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이 이 꼴을 봤으면 좋겠다

by 정예예


혼자 있을 때 육아 전쟁을 치르고, 전쟁터가 된 집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든다.
‘남편이 이 꼴을 봤으면 좋겠다.’


엄마도 전에 비슷한 얘길 했었다.
“하… 진짜 전쟁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면 너 똥기저귀 치우지도 않고 그냥 뒀어. 아빠도 퇴근하고 보라고. 내가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 아빠는 모르잖아. 보고 알라고. 그랬어 그때…”


분명 괜찮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오전 7시 반, 여유 있게 남편을 농구 동호회에 보내고.
오전 8시, 기분 좋게 일어난 해나와 놀다가 기저귀를 갈고 수유를 시작했다. 여기까진 오케이.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며칠 전부터 기침, 콧물 기운이 있던 해나가 콧물이 단단히 찼는지 먹은 걸 다 토해내기 시작했다.
먹다 개워서 수유쿠션도 젖고 옷도 젖고.

트림시킨다고 세우면 내 어깨에 또. 옷을 갈아입히고 안아주면 다시 또.

어제는 정신없이 잘 놀았잖아ㅜㅜ

아이는 한 시간 가까이 낑낑거렸고, 겨우 진정시키고 집을 둘러보니… 말이 아니었다.

바닥 군데군데 남아 있는 토의 흔적.
기저귀갈이대에 널브러진 옷, 턱받이, 손수건.


한숨이 나오다가 해나와 눈이 마주쳐서 있는 힘껏 입꼬리를 끌어올려 억지웃음을 지었다. 내 한숨이 아이에게 옮겨가길 원치 않았다. 그런데 머리가 지끈했고, 속에서는 뭔가가 부글부글 올라왔다.


위험감지. 지금 숨을 고르지 않으면 남편과도 큰 전쟁을 치르겠다는 걸 몸이 먼저 알았다.


나는 잠깐 멈춰 앉아 숨을 골랐다.
지금 상황이 응급은 아니고, 남편은 연락을 받고 바로 오는 중이고, 우리는 어제오늘도 해나 상태가 나아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기로 얘기를 해둔 상태였다.
정리하고 나니 감정의 온도가 더 올라가진 않았다. 일단 큰 불은 껐다는데 안도했다.


어우, 그런데 다시 눈에 들어오는 난장판.
치우려고 일어났다가 다시 앉았다.
‘좀 숨을 돌리자. 괜찮아.’
머릿속은 정리됐는데, 내 몸과 마음은 아직도 덜덜 떨리는 느낌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지금 아이가 걱정돼서라기보다, 내가 방금 겪은 이 순간을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는 걸.
당황을 넘어… 무서웠다. 심각하지 않은 상황이란걸 알면서도. 그래서 남편이 내가 치른 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로 다 설명할 기운은 없지만, 집의 이 광경이라도 보면 알 것 같아서.


결국 나는 그 난장판을 치우지 않았다.

얼마 뒤 돌아온 남편이 다 치웠다.
그 이후는 순조로웠다. 병원에 가고, 진료를 받고 약을 타고. 해나는 피곤했는지 약을 먹고 깊은 잠에 들었고, 나는 지금 이렇게 일기를 쓴다.


폭풍 같던 오전이 지나고 돌아보니, 치우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 아까 진짜 무서웠어.”
“혼자 감당이 안 되는 순간 같았어.”
그 말을 남편에게 (곱게) 할 기력도 없으니, 나는 ‘보여주는 것’으로 나를 달랬던 것 같다.

스스로에게 주는 일종의 위로였달까.


이제는 남편에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나 아까 진짜 힘들었고, 무서웠고, 정신이 없었다고.

그도 아마 이해해 줄 것이다.


육아만큼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자주 드는 일도 없으니까. 그도 이런 날이 많았겠지.
과연 그는 내 말에 어떤 식으로 손을 내밀어줄까.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