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어디서나, 나는 시행과 착오 중이다.
'시행착오'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미국의 한 심리학자가 발견한 학습법이라고 나온다. 목표에 도달하는 확실한 방법을 모르는 채 본능과 습관에 의하여 시행과 착오를 되풀이하다가 우연히 성공한 동작을 계속하게 되어 점차 시간을 절약하여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는 원리란다.
호기심이 많은 덕인지 진득하지 못한 탓인지, 나는 생각보다 자주 옮겨 살았고 새로운 상황과 일을 겪었다. 그러면서 시행과 착오를 많이 하기는 하는데... 이로써 어떤 목표에 도달하는 중인 걸까? 그 목표를 아직 잘 모르겠고, 목표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텃밭도 내게 아주 새로운 일이기에 본능과 습관에 따라 열심히 시행착오 중이다.
전날에, 밭 크기에 비해 모종을 턱없이 적게 심고 와서 남은 밭을 어떻게 채울지 고심했다. 나름 밤늦게까지 텃밭 백과 책을 뒤지며 텃밭 계획한 결과, 샐러드에 쓸 여러 채소들과 고구마를 심기로 하고 고구마줄기 5천 원어치와 씨앗 여러 종류를 사 갔다. 텃밭에 들어서자, 고구마줄기를 들고 온 나를 보고 농장 주인아저씨가 살짝 웃었다. 그땐 그 웃음의 의미를 몰랐다.
열심히 밭일을 하는데, 이웃한 텃밭을 가꾸는 아저씨가 '고구마를 벌써부터 뭐 이렇게 많이 심어요? 다른 거 더 길러 먹고 천천히 심지. 고구마는 만 원만 줘도 한 박스 사는데.'라고 지나가며 말했다. 알고 보니 고구마는 10월에 수확을 하기 때문에 장마 때쯤 심어도 되었다. 더구나 좁은 텃밭에 고구마를 한가득 심을 이유는 별로 없었던 것. 다른 텃밭들을 둘러보니 고추와 토마토, 오이 등 기르기 재밌고 수확이 쏠쏠한 열매채소를 많이 심었다.
가뜩이나 조금 늦은 농사에 씨앗을 뿌린 것도 '착오'였다. 씨앗 대신 모종을 필요한 만큼 사서 심으면 더 싼 값에 빨리 수확할 수 있었다. 결국 상추 모종 두 종류와 대파 모종을 추가로 사서 어제 씨앗을 뿌린 밭에 심었다. 모종을 심어 놓으니 이제야 텃밭답게 푸릇했다. 씨앗은 여전히 싹틀 기미 없이 잠잠하다.
하지만 시행착오는 내 예상과 다르기에 재밌고, 내 계획보다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텃밭의 절반에 고구마줄기를 심은 건 바보 같은 선택이었지만, 덕분에 고구마가 얼마나 신기한 방법으로 자라는지 알았다. 고구마는 씨앗이나 모종을 심지 않고, 고구마줄기 갈라진 곳을 2~3마디씩 끊어 밭에 세워 심거나 뉘워 심는다. 줄기가 갈라진 곳에 눈이 있는데, 여기서 뿌리가 내려 고구마가 된다.
고구마줄기를 심기 전에, 농장 주인아저씨가 고구마줄기를 고운 황토 진흙에 살짝 묻혀 말렸다. 이렇게 하는 이유를 묻자, 아저씨는 적조나 녹조가 심할 때 바다에 황토를 뿌리는 원리와 같다고 답했다. 해로운 미생물을 막아준다는 의미인가? 정확히 이해되지는 않는다. 황토밭에서 키운 고구마는 맛과 향이 좋다고 하는데, 황토밭은 못되니 아쉬운 대로 앞으로 고구마로 자랄 순에 조금이라도 황토를 묻혀 주는 것 아닐지, 마음대로 생각해 보았다.
씨앗을 뿌린 것도 농부로서는 어리석었지만 호기심 많은 나로서는 좋은 계획이었다. 모종을 심었다면 알지 못했을 식물들의 첫 모습을 알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크고 동글동글한 고수 씨앗, 쭈글쭈글한 근대 씨앗, 푸른 보라빛으로 오묘한 광택이 나는 로즈마리 씨앗, 바짝 말라 초승달처럼 휘어진 금잔화 씨앗 등을 보고 만졌다. 참을성 있게 기다리면, 제각각 다른 새싹들도 보게 될 것이다.
넓은 텃밭을 나 혼자 모두 돌보기에는 힘이 무척 많이 들 테니, 씨앗이 느리게 자란다는 것과 텃밭의 절반은 고구마 수확 전까지 손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어쩌면 다행이다. 초보 농부를 당황하게 만든 '착오'였지만, 결과적으로 게으른 농부가 되기에 더 좋은 계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