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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Aug 27. 2022

스며들기

[10]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하동 쥐 편


[편집자주]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띄고 있다. 한 번은 서울쥐의 편지가, 그다음 주에는 하동 쥐의 편지가 실릴 예정이다. 하지만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어 편지가 각자 이야기만 늘어놓는 푸념이 될지도 모른다. 둘 다 지역을 위한 연구 및 실행을 수행하며 살다, 서울 쥐는 여전히 그 일을 하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시작한다. 서울 쥐는 브런치에, 하동 쥐는 블로그에 이 이야기들을 함께 게시하고 있다.


열 번째 글은 하동 쥐의 이야기다.






시간이라는 녀석, 참 빠르다! 올여름 녹아내릴 듯 뜨겁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는 선선함이 마음을 식혀줘. 벌써 9월이 코앞이야. 만화에서나 만났던 2022라는 숫자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걸 실감하게 돼. 니가 다녀간 8월의 첫 주가 아련해지는 걸 보면 그만큼 또 새로워졌구나 싶기도 하고 말이야.


올여름은 한 달 반가량 동안 거의 매주 타지 친구들이 다녀갔어. 어릴 적, 대학시절, 첫 직장, 다음 직장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었지. 같은 라이프 사이클을 가졌던 그 시간만큼 그때로 돌아가서 이야기 나누느라 한참 웃고 떠들었어. 


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 다 알 수 없지만 저마다의 삶에서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지고, 또 무너진 세상에서 느낀 어떤 감정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어. 비슷한 생각의 메커니즘에서 살았던 친구들일수록 이야기가 길어진 것을 보면 이제 나도 나이가 든 걸까 싶더라고. 재밌는 건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말이 길어지는 것과는 달라, 적게 말해도 공감의 폭이 넓어져서 멈춤의 시간도 많다고 해야 할까? 대화 사이의 쉼이었겠지!



어릴 때의 친구들은 그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의 나와 너를 이야기하게 되더라. 각자의 가치관이 삶의 경로에 따라 달라져버렸던지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그만큼의 또 다른 시간이 필요함을 느껴. 나이가 들어서 만난 친구들은 비슷한 가치관 속에서 만난 덕분인지 쉬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나누는 시간이 금세 오더라고. 너무 진지해져 버린 건 아닌지 싶기도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진부한 이야기가 좋아. 누군가에게 진부한 그 무엇이 나에게는 가장 새롭거든. 정확히 말하지만 나를 새롭게 하는 시작 포인트가 되거든.


© greg_rosenke, 출처 Unsplash


친구들과 나누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내 안을 돌고 돌아.


"지역에 살아가면서 뭔가 해야 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들어. 어디에 있든 뭔가 큰 것, 대단하거나 의미 있는 것을 시작해야 한다는 그 말들. 누군가는 "이제 사업체 하나 차려야지", "공모사업 받아서 추진해 봐."라는 말이 툭툭 던지곤 하데?


근데 말이야. 도시에 있다가 지방으로 오면 뭔갈 꼭 해야 하는 거야? 그것이 가시화되어야 하는 거야? 뭔갈 하는 것을 보여주라는 듯이 말하는 것에 마음 한편이 불편하기도 해. 어쩌면 그것이 도시 지상주의는 아닐까? 어디에서 뭘 하든,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고 그 지역에 필요한 일이라면 어느새 스며들듯 나타나는 거 같아. 뭔갈 뚜렷하게 보여주는 방식보다는 나의 길이 스며들듯 가다가, 그것이 두각을 나타내면 더 엣지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들이 내 안의 선택을 꺼내놓기 시작했어.


"오늘에 충실할 거야. 무엇을 하든 작게 갈 거야. 작게 가더라도 옆을 보며 갈 거야. 같이 갈 거야. 뒷걸음질 치더라도 좋아. 가만히 있더라도 좋아. 그건 멈춘 것이 아니라, 선택의 일부일 테니까. 꿈이 무엇이든 그 걸 이루기 위해 서두르는 삶은 과감히 버릴 거야. 나의 꿈을 이루지 못할지언정!"

"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그 방향성이 확고하다면, 그다음부터는 어떤 목표를 가지기보다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다가, 어떤 시기에 특정 필요가 느껴질 때 그저 행해야 되겠어. 그때에 스며드는 삶을 산다고나 할까?"


한동안 친구들과의 대화가 멈췄어. 대화 속에서 각자의 나를 발견하고, 우리의 언어 속에서 나를 다듬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너와 나의 글이 어디로 흐르고 있는 걸까 생각해 보게 돼. 끊임없이 생각할 거리, 고민할 거리를 찾아내고 결국은 네가 말한 ‘어떤 문제도 없는’ 엄청난 경지일지도 모르면서 문제라 선택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싶어. 그 어떤 문제가 사실은 문제가 아님을 알면서도 말이지. 그 어떤 문제가 실로 큰 문제임을 모르면서 말이지.


그래서 우리가 쓰는 이 글이 좋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또 반대로 생각보단 많이 알면서, 뭘 모르는지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지 정리하는 중이기에 말이야. 곱씹을 시간이야.(사실 니 글을 20번 정도 읽었다면 네가 믿어 주려나?)


선선함이 가시기 전에, 두꺼운 겨울 이불이 나오기 전, 오늘 같은 헛소릴 면전에서 나누게 너의 곁으로 곧 찾아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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