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남쪽 지역의 큰 도시로 이사를 왔다.
이제 나의 집은 서울과 약 3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한 아파트. 이곳에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나가서 만날 사람도 없다. 변방 수십 킬로미터 내에 나의 이름을 불러 줄 사람, 소개 없이 대화를 나눌 사람은 남편뿐이다.
마치 여행을 온 것 같다. 숙소를 나서면 마주치는 사람들은 그저 행인과 상인들뿐. 일상의 익숙함과 편안함, 지루함에 물들지 않은 공기. 탐색하느라 바쁜 고개와 눈동자.
그러나 말(약간의 사투리가 섞이긴 했지만)과 글은 기존의 것이다. 또 여행과는 달리, 살수록 집안일이 쌓이고 반복된다. 다른 나라로 가지 않고도 일상과 여행, 그 중간 지대에 머무는 시간은 드물고, 아주 잠깐일 테지.
민감해진 시각과 뻘쭘한 마음을 다스려 다시 일상의 관성에 종속시켜 나가는 일은 하루 종일 돌아다닌 여행자의 발바닥처럼 어느새 고되다. 그러나 동시에 출근 시간의 압박과 붐비는 지하철에서 벗어나 이런 이국적인 시간을 사는 것이 믿기지 않아 어리둥절하고 감격스럽다.
나는 아직, 이 여행의 목적지를 모른다. 하지만 이 여행이 결코 길지 않을 것이고, 목적지야 어찌 됐든 도착지는 일상이라는 사실만큼은 담담히 안다.
내가 퇴사를 하고 여행 중이라면, 여행지는 마땅히 시골이어야 했다. 그곳엔 폭신하고 향긋한 흙이 있고, 제 빛깔과 제 향을 잃지 않은 토마토와 감자, 바질과 루꼴라 같은 농작물이 푸르게 자라야 한다.
그곳에 사는 누구나 잡초를 뽑느라 손톱에 흙이 끼고 옷이 더러워졌지만 괘념치 않고,
둘러앉아 맛있는 걸 나누어 먹는 곳.
나는 늘 그런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그래서 이사를 오자마자 텃밭을 빌릴 곳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