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블루애틱 Aug 24. 2021

소주가 그립다!

말레이시아 락다운 두 번째 해


 소주를 마시면 절로 나오는 크아아 소리를 한숨처럼 뱉는다. 다음 순서로 근심을 담은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잔을 내리면 그럴싸하다. 특별한 걱같은 건 없지만 그냥 소주를 마시는 의식같은 다. 맥주를 더 좋아하지만 더 나이가 많큰 어른같은 형님들과 술자리를 가질 때 으레 마시는, 고뇌를 시각화해주는 담배 같은 소품, 딱 여기까지가 서른 초반 총각이었던 내가 생각한 소주였다.


 소주가 불러오는 절절한 애환이나 레트로 감성을 담아낼 깜냥은 되지도 않아서 감히 소주를 가지고 글을 쓴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굳이 이렇게 쓰고 있는 건 소주가 그리운 마음을 달래야하기 때문이다.






 소주와 첫 인연은 엉뚱했다. 퇴직금을 탈탈 털어 로스앤젤레스로 새로운 도전을 한답시고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원대한 포부와는 반대로 통장은 쪼그라들고 있었다. 생계를 유지할 방법이 필요했다. 천운으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소주 유통 회사에서 실장으로 일을 하게 됐다. 엘에이 일대의 한국 마켓과 주점을 납품처로 가진 소규모 회사였다. 겉으로는 시장 동향을 파악하고 납품 현황을 체크하고 몇 안 되는 직원을 관리하는 일이었다. 속으로는 주점 주인과 마켓 창고지기들에게 주문 좀 더해 달라고 조르는 게 주된 일이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수년이 지난 지금도 코리아타운의 마켓 위치를 훤하게 그릴 수 있게 됐지만, 태평양을 건너게 한 포부와는 다소 거리가 있어 반년을 채우지는 못했다. 잠시지만 궁한 생활에 단비를 내려준 그때가 소주와의 첫 인연이었다. 회사 창고에서 몰래 뽀려 와 홀짝인 소주는 비밀이다.


 소주에 빠져든 결정적인 이유를 따지자면 아내를 빼놓을 수 없다. 요즘은 소주 좀 그만 찾으라며 눈을 흘기지만 이유 있는 항변이 있다. 내가 원래 술을 많이 마시는 편은 아니다. 자랑이지만 아버지에게 술을 배운 덕분인지 거나하게 취해도 자세를 다잡는 게 어렵지도 않았다. 기분이 좋아지고 수다스러워지는 정도랄까. 연애 당시 우리는 초 장거리 커플이었는데 나는 엘에이, 여자 친구는 홍콩에 살 때였다. 여친은 깜짝 프러포즈를 받는 게 소원이라고 했다. 그렇다 해도 일 년에 한두 번 며칠간 만나는 사이에서 뭔가 깜짝을 준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만나면 매일을 붙어 있는데 서프라이즈는커녕 방귀라도 몰래 뀌면 다행이었다.


 휴가 기간 동안 여자 친구가 한국에서 가족과 지낼 때였다. 이때를 틈타 서프라이즈를 감행하기로 했다. 한국에서 만나기로 한 날보다 하루 더 빨리 나타나 깜짝 청혼을 계획한 것이다. 그런데 공항에서부터 비행시간까지 포함하면 12시간이 더 걸릴 텐데, 그동안 연락이 두절되는 이유를 둘러대기가  어려웠다. 결국 여친의 온 가족을 가담시킬 수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우리 어머님 그러니까 당시 예비 장모님과 작당모의를 해야 했다. 하루 일찍 몰래 비행기를 탈 테니 그동안 딴 데로 정신을 끌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리고 가족 모임을 하시는 저녁 시간에 맞춰서 나타나겠다는 계획이었다. 어머님과 언니들은 한마음으로 시선을 분산시켜 주셨고, 나는 언니의 가족들과는 처음으로 모두 함께 만나는 자리가 될 터였다. 만약 어색해서 숨 막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면 이 자리보다 더 적당한 때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잠옷을 입고 자꾸 밥상에 나타나는 딸내미에게 옷 좀 제대로 입고 나오라는 어머니의 성화가 있었고, 같은 이름의 빌라가 1, 2차로 나눠진 줄 모르고 엉뚱한 데서 한 시간을 낭비한 후 마침내 서프라이즈에 성공했다.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저녁 자리에 나타난 모습에 여친은 화들짝 놀랐고 가족의 축복을 받으며 청혼을 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예비 식구를 맞을 준비가 된 가족은 흥이 한껏 올랐다. 고조된 흥은 자연스럽게 음주를 통해 폭발했다. 내가 미처 몰랐던 게 있는데, 이 가족은 한때 가족 동아리를 만들어 친척과 소주 모임을 주기적으로 벌이는 분이었고, 동이 틀 때까지 맥주를 궤짝으로 마시다가 어디로 다 사라졌는지 어리둥절해하던 분들이었다는 것이다.


 열명이 앉아도 넉넉한 식탁을 소주병으로 띠를 두를 때였다. 동갑인 작은 처형은 손세정제로 설거지를 하기 시작했고, 나는 뚜껑 달린 쓰레기통을 굳이 열고 닫은 뒤 뚜껑 위에 쓰레기를 올려놓는 기행을 펼쳤다고 한다. 또 여친에게 준비한 편지를 단둘이 읽으며 청혼했던 순간을, 가족들 앞에서 혀 꼬부라지게 재연했던 기억이 드문드문 난다. 정말이지 이 기억은 상실해 버리고 싶다. 그렇게 소주가 내 인생에 처음으로 옴팡지게 달려들었다. 이후 모든 가족 모임에는 소주가 함께 했다. 가족 여행이라도 간다 치면 서둘러 캐리어에 한 보따리 소주를 쟁여놓고서야 한시름 놓았다며 농담을 던지고는 했다. 이제야 나는 소주의 진짜 맛을 알게 됐다.






 말레이시아는 코로나로 락다운을 하고 두 해가 흘렀다. 우리 집은 한인 밀집 지역에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다. 한국 마트를 가려면 30분은 가야 한다. 지금은 10킬로 이동제한이 있어 그마저도 허락되지 않았다. 소주를 구하기가 더 어려워진 거다. 마트 소주 한 병 값이 약 6천 원인 건 차치하고 구경도 쉽지 않게 됐다.


 가끔 한국 마트에서 장바구니를 배달시키는 날이 있다. 그날은 아내와 소주를 마시는 날이다. 그래도 항상 뭔가 허전했다. 크아아 하 소리가 사라진 대신 '음, 오늘은 단데?'가 나와서 일까. 오만상을 찌푸리는 대신 스멀스멀 웃음이 흘러나와서 일까. 아내가 이제는 하다못해 소주로 글까지 쓴다며 소주 중독자라고 눈을 흘기면 이게 다 자기네 가족 때문이거든 이라고 항변할 거다. 하지만 아내는 내가 소주만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동안 방역 규칙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지만 한국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없는 건 여전하다. 지겨운 코로나가 끝나고 빨리 소주를 마시러 한국으로 날아가는 날을 기다린다. 요즘 소주가 유난히 그립다.



<사진 발췌 중부매일 이민우 기자>



매거진의 이전글 말레이시아에서 백신을 맞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