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순간
우리 아빠도 생각보다 음악을 많이 좋아하셨는데 더 대박은 할아버지가 닐 영을 알고 계셨다. 너무 어렸을 때라 어떻게 아시게 됐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는데 아빠가 비틀스를 들려줬다면 할아버지는 닐 영을 알려줬다. 클리프 리처드 이런 사람을 아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선가 닐 영을 듣고 그때부터 좋아하신 것 같다. 할아버지가 공무원으로 사셨는데 원래는 끼가 진짜 많은 분이셨다. 글도 너무 잘 쓰시고 노래도 잘하시고 딴따라 기질이 있는데 가족을 부양하느라고 공무원으로 사신 거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나 중학교 1학년 때였나, 방학 때 할아버지가 들려준 닐 영이 아빠가 들려준 비틀스보다 더 좋았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1학년 애가 닐 영 음악을 뭘 알까 싶지만 괜히 그냥 너무 좋았다. 그때 처음 이게 닐 영이고 이런 음악이 있구나 알게 되고는 또 한참을 안 들었다. 그렇게 까맣게 잊고 있다가 대학교 1학년 때 신촌 우드스탁에 갔는데 거기에서 닐 영 음악을 들으니까 딱 생각이 나는 거다. '아, 맞다! 이거 닐 영이지'. 그 뒤로 닐 영을 신청하고 듣고 하면서 더 찾아 듣기 시작했다.
처음 들었던 노래가 <Cowgirl In The Sand>나 <Hey Hey My My> 둘 중에 하나였던 거 같다. 기타 리프나 음색이나 다 비슷하지 않나. 어렸을 때 들었지만 노래의 분위기가 아직도 생각이 난다. 그 노래를 우드스탁에서 다시 들었을 때 소름 끼치면서 너무 기분이 이상했다. 할아버지가 나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돌아가셨는데 그때는 이미 집에서 숨만 쉬시고 계실 때여서 그 노래와 기억이 맞물리면서 되게 슬펐던 기억도 난다. 닐 영을 들으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정 같은 게 생긴다. 내가 놀기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하는 걸 할아버지가 줬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히스토리는 없는데 히스토리가 되게 많은 느낌이 든다. - 이지민(공연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