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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콘 Jun 14. 2019

삶의 끝이라 해도
우린 희망을 갈구하지_브런치 무비 패

영화 <갤버스턴>을 보고

* 이 글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서 영화를 봤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천하고 고생스럽게 살더라도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낫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모두가 과연 이 말에 모두가 동의할까? 시간이 지나고 살만큼 살고 나면 동의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살아보니 좋은 날이 오더라. 살아보니 사는 게 낫더라와 같은... 그러나 그건 시간이 지난 후의 이야기이다. 지금 지옥을 걷는 사람에게는 그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밑바닥에 만난 그, 그녀


로이(벤 포스터)는 폐에 뭔가 있다는 진단을 받는다. 의사는 정밀 검사를 해보자고 하지만, 로이는 그대로 병원을 뛰쳐나온다. 차에 앉자마자 콜록거리는 로이는 담배를 피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담배를 피운다. 그는 딱 봐도 삶의 의지가 없어 보인다. 누구 하나 기다려주는 사람 없고, 밝은 미래는 없기에 그는 그냥 그렇게 살기를 맘먹었다. 이렇게 살다가 죽는다.


어둠의 세계 행동대장 같은 로이는 사장의 명령에 따라 누군가를 겁을 주고 오라는 일거리를 받았다. 총은 안된다고 했지만, 불안한 마음에 총을 챙기고 동료와 함께 한 남자의 집에 침입한다. 그러나 그 장소는 함정이었고, 로이의 동료는 바로 옆에서 머리에 구멍이 난다. 죽기 직전 로이는 총을 빼앗고 성인 남성 세명을 죽이고 붙잡혀있던 여자를 데리고 탈출한다. 그 여자도 거기 있으면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까?


로이는 빠르게 집으로 간 후 간단한 것만 챙겨서 동네를 뜬다. 큰 소란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장의 말에 어긋나기에 로이는 최대한 마을에서 멀어진다. 어차피 그 동네에 미련은 없었다. 그 자리에 있다가 얼떨결에 살아서 같이 도망쳐온 여자 록키(엘르 패닝)는 이미 자신의 삶에서 도망쳐온 여자였다. 19살의 나이에 오렌지 카운티에서 도망쳐 나온 그녀는 집으로 가고 싶지 않아 했다. 그렇게 그들의 미묘한 동거 도주가 시작된다.



#삶에 포기할 수 없는 거 하나씩은 있잖아, 미련 같은 거


누구나 삶에서 놓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하나씩은 있다. 오렌지 카운티를 벗어나서 제대로 삶을 살고 싶었던 록키는 본인의 현실에 참담함을 느낀다. 결국 벗어나도 몸을 파는 여자가 될 뿐, 자신이 원했던 삶은 없었다. 고향인 오렌지 카운티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하던 록키는 어느 이유에선지 로이에게 집을 잠깐 들리고 싶다 말했다. "약간의 돈과 옷을 챙기겠다."는 이유로. 그러나 오렌지 카운티에서 담아온 것은 3살짜리 어린아이 '티파니'와 총소리 그리고 옷가지였다. 자신의 동생이라고 소개한 어린 소녀 티파니와 함께 그들은 '갤버스턴'에 도착한다. 태풍이 자주 찾아오고 한적한 '갤버스턴'


그들은 한 여관을 잡고 잠시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수상한 관계에 의심하는 여관 주인과 함께 그들은 묘한 휴식기를 갖고 있었다. 바다를 한 번도 본 적 없어하는 티파니를 위해 바다를 다녀오면서 로이는 묘한 감정을 느낀다. 누구 하나 기댈 곳 없던 삶인데 누군가 자신에게 의지를 한다는 것을 알면서 그는 묘한 혼란을 느낀다. 그리고 로이는 삶의 마지막 미련인 옛 연인을 11년 만에 찾아간다. 뭔가 애틋하고 아련한 것을 기대했지만, 옛 연인의 냉정함에 로이는 조금 당황을 느낀다. 과거 이야기를 하다가 밀어내는 옛 연인에게 로이는 말한다. "나 곧 죽어" 그리고 그녀는 담담하게 로이에게 세상의 진실을 전한다. "사람은 다 죽어" 로이는 결국 삶의 마지막에 자신에게 의지하는 그녀들에게로 돌아간다.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것


정말이지 산다는 건 그런 거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다는 것. 사람들은 갑자기 변하기도 한다는 것. 로이는 자신이 죽기 전에 록키와 티파니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자 한다. 돈을 마련해서 그들이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죽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록키는 그런 로이의 든든함에 새로운 희망을 가지게 된다. 지옥 같은 삶 속에서도 작은 희망이 들어왔고, 그걸로 그들은 충분히 반짝거려 보였다. 


하지만 산다는 건 그런 거다. 티끌 같은 희망은 굉장히 쉽게 산산이 부서질 수 있다는 것. 로이의 보스는 결국 로이를 찾아냈고, 참 아이러니하게도 로이는 죽기 직전 탈출하지만, 록키는 목숨을 잃고 만다. 방금 막 희망이라는 달콤함을 만난 것 같았는데 그 발치에 닿기도 전에 그녀는 어두운 나락으로 떨어진다. 도망치다가 교통사고로 인해서 경찰에 잡힌 로이는 폐암인 줄 알았던 자신이 그저 폐에 균이 있어서 그랬음을 알게 된다. 굉장히 단순한 수술로도 그는 치료가 되었고 20년의 복역을 하게 된다.



#잔잔하고 깊게 출렁거리는 영화


내일의 미래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던 로이는 록키와 티파니를 만나면서 타인과의 공존을 이해하게 된다. 록키는 성욕을 푸는 남자들만 만나다가 로이를 만난 후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들 스스로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지만, 젓가락도 개수가 많아지면 단단해지듯이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끼리도 서로를 보고 배울 수 있으며 단단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결국 답을 모르겠다. 개똥밭이어도 이승이 나은지, 아무것도 모르는 저승이 나은지. 살다 보면 정말 좋은 일이 오는 건지 아닌 건지 말이다. 잠깐의 좋은 순간을 위해서 평생을 고생하는 것은 너무나 고역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래서 제목이 갤버스턴인가 보다. 맑은 파도는 자주 없고 태풍과 비바람이 가득한 바다. 그러나 잔잔한 바다는 그 무엇보다 아름답고 예쁘듯이, 삶의 고난을 이겨낸 순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함일 테니까.


갤버스턴에서 연기한 배우들의 밝은 연기를 보고 싶다. 벤 포스터와 엘르 패닝의 연기는 흠잡을 수 없이 깊었다. 미묘한 표정의 변화도 행동들도 너무 완벽한 몰입이라서 마치 그들의 삶을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명대사는 없다. 그냥 긴 여운이 우리를 반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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