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earl Jang Nov 01. 2017

[춤] 서울의 깊은 가을 어느 주말

가슴에 품은 열정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렇게 뜨겁고 열정적인 경험을 또 할 수 있을까 싶다.
나이나 직업 등 그 무엇도 서로 묻지 않고 오로지 춤으로 영감을 받고 서로 소통한다.
지치고 힘든 일상은 그렇게 잠시 네버랜드에 있는 동안은 잊을 수 있다.
삼십대에도 혹은 사십대에도 이렇게 뜨겁고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매일 겪는 또는 참아내야 하는 고된 일상이지만 퇴근과 동시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난다.

처음 접했을 때는 춤을 춘다는 것도 부끄럽고 어색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매일 추러 가지 않으면 부족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배운 것을 몸에 장착하면서 유치원 학예회 이후로 처음 공연이라는 것을 하게 된다. 그러면서 무대에 섰을 때의 아쉬움과 희열 그리고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욕심을 낸다. 같이 추던 사람들이 ‘나 더 잘 추고 싶고 대회에도 나가고 싶어서 연습팀에 들어가려고’라고 하면 대체 저렇게 까지 해야 할까 겉으로는 웃었지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멋진 공연을 실제로 보고 난 후에 그들의 눈빛과 몸짓에 매료되어 머리와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 후 저 사람들처럼 멋있게 추고 싶다는 생각으로 목표가 생기고 매일 더 많은 시간을 춤에 쏟아 넣기 시작한다.


그렇게 두각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점점 알아가게 되고 매일의 소셜이 열리는 빠에서 그들의 춤을 바라보게 된다. 안면도 없는 그들과 인사 한마디를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춤이 감명 깊고 인상적이라서 ‘춤 추는 거 한참을 봤어요~’, ‘지난번 공연 잘 봤어요’ 라고 인사를 건넨 적이 종종 있다. 마치 책을 읽다가 오래 보고 싶은 문장이 나왔을 때 메모를 하는 그런 마음이다.

그런 사람들이 모여 춤 실력을 뽐내고 공연을 하는 행사가 지난 주말에 있었다. 사실 이번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온전히 그날의 축제 포스터에 영감을 받아서이다. 외국 댄서들이 함께하는 행사이기도 해서 아마도 디자이너는 포스터의 배경에 한국적인 문양을 넣어 서울과 한국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한국의 전통 문양을 배경으로 외국 댄서들이 춤을 추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배치해서 동서양의 조화를 이루게 한 것 또한 엄지를 치켜들게 했다. 그 이전의 트로피 배경 이미지에 한국 전통 가옥의 기와를 넣고 남산타워를 넣은 것도 본 적이 있다. 신선한 충격에 그리고 그 멋진 트로피가 탐나서 사진을 바로 휴대폰에 저장했던 기억이 난다.

행사는 외국 챔피언 댄서들에게 워크샵을 듣는 것과 대회를 하는 부문으로 나뉘어 있다. 대회는 개인, 파트너와 그리고 팀의 기량을 뽐내는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있다. 낮에 있던 워크샵에서는 춤에 대해 배울 수 있거나 영감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수업들이 있었다.


인상적인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첫 번째는 워크샵에서 강습을 하는 외국 챔피언 댄서들이 자기들이 이 수업을 하고 한국을 떠나도 몇 주 정도 혼자서 연습할 거리를 줄 테니 충분히 연습하라고 배려를 하는 모습이었다. 선생님인 나 또한 열의를 보이는 학생에게는 나와 학생이 다음에 만날 때까지 지식에 목마른 이 아이에게 생각할 거리를 미리 준비해서 주는 것과 비슷한 마음이었겠다. 수업 마지막에는 혼자 연습할 수 있도록 벽의 기둥을 손잡이 삼아 영상까지 남겨준 그 마음이 고마웠다.


두 번째 인상적이었던 것은 만삭의 임신부가 플로어에 나와서 신나게 솔로 댄스를 춘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넘어지거나 다칠까 봐 또 혹시라도 급히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생길까 걱정이 됨과 동시에 만삭 댄서의 흥에 관중들은 사랑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아마도 뱃속의 그 아이는 신이 난 엄마와 함께 출렁이는 양수 속에서 바운스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세 번째 인상적인 것은 모두가 최고이고 멋지다고 칭찬을 건네며 만족스러워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멋진 트로피를 누가 갖느냐보다 서로의 공연에 감동을 하였노라며 박수와 엄지를 보낸다. 일등만 기억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이 사람들에게 다행히도 아직 모든 부분을 존중하고 바라보는 모습이 남아있는 것 또한 좋았다.

이렇게 서로의 춤에 희열을 느끼고 땀을 흘리며 대회에 임하고 상대의 실력을 칭찬하며 가을날 밤이 깊어갔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대에 춤을 시작했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잘 췄을 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