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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애틱 Jul 29. 2021

말레이시아에서 백신을 맞았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바늘 같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새파란 나뭇잎에 부딪히나 싶더니 이내 파삭하고 튀어 올랐다. 구름은 가장자리를 긁어놓은 듯 날카롭게 보였다. 아침에 바라보는 바깥 풍경에서 일탈 감이 느껴졌다. 재택근무로 집에서 일하는 시간이 많아졌지만 좀처럼 이 시간에 외출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지금 외출 준비를 하게 된 이유는 몇 주 전으로 거슬러 간다.


한국에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부작용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만연했다. 5월의 말레이시아도 다를 바 없었다. 심지어 시노백이 믿을만하다며 그때까지 기다리겠다는 현지인들도 있었다. 말레이시아에는 AZ 백신 1차분이 보급된 상태였지만 꺼려하는 분위기 때문에 국적불문 자진 신청자에게 우선순위를 주고 있었다. 잴 거 없이 아내와 나는 백신 예약을 했고 날짜만 확정하면 되는 단계였다.


손발이 쪼그라드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수일간을 맴맴 돌며 고민했더니 어지럼증을 앓을 지경이었다. 확정을 할까 취소를 할까. 마감일이 다가오던 어느 날 아침, 아내는 결의에 찬 확고한 목소리로 말했다. 확정해서 맞고 보자고 말이다. 번뇌의 시간을 종식시키는 결연한 음성이었다. 우유부단했던 순간을 부끄럽게 만드는 의연함마저 느껴졌다. 어찌 이러한 궁극의 순간을 맞이했나 물어봤더니 잠을 자는 동안에도 고민했단다. 눈을 뜨는 순간 계시를 받듯 답이 떠올랐다고 했다. 그랬다. 이렇게 번뇌와 고뇌의 긴 터널은 끝이 났다.


설렘과 긴장이 섞인 공기가 흘렀다. 코로나로부터 안전해지리라는 기대감 때문인지, 뒤늦게 치열해지는 경쟁률을 진즉에 피했다는 선구자로서의 안도감 때문인지,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컨벤션 센터를 빌린 접종 장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 중 하나는 딸과 차에 남아 있어야 했다. 아내는 용감하게 먼저 맞겠다고 했다. 낯선 모습이었다. 보통은 익숙하지 못한 상황을 만났을 때 항상 순서를 내게 양보하는 사람이었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한 발짝 물러서 먼저 어색한 인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곤충이 거실에 나타났을 때도 탐험하고 포획할 기회 주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맛있는 음식을 앞두고도 항상 먼저 양보하는 건 말할 것도 없지만 말이다.


먼저 접종한 아내가 50 분 뒤에 돌아왔다. 그중 10분을 차를 찾는데 썼으니 백신 맞는 과정은 순조로웠던 것 같다. 반응은 담담했다. 아프지도 않았고 접종 직후 특이한 느낌도 없다고 했다. 손에는 도시락통 크기의 달달이가 잔뜩 담긴 종이상자를 받아와서는 나한테도 꼭 잊지 말고 받아오라는 지령을 내릴 만큼 일상적인 모습이었다.


예상치 못한 타인의 호의를 적재적소에서 받을 경우, 그 상황을 곱씹을 때마다 고마움이 증폭하는 경우가 있다. 그동안 스쳐 간 일부 현지 사람들에게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 반대로 이방인을 상대로 한 사기행위의 피해자가 나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 그 사람이 속한 나라 전체를 향한 분노와 적개심은 비논리적 이리만큼 모든 걸 점령해 버린다. 말레이시아 경찰 노무 공무원 나리들께 그렇게 느꼈던 것 같다(이 부분은 별도로 시간을 내어 성심껏 다시 얘기해야겠음). 우리는 이렇게 묘한 감정이 뒤엉켜있는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번 백신 건은 말레이시아를 향한 마음을 처음처럼 다시 우호적으로 바꿔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에 충분했다.


접종 장소는 무척 짜임새 있었다. 자원봉사자들의 교육도 잘 되어 있었다. 열 걸음 걸어갔더니 앞으로 열 걸음 더 걸어가세요 정도의 자세한 안내였던 것 같다. 말레이시아에서 처음으로 한류테마존이 생겼다는 원우타마 실내 쇼핑몰지하 주차장에서 출구를 찾느라 삼십 분을 넘게 헤맨 시간과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커다란 컨벤션홀 내에는 번호가 매겨진 간이 의료용 천막들이 수십여 개 늘어서 있었다. 좋아하는 재난 영화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잠시 빠졌다. 15분 남짓 기다렸더니 금방 차례가 왔다.


짧고 간결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초코바와 여러 종류의 캔디, 코코아 등이 담긴 묵직한 종이상자가 쥐어져 있었다. 마음이 웅장해지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감염병에 대한 면역이 생기기 시작한 순간이라 그런지, 무게감 있는 간식들을 무려 공짜로 얻었다는 벅찬 마음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접종 후 7시간이 지날 무렵이었다. 아내와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 떨어져 있다 서로를 보게 됐을 때 수줍게 인사하던 연애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화끈 거림이라고 할까 또는 서로가 보고 싶어 열병에 시달리던 그 당시의 순간을 떠올리게 하는 뜨거움이라고 할까라고 하면 아내는 뭔 개소리를 하느냐고 핀잔을 줄 것이다. 어쨌든 백신을 맞은 증상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10시간이 지났을 무렵, 강도가 강해졌던 것 같다. 백신 때문에 면역 반응이 시작되었다는 걸 인지할 만큼 확연한 변화였다. 체온은 37.9도였다. 아내는 심한 두통과 전신통을 겪고 있었고 나는 두통 없는 심한 전신통을 겪었다. 파나돌을 두 알씩 복용했다. 못 견딜 거북함은 이내 사라졌으나 기저에 있는 남아있는 불편함은 약효가 희미해질 때 즈음 다시 육신을 지배하리라는 것쯤은 예상할 수 있었다. 아내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고, 나는 잠이 오지 않아 넷플릭스를 시청했다. 객지에서 혼자 아팠을 때 서러움의 난이도는 극강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면서 새삼 우리 아내와 딸이 함께라면 세상 어디에서든 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세상에서 가장 춥다는 오지 마을 오미야콘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오손도손 사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눈앞이 노랗다. 열 때문이겠지.


20시간이 지다음 날 아침 7시까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내는 계속 두통에 시달렸고, 나는 근육통에 시달렸다. 새벽에도 세네 시간 간격으로 파나돌을 복용했다. 물을 많이 마셔야 한다고 들었던 탓에 화장실을 가야 해서 깼고, 몸 구석구석 불쾌한 통증 때문에라도 잠들지 못했다. 운동 후 근육통과는 양상이 달랐다. 굳이 찾자면 독한 감기몸살로 고열에 시달리며 뒤척일 때마다 끙끙 앓는 소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다. 다소 특이했던 건, 가슴통이 조여온다고 할까 흉부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낯설었다. 강도가 훨씬 더 심해졌다면 호흡이 가빠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진통제를 먹고 그제야 겨우 4시간 정도 푹 잤던 모양이다. 제법 몸이 개운해져 있었다. 열은 사라졌고, 구석구석 스며있던 통증도 약한 흔적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내는 아직도 37.8도 정도 열이 있었고 두통은 강도만 줄었다 뿐이었지 떠나질 않았다. 대신 아파 줄 수도 없는 탓에 안타까웠다. 항체가 잘 생성되고 있는 과정이라 생각하고 빨리 사그라지길 바랄 뿐이었다.


접종 후 35시간이 지난 후부터는 입맛이 돌아왔다. 갖가지 맛있는 음식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틀간은 간단히 준비할 수 있는 인스턴트 죽으로 끼니를 때웠던 탓에 식탐은 강렬했다. 오래간만에 떨어진 입맛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아내는 여전히 간헐적인 두통을 겪긴 했지만, 48시간이 지난 후에는 대부분 컨디션을 회복한 것 같았다.  몸 상태가 좋아진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주사 맞은 부위가 어딘지 가늠할 만큼의 욱신거림 정도만 남아있었다.


그 후로 약 1주일 동안, 컨디션은 완전히 회복됐다고 착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머리가 무거웠고 간간이 있는 두통 때문에 진통제에 의지했다. 잠시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도했다가 머리가 핑 돌아서 곧장 누워야 했다.




이때가 5월 말이었다. 내일은 2차 백신을 접종하러 가는 날이다. 말레이시아 하루 확진자는 1만 7천 명을 기록하고 있다. 지금 겪는 이 고난의 순간들이 언젠가 추억의 다락방 한편으로 자리 잡았을 때, 매일같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시간을, 집에서 편하게 일하는 이 기간을 후회하지 않도록 온 힘을 다해 즐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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