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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첩의사 Oct 28. 2024

'아들아, 경첩의사야. 아빠 친구 잘 봐주렴.'

아빠 친구가 환자로



아빠 친구가 환자로


 1. 


경첩의사야!   ( 아들아! ) 

OOO 환자가 거기로 갔지?

잘 아는 친구야.

그 친구 상태가 어떻지?

가서 잘 봐주고, 잘 챙겨주렴.


아빠와 통화다.

 ( 아직까지 아버지보다, 아빠라는 말이 나에게 더 익숙하다. 

   아빠나 아버지나 모두 같은 것이니까! )



고향과 두어 시간 거리에서 살고 있다.

권역외상센터에는 가깝게는 한 시간, 길게는 두어 시간 거리 환자들도 온다. 물론 간혹 아주 먼 거리에서도 환자가 오곤 한다. 가급적 가까운 거리, 최대한 신속하게 치료를 받는 것이 치료를 담당하는 의료진이나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치료라는 것이 어느 곳에서나 간단한 약물로서 가능할 수 있지만, 치료 과정 중 갑작스럽게 수술이 필요한 상황에 닥치면 수술까지 해야 할 상황이 닥칠 수 있기에 수술 준비까지 되어 있는 병원에서 치료하는 것이 환자에게 최선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게 아빠 친구분, 환자는 이곳 권역외상센터로 왔다. 

인구 6만여 명 사는 군 지역, 고향에서 발생한 사고, 환자가 이곳으로 왔다는 확률, 그 환자분이 아빠 친구라는 확률은 아주 적을 것이다. 물론 없으라는 법은 없지만 매우 적은 확률로 이곳에 온 것이다. 내가 근무가 아닌 시간에 전원, 이송해서 와서 나는 이 환자 존재를 다음날에서 알게 되었다.


다행인지, 내가 담당하는 복부 외상이 아닌 다른 부위가 주된 수상 부위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러 부위를 심하게 다치고, 기존에 가지고 있는 기왕력으로 여러 약물도 복용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좋은 상태는 아니었다. 의식도 불안정하고, 인공호흡기 통해 숨을 쉬고 있는 말 그래도 중증외상환자이다. 중환자실 한쪽 자리, 침대에 아빠 친구분 환자가 자리 잡고 있다. 머리맡에는 환자 이름과 나이, 성별이 함께 쓰여있다.



나이  ' 7 O '

나이를 보고 순간 움찔하였다.

이 환자 나이가 아닌, 아빠 나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같은 나이다. 


고령의 중증외상환자. 

만약 내가 이 환자 담당 주치의라고 해도, 첫 만남부터 그리 좋은 결과를 예상하고 보호자들에게 자신 있게 말하기 주저할 것이다. 다만, 그 순간순간 최선을 다한다는 것. 그것뿐이다. 



2.


이 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원한지 이제 3주 가까이 된다.

지난 3주 동안, 내 담당 환자에 한 분 환자가 추가되었다. 


바로 아빠 친구분.


중환자실에 여러 환자들 상태를 살피다가 한 번 더 그 환자를 본다.

슬쩍 가서 늘 내가 하던 대로 환자를 본다. 전체적인 상태, 혈압 맥박 등 상태, 몸에 달린 관들도 한 번 더 본다. 추가로 펜라이트도 한 번 환자 눈빛을 비추어본다. 몸에 자극도 한 번 더 주어 움찔하는지, 의식이 깨어나고 있는지도 살펴본다.

추가로 하나 더 하는 것. 바로 면회시간이다. 


환자분의 아내분이 온다. 매번 그리고 언제나. 아내와 그 자식들도 함께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온다. 눈물이 글썽이다. 환자를 바라보는 아내, 그리고 자식들 모두. 그러나 안타깝게도 환자는 그 소리를 듣는지, 못 듣는지 모르지만 전혀 대답도 반응도 없다. 



중환자실 면회시간에 나는 그 환자분 가족을 만난다. 아내와 자식들 모두.

꾸벅 먼저 인사한다.



저도 OO 고향 사람입니다.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내 가운에 달린 명찰 이름을 이미 본 것이다. 아내분은 이미 엄마와 통화도 하였다. 엄마와도 환자, 그리고 환자 아내도 친분이 있는 분이다. 어떻게 통화하였는지 모르지만, 아들, 경첩의사 존재, 이 병원에 있으며 환자 상태에 대한 안타까움과 빠른 쾌유를 함께 말하였을 것이다. 

지금 이 환자는 아빠 친구이자 엄마도 함께 아는 분이다. 



 3.


누구나 다 아프다. 안 아프다는 것은 거짓이다. 사소한 감기부터 심각한 질병, 부상까지 누군가에게나 다 아픔이 있을 수 있다.

언젠가는 다 병원에서 인생을 마무리한다.

지금 시대는 태어남과 죽음 모두 병원에서 맞이한다.


나는 병원, 산부인과가 아닌, 시골집에서 태어났다. 물론 내 기억은 전혀 없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과 주위 이웃들 이야기를 통해 들었다. 당시 시골에서 집안에서 출산, 분만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래도 건강하게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나도 그렇지만, 언젠가는, 그리고 지금 모든 사람들은 아이들은 병원에서 출산, 생명이 태어나고 모두 다 인생 마무리 또한 병원이 될 것이다. 어떤 선택으로 병원에서 평생을, 지금보다 더 많은 시간을 살아갈 것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었는지 그 운명은 모른다. 다만 그렇게 나는 살아야 한다는 것이 사실일 뿐이다. 


그 환자분은 지금 이 병원이 인생의 마지막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기적같이 바로 다음 주에 의식이 완전히 회복되어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럴 확률은 아주 적고, 지금으로서 최선의 결과, 과정은 예기치 않은 합병증이 발생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의식, 그 문제는 조금씩, 아주 조금이라도 하루하루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치료하면 된다.

100%를 위해서 치료하기보다, 예기치 않은 가능성을 최대한 줄여가는 것을 목표로 치료해간다. 그렇다면 좋은 결과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꼭 고향으로 건강하게 돌아가기를 바란다. 


어제도 고향에 계신 아빠와 통화하였다.

평상시와 같은 안부전화.

그러나 오늘도 역시 안부 전화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아들아, 경첩의사야. 아빠 친구 잘 봐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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