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코입이 붙은 모든 것에 생명을 느끼기 시작한 건 녀석이 손발을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을 때부터였다. 렌틸콩을 섞은 쌀밥이 우연히 얼굴 모양으로 된 걸 보고는 인사를 한 뒤, 아야 아야 앓는 소리를 내며 입 속으로 집어넣고는 했다. 마치 사냥감의 희생에 감사하고 고통에 공감하는 원시 부족의 토테미즘이 떠오른다.
이파리가 겹친 야자나무를 보고 '뽀뽀 뽀뽀' 정도의 언어로 표현하기에 이르러서는 물체와 이마를 맞대며 교감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했다. 흰 종이 위에 찍은 점 두 개, 고래 모양 바가지, 스마일이 그려진 작은 공도 어김없다. 이어서 '수도꼭지가 부러져서 울고 있어, 아야 아야'라며 점차 발전한 공감 능력을 보였다. 이런 행동이 사라진 건 유치원을 졸업하면서부터다.
- 딸, 아기 때는 물건이랑 왜 이마를 맞댔어?
- 아~ 그때는 친구인 줄 알고 인사하려고 했지.
- 이제는 더 안 해?
- 그럼 안 하지. 아닌 거 아니까.
그 정도 사리 분별은 당연한 게 아니냐며 시답잖다는 듯 대답한 녀석은 입고 있는 옷을 훌렁 벗어던졌다. 갑자기 거실에서 왜 벌거벗냐는 질문에 '그냥 훌렁하게 있고 싶어서.'라고 대답하고는 팬티 바람으로 집안을 누빈다. 원시 부족의 피가 흐르는 게 맞아 보인다.
깡총이, 용용이, 꾸덩이, 배뚝이, 사탕이, 까망이, 구름이, 까봄이, 또또, 띠띠, 따따, 곰이, 둥이, 쟈키, 파랑이, 빨강이, 몽실이 등은 녀석이 인형과 식물에 붙인 이름이다. 애지중지 키우는 녹두 세 개 중 하나를 가리키며 만만한 이름을 골라 불렀다. 따따한테 물 줬어? 금세 불호령이 떨어졌다. "걔는 또또라고!" 도통 이름을 외울 수가 없어 나는 차라리 부르지 않기로 결심한다.
녀석에게는 몇 가지 주목할만한 행동이 있다. 식사 전 수저를 완벽히 십 일자로 정렬하기, 손에 묻는 과자 가루를 피해 젓가락으로 집어 먹기, 흡족한 필체가 나오기 전까지 지우개가 소멸하도록 지웠다 다시 쓰기, 외출 준비 시 가방이 터지도록 과자와 장난감을 욱여넣다 다시 빼기, 삐뚤게 붙은 캐릭터 스티커를 뗐다 붙이기를 스무 번 하기 등이다. 강박에 사로잡힌 게 아닌가 의심된다.
그중 단연 으뜸은 하루도 빼놓지 않는 실시하는 잠자리 의식이다. 여러 가지 인형 중 하나를 고르는 것으로 시작하는 의식이 여기에서 그친다면 강박의 전당에 오를 리 없다. 신중하게 선택한 인형을 껴안고는 이층 방으로 올라가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주름 하나 흐트러짐 없도록 잠자리를 봐줘야 하는데 이불 삼아 덮어주는 손수건이나 옷가지의 각도가 마음에 들어야 하고 구김 없이 덮어주기가 성공을 가름하는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본인의 이부자리가 꾸불꾸불해지는 건 일말도 괘념치 않는 대범함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 엄마, 어제 깡총이가 또 움직였어. 베개 옆에 놓고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니까 침대 옆으로 가 있었어!
- 그랬구나, 딸 편하게 자라고 다른 데로 옮겨갔나 보다.
- 아빠, 오늘은 용용이가 움직였어. 내 옆에서 재웠는데 협탁 위에 올라가 있었다?
- 그랬구나, 딸 자는 거 보고 싶어서 그 위로 갔나 보다.
지난주 한국에서 택배 상자가 날아왔다. 문구점을 통째로 털었다고 의심되는 이 상자는 손녀가 좋아하는 장난감을 몽땅 쓸어 담은 할머니 사랑이 꾹꾹 담긴 꾸러미였다. 나도 다소 호기심이 가는 장난감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데, 말랑이라 부르는 고무 제품이었다. 오리 모양을 꽉 쥐면 눈알이 튀어나왔다 머리가 커졌다 하는 게 퍽 우습다. 외에도 햄버거, 문어, 곰돌이, 곶감, 오리, 거북이, 개구리알, 공주 등 종류가 다양했다.
열다섯 개나 있으니 하나만 달라는 내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눈가에 맺히는 녀석의 눈물을 잊을 수가 없다. 아빠가 돼서 잘하는 짓은 아닌 것 같아 부탁을 취소했다.
여하튼, 말랑이는 요즘 아이들에게 유행하는 건지, 엉뚱 발랄 귀염둥이 콩순이와 쥬쥬 시크릿 메이크업 이후로 큰 관심을 가졌던 장난감이었다. 두말할 거 없이 그날 밤 잠자리의 주인공은 말랑이 세 종류가 차지했다. 녀석이 이층으로 올라가고 사라진 거실에는 깡총이와 용용이가 외롭고 쓸쓸하게 소파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 딸, 어젯밤에 보니까 깡총이랑 용용이가 부둥켜안고 소파에서 울고 있더라?
- 응…? 진짜…?
- 새로운 친구 왔다고 너무 막 대한 거 아니야, 되게 슬퍼하는 거 같던데. 어떡해.
- 그러려던 게 아닌데… 오늘은 깡총이랑 용용이 데리고 자야겠다. 기분이 풀어지겠지…?
근심 걱정이 가득했던 녀석은 깡총이와 용용이에게 팔을 내주느라 불편한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엄마와 아빠가 자는 동안 자기 이마에 뽀뽀를 했다는 건 모를 거다. 조심스럽게 두 인형을 빼내 환호 지르는 자세로 바꿔 머리맡에 옮겨 둔 것도 모를 거다. 내일 아침에는 '깡총이랑용용이서운한거다풀렸어. 거봐, 내가그랬지?'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할 거라는 것까지 다 예상했다는 건 정말 모를 거다.
곳곳에서 생명의 숨결을 느끼는 녀석의 감성은 예상을 넘어 훨씬 깊고 무거웠다. 아이의 감성을 유치하고 어리다고 단정 지었던 경솔함과 무지함을 돌아보고, 미안한 마음을 가지기 시작한 건 몇 가지 일을 겪고 나서부터였다.
- 아빠가지금입고있는이티셔츠나중에 나주면안돼?
- 이렇게 낡은 티셔츠는 왜?
- 아빠가 죽고 나면 추억의아이템으로남겨두려고. 아빠가죽으면슬프니까대비하려고. 그러니까내가어른이될때까지버리지말고꼭갖고있어야해. 알겠지?
- 엄마, 저승 세계는 몇 개야?
- 글쎄…. 잘 모르겠는데. 근데 그건 왜?
- 그냥 걱정돼서. 저승 세계가 하나여야 엄마 아빠가 죽고 나서도 우리가 다시 만나지. 여러 개면 못 만날까 봐 걱정이야.
- 저승 세계는 하나일 거야. 우리는 꼭 다시 만날 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녀석은 어느 날 아이패드를 한참 두드리다가 일어났다. 노트를 열어보니 글 무더기가 쌓여 있었다.
날아라 슈퍼보드의 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이 요괴를 잡으러 여행 다니는 걸 재미있게 본 후로 '삶과 죽음'에 관한 질문을 쏟아내던 때가 있다. 그 이후로 떠오르는 생각을 틈틈이 정리한 메모로 보였다.
이번 관찰기와 연관 있는 <나의 삶>, <세상에 하나뿐인 나>, <사람은 저마다 달라>를 옮기면 아래와 같다.
<나의 삶>은 탄생부터 성장, 그리고 할머니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긴 삶의 여정을 미래의 화자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으로 생각한다. 생명과 직결된 죽음의 모순적인 모습조차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인식하고, 두렵지만 담담히 수용하는 태도와 차분한 내레이션이 인상적이다. 다른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역시 생명의 소중함이며, 다양성을 존중하고 삶에 감사하는 태도를 보인다. 이 작품들을 세상에 공개한 걸 녀석이 아는 순간, 내 생명의 존엄성은 더 이상 보장받을 수 없기에 극비로 유지하는 것이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메모의 끝에는 깡총이와 용용이가 뛰어놀고 또또, 따따, 띠띠가 재잘거리며 크는 모습이 그려진다. 아침 인사를 나누고, 목말랐지? 내가 물 줄게. 마시고 잘 크렴. 잘 자, 깡총아, 용용아라고 소곤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녀석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는 확신이 없어졌다. 아이들의 세심한 감정과 섬세한 감각을 순수함이라는 간편하고 뭉뚝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잊었고 익숙지 않아 속에서 맴돌기만 할 뿐, 좀처럼 입 밖으로 말이 나오질 않는다. 그러나 이번 관찰기를 통해 배운 것은 죽어버린 감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중요한 의식이라는 것이다. 시들어버린 감각의 촉수가 되살아나길 꿈꾸며 천천히 의식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