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괴감은 때로 성장의 촉진제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하는 것 같다.
요즘 한국 언론에서 보도되는 내용들이나 소셜미디어에 드러나는 반응들, 다큐멘터리에 클립으로 올라오는 인터뷰 영상, 또는 설문조사 결과들을 보면, (사실 나는 언론/미디어란 기본적으로 입방아를 형성하고, 누가 더 많은 흥미로운 소식/이야깃거리를 만들어내느냐로 돈을 버는 곳이라고 생각하기에 100% 신뢰하진 않으나) 좌절감, 자괴감 등이 그저 일상의 어느 순간에 잠시 찾아왔다 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한사람의 삶을 좀먹는 수준으로까지 번지는 내용들을 많이 보곤 하는데, 심지어 큰 사회 속 소수의 문제가 아닌 소위 '현상'으로까지 느껴지리만큼 거대한 공감포인트가 되어가고 있는듯 하다.
물론 모두가 다 그럴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영국에 와서 살면서도 매번 '아, 내가 또 틀린건가?' 생각하곤 하는 것처럼, 어쩌면 내 생각이 약간은 과장된 판단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이번 글에서는 그것을 일반적인 것으로 볼지 말지를 정의하기 보다, 어차피 완적삭제가 불가능한 그것에 대해서 개인적인 인사이트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자괴감은 스스로가 정-말 한심하고, 무능해보이고, 진짜 보잘것 없어보일 때생겨나는 감정으로,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타인들을 만나며 누군가의 뛰어난 우수성을 보았을 때 느낄 수 있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기도 한데, 자괴감을 형성하는데 가장 주된 기여를 하는 요소를 몇가지 꼽자면 나는 욕심과 몰지각 때문이라고 할 것 같다. 왜냐고?
일단,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아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은 완벽할 수 없다'라는 명제에 동의할 것이며, 인정하고 있을 것이다. 이 이야기는 곧, 나라는 사람은 잘하는 것도 있는 반면, 못하는 것도 분명 있다는 말이 된다. 못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양의 차이에 있어서도 그렇다.
1. 욕심
그런데 한국사회를 보면, 전반적으로 이것저것 다 '잘'하는 것 또는 '우수한' 것만을 올바른 이상향 쯤으로 여기는 경향성이 짙게 느껴진다. 이런 대중의 경향성은 그 안에 속한 개개인으로 하여금 서서히 물들게 해, 결국 그 개인도 주어진 것에도 충분히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아니라 '더'하지 못해서 안절부절해 하는 성격으로 만들어 놓는다.
욕심은 어떤 사람의 열망이다. 간절한 소망이다.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내 기대와 맞지 않는 일이 반복된다면, 그 사람은 당연히 자괴감을 느낄 것이다.
2. 몰지각
사람들은 또한 스스로에 대해 몰지각할 때 더 자괴감을 크게 느끼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내가 뭘 잘하고, 무엇에 강점이 있는 사람인지 잘 모르면, 누군가 나를 싸잡아 '넌 개똥멍청이야' 라고 비난했을 때 '웃기지마' 라고 반박하기보단, 막연한 반발심같은 감정만 올라올 뿐 이를 제대로 뒷받침해줄 근거를 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난 잘하는 사람이어야만 해'라는 이상한 자기욕심과 스스로가 어떤 인간군상이며, 어떤 강점과 약점을 지닌 인간인지에 대해 몰지각한 상태일 경우 우리는 남들보다 더 씨게, 오래 자괴감을 느끼며 스스로의 삶을 더 비참한 쪽으로 이끌게 된다.
하지만 자괴감이란 것을 아예 우리 삶에서 완전삭제 시킬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이 아주 오래 가고 내 삶을 잠식해버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 다음과 같은 것들을 고민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1. 못났다는 것, 모자라다는 것을 인정하기
이건 어찌보면 현실이다. 그냥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그럴수밖에 없는.. 또 인간이란 모든 것에서 완벽할 수 없도록 디자인되어있는 생명체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좋든 싫든 받아들여야 한다.
그치만 이것은 '난 못났어.. 찌질이야 어떡해ㅠㅠ'하라는 게 아니다. 사실을 사실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같은 인간이라면 그 인간이 모 대기업 총수라 할지라도, 워렌버핏이라 해도 모자란 것이 있기 때문에, 그 사실에 대해 그렇게 낙심할 필요도 없다. 그냥 A-Z 중에 나는 A, D, F가 모자라다면, 다른 사람은 C, K, J가 모자란 것이니까.
2. 나에 대해서 명확히 파악하기
두번째는 바로 나 자신에 대해서 명확히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 편이며 무엇이 주로 그런것을 유발하고, 지금 내가 정확히 어떤 위치에 있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보다 자신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확실하게 알고 있는게 적을 수록, 그만큼 더 막연한 감정과 생각에는 휘둘리기 쉬운 상태가 된다.
물론, 미리 다 알고 있으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시간의 흐름 또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람도 변할 수 있고, 다양한 경험에 대한 노출이 쌓여가며 오늘은 A, 내일은 B와 C, 이렇게 발견해갈 수 밖에 없는 건데 어떻게 모든 것을 한번에 미리 다 깨칠 수 있을까? 다만, 자신에 대해 알게되는 그 순간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중요한 것은 하나씩 머릿속에 박제해두면서 하나씩 명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3. 주관적 기준 찾기
이것도 중요하다. 자괴감이 없는 순간은, 아마도 내가 나 자신에 대해 만족감을 느낄 때일 것이다. 따라서 나라는 사람에 대한 이모저모를 프로파일링하고 나면, 그 다음은 내가 스스로 만족감이나 충분함을 느꼈던 지점이 어디쯤이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야 아직 못미치는 부분은 노력을 얼만큼 더 해볼지 가늠이 되고, 쓸데없이 우울해있던 것들은 오히려 내가 그렇게 형편없는 인간이 아니란 걸 깨닫게 되면서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 이 기준은 100% 순수하게 내 생각만으로 '어, 이쯤하면 뭐 나쁘지 않아, 괜찮아!'라고 생각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타인의 생각을 들어보면 안된다. 상대방의 말이 설득력이 있는 경우 이에 감화되어, 나도모르게 그게 곧 내가 생각하던 거라고 착각할수 있기 때문이다. 주관적 기준은 동화에서가 아니라, 나의 내면으로부터 나온것이다.
내가 나한테 바라는 건 앞으로도, 이런 편안함을 잘 유지해서 남은 생을 안정시켜주는 것이다.
왜 너는 영국씩이나 가서 다른 유럽국가 여행도 자주 안다니고, 그렇게 가만히 있냐는 말도 듣지만(주로 부모님),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편하고, 유럽을 아주 가끔, 찔끔 다녀오는 것으로도 그리 크게 좌절감 느끼지 않으니까, 적어도 일상라이프에 있어서는, 난 이만 됐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