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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i were there Oct 18. 2022

차이를 넘어

[12]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 - 하동 쥐 편

[편집자 주]

"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서울 쥐와 하동 쥐는 함께 지역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만났습니다. 서울 쥐는 여전히 서울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이번 열두번째 글은 서울 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편지들은 본 브런치와 함께 하동 쥐가 운영하는 경쟁사 블로그에도 공동 게시될 예정입니다.





지난 글 스며들기의 에필로그 


시답잖게 내뱉은 한 단어에 대한 집착으로 모처럼의 인사를 시작할까 해! 

네 편지를 보고 나의 스며듬과 너의 스며듬은 그 출발선이 달랐구나 싶더라. 스며듬의 주어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미가 다르게 전해짐을 이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어. 


누군가에게 있어 스며듬은 변화하지 않겠다며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임이고, 

혹자에게는 변화하는 나를 사회 속에 내던지고 그에 따라 내 안에 변화가 스며들도록 두겠다는 의미도 있을 거야. 

다른 누군가에게는 현재를 받아들여 그 시점부터 나와 타자의 변화가 내 안에 깃들게 하는 것이며, 

또 다른 이에게는 현재를 받아들이고 그에 맞추어 나만을 변화시키는 것도 있겠구나 싶어. 



우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겠지만, 같은 과정을 원하지는 않는 게 아닐까? 

어제의 나라면 그 다름조차 부정하려 했겠지만 오늘의 나는, 내 어리석음을 알기에 분산투자하듯 타자의 길을 그대로 두고 나의 선택을 믿어보려 해. 물론 그 와중에 나의 편견을 내려놓는다는 것이 얼마나 초고 난이도의 것인지도 알면서 말이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 어떤 목적, 의도성을 최대한 지우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걷는 선택을 하는 것! 한 개인의 삶의 궤적이 누군가의 삶의 궤적과 만나, 그 걸음이 우리의 걸음이 된다면 좋겠다는 그저 그런 바램만 가지는 것! 그 시기보다 그 과정을 기다리는 삶을 살고 싶어. 내가 말하면서도 무슨 헛소리인가 싶으네 ^^ 


너의 변화와 너의 겁을 너무나도 축하하고 싶다.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음에는 같이 겁내고 함께 변화하겠다는 어떤 동지의식(?), 혹은 믿음 때문이라 말하고 싶네. 니가 속한 그곳에서 일으킨 변화에 대해 나는 감히 너에게 지지한다고 말하고 싶어. 너의 말에 따르자면 내가 과감하게 떠난 이유는 그 변화를 일으킬 겁조차 내지 못했던 탓이거든. 이런 핑계 같은 변명을 할 수 있는 것도 지금 내가 속한 이곳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변화를 일으키려고 이제는 겁을 내고 있거든. 이제 알았어. 나는 과감하지 못해서 떠난 거라고!






- 로컬과 서울만이 다를 쏘냐


최근 내 안에 들불처럼 번지는 마인드를 꺼내 볼까 해. 


근래에 하동에서는 그간 코로나로 열리지 못했던 단체 행사들이 줄지어 열리는 중이야.


지난 금요일에는 내가 한때 살았고, 니가 다녀갔었던 하동의 악양면에 면민 체육대회가 열렸어.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던 그 축제의 현장에 가보았거든. 요양보호사로 돌보는 어르신을 따라나선 길이었지. 만국기가 펄럭이는 생활체육공원을 보면서 어린 시절 설레었던 운동회의 모습이 떠올랐어. 어린이들이 열심히 달리고 부모들이 응원하던 추억 대신, 지팡이를 짚고 느린 걸음으로 걸어나가 과자선물을 받아오며 아이처럼 웃는 백발의 어르신들을 볼 수 있었어. 보행기에 의지해 오고 가며 손뼉 치는 어르신들도 계셨지. 그 사이로 농악대가 신명 나게 저마다의 악기를 두드리며 각 마을 부스를 돌아다니고 있고, 아마도 흥을 돋우고 또 그 재미에 주민들이 농악대에 찬조를 하는 그런 상황이지 않을까 싶었어.



 


면의 여성 단체 협의회 분들은 한창 마을별로 어르신들 식사를 대접하다가, 노래자랑에 양푼 대접 두 개를 들고 무대 앞으로 뛰어나오더라. 트로트 가락에 맞추어 다 함께 춤추며 마을 지인을 응원하는 모습에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났었지. 사실 노래자랑은 둘째이고 첫째는 가락에 맞추어 몸을 흔드는 것, 듣도 보도 못한 춤이지만 그 흥만큼은 공감하게 되더라고. 이게 이분들의 축제이구나 싶었어. 


20대가 클럽에서 즐기듯, 어딘가에서는 또 다른 세대가 재즈를 듣고 술잔을 기울이며 즐기듯, 여기서는 여기만의 즐기는 방식이 다 다른 법이더라. 이게 무슨 재미냐며 나의 재미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어리석음을 돌아보게 됐어. 



지난 일요일에는 내가 일하는 요양센터에서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통영과 고성으로 워크숍을 다녀왔어. 20명의 50~60대 어머니뻘 샘들 속에서 청일점인 나는 엄청난 사랑을 독차지했지. 어떤 고추가 실한지, 구멍 난 고추는 어디 내다 팔지도 못한다며 탄저병 걸린 고추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둥, 59금 농담들이 오고 가는 관광버스 안은 모처럼 만의 외출에 설렌 마음조차 청춘인 그녀들로 가득했어! 휴게소 식사 타임, 서로를 소개하며 한자락씩 노래를 부르는 시간에 흥이 난 샘들이 이 좁은 통로를 그녀들만의 나이트로 만들어 버리더라. 어찌나 흥겹게 놀던지, 관광버스 춤이 촌스럽다고 생각했던 내 안의 마음에 부끄러움이 밀려왔어. 진정으로 그분들은 즐거워하고 즐기고 있었거든. 어쩌면 이분들이 현재에, 순간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고 계시구나 싶기도 했어. 



©einstein29, 출처 Unsplash

나의 세대 문화와는 다른 세대의 문화에 대해 저급한 것으로 폄훼하고 있었던 거지. 저급한 것은 분명 나였어. 홀로 그런 생각에 빠져 있던 사이에도 나에게는 동료로서의 존중으로 대해주시는 그분들이 너무 고마웠었어. 함께 관광버스 춤을 추진 않았지만 나를 소개하는 시간에 분명하게 말씀드렸어. 


“저는 춤을 못 춰서 같이 못 놀아도 이해해 주세요. 하지만 같이 노래 부르고 손뼉 치며 즐기겠습니다. 아참 그리고 사진기를 가지고 왔어요. 웃어주시기만 한다면 열심히 찍어볼게요. 제가 즐기고 노는 방식이 다른 지점은 이해해 주셔요. 혹시나 제가 방해가 될까 봐 올까 말까 고민을 했었어요.” 


다른 샘들이 웃으며 이렇게 답변해 주시더라. 

“같이 일하는 동료인데요 뭘, 자기 노는 방식이 다 다른 거죠. 그런 생각 말고 많이 웃고 놀아요.”




한창을 놀다가 다른 곳으로 걸어가며 구경하는 시간에 나눈 이야기에는 더 큰 울림이 있었어. 남자가, 젊은 사람이 요양보호사로 일하면서 어떤 서비스를 하는지 물어보시더라고. 이런저런 경험들을 이야기하며 나는 반대로 어떤 어르신들을 돌보는지 그에 따라 어떤 대처를 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구체적인 답변을 들을 수 있었지. 그야말로 제대로 된 워크숍이었어. 서로가 마음을 내어주는 과정, 놀고 공감하다 배우는 과정에 함께함과 배려만 있다면 다음 과정들이 스르르 일어나는 그 무언가가 있다는 선명함에 마음이 두근거렸어. 


현재 기준으로 모든 것이 어색하거나, 저마다의 세대와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쉬이 낮게 평가하거나 교류조차 일으키지 않은 것에 대해 나부터 그 마음의 경계를 송두리째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보지도 않고서 말하고, 행하지 않으면서 자신이 본 겨우 몇 개의 상황을 가지고 모든 것을 일반화시켜 왈가왈부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은 듯해. 분절된 역할로서의 판단에 앞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통섭적인 관점을 가지기 위한 시간이 아닐까? 


문득 2004년에 개봉된 영화 알렉산더의 한 대사가 마지막으로 떠올라.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지에서 동료들과 논쟁하다 타민족을 열등하게 보는 그의 동료들에게 한 말이 있었거든. 



나에 대한 판단을 존중하지 않은 건 개의치 않아.
허나 우리보다 훨씬 오래되고 다른 세상에 대한 너희의 경멸은 참을 수 없어!



로컬이 살아나고, 다양성을 가지기 위한 필수적인 마인드가 여기서 부터겠지! 로컬이고 서울이고, 이렇게나 편지가 길어진 걸 보면 얼른 만나야겠다 싶어. 그나저나 칼국수의 고장이 어디야? 곧 만날 때까지 건강만 하자.



#차이 #로컬과서울 #하동 #세대차이 #로컬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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