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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지기 Jun 14. 2018

오히려 내가, 이곳에서 자란다


평소 나무나 꽃, 풀 등을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고, 쉼을 얻고, 때론 영감이나 깨달음을 얻는다. 식물은 나에게 그런 존재다. 그러나 텃밭에 서면 조금 더 이기적으로 식물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더 인간중심적이 된다. 마치 구석기시대 인류에서, 정착생활을 하며 농작물을 제맘대로 하기 시작한 신석기시대 인류로 진화한 기분이랄까? 


텃밭에 심은 식물이 경이롭다기보다, '먹을 것', '수확물'로 인식된다. 열매나 뿌리, 풍성한 잎사귀 등 식량의 모습이 아닌 씨앗과 모종 상태의 식물을 보는 데도 그런다. 귀찮음을 이기고 텃밭으로 가서 물을 줘야 하는, 땡볕에 잡초를 뽑아 줘야 하는, 노동이 필요한, 그래서 당연히 내게 풍성한 수확을 안겨 줘야 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나도 모르게 잉여생산물을 염두에 두고 식물을 탐욕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텃밭 농사로 자급자족할 목적이 아님에도, 그저 자연이 좋아서 시작한 것임에도.)



대파 모종을 심을 때였다. 마트에서 보던 굵은 대파와는 달리, 모종은 아주 작고 가늘었다. 모종 하나에 2~3개의 파가 있는데, 농장 주인아저씨는 호미로 밭을 일직선으로 얕게 판 다음, 대파 모종을 낱개로 슥슥 갈라서 심으면 된다고 했다. 아저씨가 밭에 호미로 그어 놓은 줄을 가만히 보다가, 갑자기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줄을 맞춰서 채소를 심는 것이 좋아요, 들쭉날쭉 심어도 괜찮아요?" 


초보 농부인 나는 이전에 심은 씨앗들을 생각하며, 수확이 더 좋으려면 줄을 잘 맞춰 심었어야 하지 않았나, 하며 걱정이 섞인 마음도 있었다.


"줄 맞춰 심으면 사람들만 좋지, 채소들이 뭐 좋겠어요."


아저씨는 어느새 줄 맞춰 심긴 대파들을 내려다보며, 별것도 아닌 걸 물어본다는 듯, 그렇지만 재미 섞어 응수해 주겠다는 듯 '툭' 말했다.

우문현답이다. 나도 유치원 때부터 줄 맞춰 서는 게 엄청 싫었는데, 채소들이 줄 맞춰 심기기 좋을 리 없지. 이 예상치 못한 깨달음에 밭일을 하며 실없는 웃음으로 작게 계속 웃었다.


아직 정말 작은 '대'파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프할 때 텃밭을 bed라고 불렀다. 삽과 괭이로 bed를 만들고, 모종을 심고 씨앗을 뿌렸다. 어린 식물들이 잘 자라도록 흙을 부드럽게 갈고 고르게 펴 만든 네모 모양의 텃밭은 정말로 폭신한 침대, bed처럼 보였다. 모종과 씨앗들이 포슬포슬한 흙을 덮고 잘 자는 곳, 무럭무럭 자라날 준비를 하는 곳이어서 bed라고 하는 것일까? bed라는 표현을 쓰면 내 마음이 작은 씨앗과 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어린 시절, 꽃에 말을 걸고 열매에게 고맙다 인사하던 그 마음들은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내 이익만 따지며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생명을 기르는 일을 물질을 얻는 일로 치환해 버렸다. 이렇게 상당히 시들어 있는 나를, 텃밭이 다시 생명답게 만든다. 나도 땅에 심기운 모종 같아져서, 한참을 멍 때리며 조금씩 푸르게 자라야겠다.



귀여운 방울토마토 모종. 지금은 울퉁불퉁하게 많이 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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