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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Oct 11. 2022

변화와 겁

[11]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서울 쥐 편

[편집자 주]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서울 쥐와 하동 쥐는 함께 지역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만났습니다. 서울 쥐는 여전히 서울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이번 열한번째 글은 서울 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편지들은 본 브런치와 함께 하동 쥐가 운영하는 경쟁사 블로그에도 공동 게시될 예정입니다.






scene 1. 어느 금요일 오후


오늘에 충실하겠단 네 말에 어떤 반박을 할까 고민하다 글이 지체됐고, 조직적 삶에 스며들어 무미건조한 나날을 보내다 글 쓰는 법을 잊어버렸어... 거짓말 같겠지만 연구보고서 이외 어떤 다른 형태의 글을 쓰는 방법, 혹시 있었다면 능력 자체가 소멸해가고 있어. 책도 읽지 않아. 연구에 관련된 책과 논문만 머릿속에 쌓여가고 있어.


이러다 정말 이상한 상태에 돌입할 것 같아 바쁨을 내려두고 휴가를 냈어. 카페에 앉아서 도넛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씹어먹으면서 머리를 비워. 네 말을 빌리면 그동안의 스며듬을 지워내고 있어. 이 글은 그 지워냄의 연장 선상에 있어. 뭔가 멋지군 연장 선상이라..


네 글을 읽다 나도 어느 땐가 너에게 하동에서 '뭐'라도 하라고 무례한 종용을 했었던 게 떠올랐어. 너는 이미 하동에서 어마무시하게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데 말야. 내가 지켜본 너는 네 고집 때문에 한가로이 지내지 못하는 상태에 돌입한 듯 해. 그러니 지역의 여러 문제에 진심으로 고민하고 결합하며 여러 '뭐'들을 해나가고 있는 걸 테고.


그런데 시간과 나이의 흐름과 쌓여감을 무시하지 못하니 어떤 '서두름'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 우리 위치에 부여받은 어떤 책무(?) 같은 것들을 위해?? 물론 이 이야기에 너는 그 책무는 누가 정한 것이냐며, 동의한 적 없다며 이야길 하겠지. 이런 이야길 늘어놓으면서 스스로 정말 꼰대스런 마인드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누군가가 규정해놓은 적정한 시간대에 적정한 위치에 있지 않으면 나의(어쩌면 너도) 다짐은 끊임없는 증명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 불편함이 발생한달까? 그 불편함에 대해 어떠한 반론을 제기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음으로부터 파생된 불편함을 굳이 말하지 않을게.


난 그래서 조금 조급한 상태에 있는 것 같아. 나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이런저런 생각과 계획이 있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내 나이에 내 (사회적)경력에 뒤따르는 어떠한 요구받음을 적절하게 대처해내지 못하고 있어. 40이라는 숫자가 주는 압박 때문이겠지?? 아닌가 어쩌면 그 요구받음을 쳐내고 있는 내가 사실 무능하기 때문일까. 


어느새 이 조직에 자리 잡은지도 5년이 다 되어가. 지겹다기보다 지쳤달까. 아니 지쳤다기보다 뭔가 변화가 필요하달까. 명확한 계획은 없지만 변화가 자꾸 머릿속에 맴돌고 혼란을 가중시킨다. 이럴 때 너는 과감하게 떠난거겠지?






scene 2. 전주의 카페에 앉아


장소와 시간을 옮겼어. 너에게 한 번에 여러 이야길 하고 싶었나. 아니 사실 생각과 의식이 뚝뚝 끊겨서일 거야. 내가 하는 이야기에 나 역시 아직 확신이 없어서가 아닐까.


완주 와일드푸드&로컬푸드 축제에 들렀다 전주에 왔어. 지역의 유명 축제를 즐겨보려 왔는데 일종의 직업병이 툭 튀어나오네. 동행한 이와 나눈 이야기 대부분이 뭔가 평가하고 대안을 찾는달까. "왜 이 근방에 안내(인 또는 책자)가 없을까?", "메뚜기나 개구리 구워 먹던 예전 프로그램이 없어진 이유는 뭘까?", "순환버스 관리가 좀 더 체계적일 수는 없을까?"



내가 그 축제의 기획자로 참여했어도 챙기지 못했을 부분들을 지적하고 짜증을 내고 있더라. 지역의 노력을 알아주지 못하는 것일까? 미래에 지역에서 일을 하고 있을 미래의 나에 대한 선제적 짜증이었을까?


요즘 부쩍 어떻게 살지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 처음 겪어보는 일종의 번아웃 상태가 자꾸 뭔갈 흔들어. 쉬는 것만이 정답일 텐데, 우리의 위치(?)가 그걸 허용칠 않는다. 어쩌면 이 역시도 오만일 수 있겠지. 나의 멈춤이 조직의 멈춤은 아닌데 용기가 나질 않네. 여기서 잠시 멈춤이 가까운 미래의 나에게도 큰 영향을 주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자연스러운 거겠지?


예전에 요정이었다는 전주 풍남문 인근에 있는 행원이라는 카페에 앉아서 드디어 너에게 보낼 편질 마무리하네. 카페 가운데 중정이 있고 우리네 가락이 흘러넘치고 있어. 무형문화재의 집이라는 소개가 있었는데 여라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인 거 같아. 나중에 기회 되면 한 번 와보길 추천할게.


스며드는 당연한 현상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변화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겠지? 만나이든 한국 나이든 우리 둘 다 잠시 같은 나이일 때 가까운 미래를 이야기 나눌 시간을 더 많아지면 참 좋겠다.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많이 드네.


하늘이 높다. 겨울이 오기 전에 갈게. 아님 중간에서 보자. 칼국수의 고장에서 만날까??

다 쓰고 보니 글이 너무 짧다. 조만간 내가 순서를 어기고 한 편 더 써볼게. 물론 이런 다짐도 눈앞에 놓여 있는 여러 연구보고서가 훼방을 놓겠지? 싫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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