 받았다.
외과의사에게 영광의 초집도 기념패다 ]
2.
"시작하겠습니다. 메스 주세요!"
떨리지만 힘찬 목소리와 함께 메스를 쥐고 환자 배를 가르기 시작한다.
복벽 층층이 차례로 열리며 배 속 소장, 대장이 보이기 시작한다. 염증이 심한 충수돌기를 찾아 제거하는 충수돌기절제수술의 시작이다. 외과 의사가 되어 첫 집도하는 수술, 주임교수님께서 나의 건너편에서 제1 보조의사 역할을 해주신다. 시작할 때 내었던 힘찬 목소리는 어디 갔는지 모르게 수술은 점점 진행이 더뎌졌다. 보조의사로서 수없이 많이 보던 것과는 전혀 다르게 집도의 자리에서 하는 수술 과정이 너무 어렵고 긴장의 연속이었다. 마취 후 개복, 충수돌기로 가는 혈관 결찰, 충수돌기 절제, 다시 개복되어 있는 복벽을 봉합하는 과정으로 충수돌기절제술은 마무리된다.
익숙하고 유능한 외과 의사가 하면 몇십 분에 끝나는 수술이 첫 집도의 역할을 하는 전공의 1년차 손에 한 시간 가까이 걸려 가까스로 끝났다. 앞에서 묵묵히 제1 보조의사를 해주시며 마지막까지 후배 의사를 도와주시고 가르쳐 주셨던 교수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최근 복강경으로 충수돌기 절제술이 대부분 이루어지지만, 내가 첫 집도하던 시기에는 개복수술이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나는 지금 메스를 들고 환자 복부 어디라도 자신 있게 치료의 손길을 내미는 외과 의사가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첫 집도의 떨림과 긴장의 연속은 잊지 못하고 있다. 무사히 마무리된 충수돌기염 환자 회진은 그날부터 퇴원까지 하루에도 대여섯 번 내가 담당했다.
내일모레면 이십여 년 전 이야기다.
첫 집도. 첫 수술이다.
외과의사의 시작을 알리는 수술이다.
제아무리 간단한 충수돌기절제술 ( 흔히 말하는 맹장수술, 정확한 용어는 충수돌기절제술 )이라 하더라도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메스를 들고 집도하는 과정은 긴장되고 힘들다.
그날 수술이 끝나고 등에 땀이 삐질 젖었었다.
하지만 그날 수술로 끝난 것이 아니라 수술 후 그 환자가 퇴원할 때까지 나는 그 며칠 사이 열댓 번 이상 환자 회진을 하였다.
3.
인생에 있어 모든 첫 경험은 짜릿하다.
누구에게는 짜릿으로 남을 수 있지만 긴장, 초조, 때로는 기쁨으로 남을 수 있다. 너무 힘들어서 차마 기억하고 싶지 않을수도 있다.
인생 최고의 첫 경험은 언제일까요?
첫 자전거를 타는 순간은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다. 중심도 잡기 힘들고 계속 옆으로 고꾸라지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좌절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첫 경험은 머리 안에 가장 많이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이 기쁜 일이건 때로는 슬픈 일이건 마찬가지다.
그 첫 경험들이 모이고 모여 사람들은 성장한다.
성장의 기틀은 그 첫 경험들이 모아서 만들어진다.
처음 시작이 중요하다.
사람 몸과 생사를 다루는 의업은 특히 도제식 교육 안에서 현명한 멘토, 스승을 만나야 하고 그것을 슬기롭게 받아들이는 자세도 중요하다. 6년간 수업과 실습을 통해 배우고, 이어서 수련의 신분으로 4~5년을 더 배워야지 환자 몸에 메스를 가져갈 수 있는 외과의사가 된다.
몇 년 후에는 내 면허번호 앞 선배 의사들보다 나의 뒤 후배 의사들이 많아지게 된다. 현재 이 자리에 외과의사인 나를 있게 해준 것은 나의 첫 집도를 보조해준 주임교수님을 비롯해 수많은 선배 의사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이제 나도 나의 뒤에 많은 후배 의사들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갑자기 그 환자. 내가 첫 수술을 집도한 환자가 잘 있는지 궁금하다. 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을지... 잘 있을 것이라 믿는다.
"환자분. 이제야 고백합니다.
그 때 수술하고 열 댓번 회진 한 의사입니다.
수술 집도한 의사이기도 합니다.
메스를 잡고 첫 경험. 열댓 번 넘게 회진을 하였습니다. "
"첫 집도였지만 바로 앞에 외과 주임교수님께서 보조의사를 해주셨습니다.
정말 정성껏 한땀 한땀 수술하였기에 잘 회복하셨고 지금도 건강하게 잘 계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