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쥐와 하동 쥐 이야기"는 서울 쥐와 하동 쥐의 주고받는 편지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서울 쥐와 하동 쥐는 함께 지역을 위한 연구를 하다가 만났습니다. 서울 쥐는 여전히 서울에서 비루한 삶을 살고 있고, 하동 쥐는 지역 현장에서 새로운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가진 둘의 푸념들이 여러 청년(혹은 중년)들에게 조그마한 즐거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적어봅니다.
어쩌면 2022년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를
이번 열세번째 글은 서울 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편지들은 본 브런치와 함께 하동 쥐가 운영하는 경쟁사 블로그에도 공동 게시될 예정입니다.
사무실에 앉아 귓속에서 흘러나오는 캐럴을 들으며 글을 적으니 겨울임이 실감이 난다. 아니 생각해보니 어제 몽실몽실 내리던 눈다웠던 눈이 겨울임을 알아달라고 떼를 쓸 때 겨울이구나라고 소리내어 말했었네. 내가 어떤 말을 내뱉는지, 아니 어쩌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 건지도 모른 상황 속에 있다는 방증이겠지?
매번 글의 시작이 심심한 사과구나. 네가 준 글을 읽고 생각에 잠겨 글을 빠르게 적어 보려 했지만, 삶의 퍽퍽함이 그러한 여유를 퍽이나 줄 리가 있나. 그냥저냥 몇 달이 지나버린 기분이야. 여러 일이 있어서 어떤 말을 옮겨야 할지 모르겠다. 신상에 대한 푸념으로 시작할까 해.
네가 옷방에서 거실에서 널부러져 자던 내 작은 보금자리에서 당분간 눌러앉게 되었어. 2022년 12월 계약 만료를 앞두고 당연히 거처를 옮길 생각이었는데, 집을 알아보러 여러 공인중개사를 다니며 나의 나이브함을 깨닫게 되었어.
내 예산과 원하는 방의 수를 이야기하면, 콧방귀만 돌아오더라. 내 삶을 돌아보니 어느새 이 집에 산 지 4년이 되었더라. 그러니 난 4년 전 시세로 집을 알아보고 다녔었는데 그사이에 대한민국에 불었던 부동산 광풍과 누군가들의 슬픈 영끌들이 집값을 과도하게 올려놨네. 내가 가진 예산으로 볼 수 있던 집은...뭐랄까...어떻게 현재 여기에 사람이 살고 있지 스러운 그런 집이었어. (그곳에 살고 있는 그들의 정신승리에 건배!!)
아까 말한 것처럼 이미 거처를 옮길 거란 (그릇된) 확신이 있었던 나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했지 뭐얌. 집을 옮기려고 막연하게 생각할 때야 내가 살던 집을 새로 구매한 이는 나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젊은이였고, 그는 내 (임시)집을 투자용으로 샀다는 걸 알게 됐어. 그는 은행의 힘을 빌리지도 않고 집을 현금으로 매수했던 것 같더라. 과하게 깨끗한 등기부등본이 기이하게 느껴질 정도로...
결국 난 불필요한 추가 비용을 지불하고 지금 집에 1년 더 살기로 했어. 내가 바보같이 지불한 비용을 들으면, 너는 또 그 돈으로 너에게 투자를 맡기지 그랬냐며 타박을 하겠지...나도 알아 내가 얼마나 우매한지...
사실 돈도 없었던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11월 중에 이사를 무리하게 할 정신도 여유도 없었어. 몇 달을 똑같은 핑계를 대고 있는데, 실제 내 삶이 너무나도 똑같이 올 1월부터 12월이 훌쩍 넘은 오늘까지 반복되고 있다는 거야...
1월부터 3월까지는 경남 ○○에서, 3월부터 5월까지는 전남 ◎◎에서, 5월부터 8월까지는 다시 경남 ◇◇와 충남 ◆◆에서...8월부터 9월까지는 경북 □□에서, 9월부터 11월까지는 경북 ■■에서, 11월에는 다시 전남 ◎◎에서, 12월인 지금은 또 전남 △△에서... 때론 정신만 가기도 했지만 대부분 공간적으로 여러 지역을 떠돌아야만 했었지...
너도 알다시피 하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계속 반복이야 제안하고 따내고 연구하고 보고서 쓰고 납품하고, 납품하면서 다른 제안을 하고 또 계약을 하고 또 연구를 하고 blah blah..
토 나온다는 상태도 넘어서서 이제 신물만 올라온다야. 지겹다는 말도 지겨워서 이젠 지루할 정도고. 물론 성과는 엄청났던 것 같아. 내가 그리 원하는 명예까진 아니더라도 일종의 분에 넘치는 인정이랄까, 그런 비스무리한 것도 얻었던 것 같아. 예전 직장에서 방송 활동할 때 정도의 가외 수입을 올해 기록한 걸 보면 금전적으로도 나쁘진 않았던 것 같고.
젠장. 그럴싸한 정신승리를 해보려 해도, 사실 결론은 똑같다 친구야.
결국 아!직!도! 이!놈!의! 서!울! 이!놈!의! 직!장!을 떠나질 못하고 있다.
ⓒPixabay, www_slon_pics
내년도 혹시도 똑같이 반복될까 걱정을 하며 한숨도 내쉬어보고 저녁에 잠도 못 이뤄 보면서도 아직 떠나질 못하고 있다. 사실 예전에 계약갱신청구권을 포기했을때는 막연하게 직장도, 집도, 심지어 현재 적을 주고 있는 이 서울이란 지역도 떠나려는 막연함이 가슴속에 머릿속에 가득했었는데. 난 아직도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실제 전국을 돌며 발자국들을 남기고 다니지만, 몸과 정신 한 켠이 서울에 묶여서 빠져나가질 못하고 있네.
파이어족이 되겠다는 것도 아니라서 돈이 엄청 필요한 것도 아니고, 어딜 가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도 있는데 왜 여적지 그대로일까. 2022년 연초에 너에게 부럽다고 말했던 상태에서 변하지 않은 자신이 괜히 비루해질 정도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못하면 수도권을 떠나지 못한다는 연구가 있어. 수도권에 잘 갖춰진 교통시설과 수많은 삶의 기본이 되는 인프라를 나눠 먹어야만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 내가 그들 중 한 명인 걸까.
1년 동안 네가 보내준 고민들과 시도들에 많은 자신감도 얻었고, 때론 네 곁으로 훌쩍 떠나서 힐링도 했었지만 왜 12월인 지금 1년 전 네게 했던 그 고민과 시기를 다시 끄집어내는 상황인 걸까.
나는 뭐가 아직 부족한 걸까 친구야. 결국 답을 찾지도 행동에 옮기지도 못하고 마흔 줄에 들어서고 마는구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단단함이 생길 줄 알았는데 아직 느낌은 약관의 미숙한 아이 같아 스스로가 걱정이다.
가을을 무사히 넘겼더니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을(감성)놀이를 하는 듯 하고만. 찐 마흔 줄에 들어서는 너는 요즘 어떠니? 삶에 큰 변화가 있을 수도 있는 지점에 놓인 너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사니?
다 적고 보니 진짜 푸념만 늘어놓았네. 급격하게 떨어진 기온에 옷의 두께와 길이가 길어진다. 그곳이 이곳보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따뜻하겠지만, 언제나 감기 조심하고 떨어지는 눈발에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