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미드나잇 인 파리를 켰다. 카페인 때문에 잠들긴 글렀고 과거의 향수에 빠져 현실을 잊기로 했다. 길 펜더의 20세기초 여행을 2024년의 내가 다시 봤다. 여전히 못 자란 나는 마지막 부분, 길이 현실 속 이상향에 닿은 부분이 가장 좋다. 그러는 사이 나는 현실을 잊었다. 이 영화는 두 시간의 도피와도 같다.
길의 세계는 파리에서 만난 여성들로 전개된다. 이네즈-현실 / 아드리아나-환상 / 가브리엘-현실의 이상.
약혼녀 이네즈는 현실 속 선택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어 하는 길이 상업적인 글을 쓰며 어느 정도의 성공을 거둔 현실 속 선택. 이것은 이네즈의 반지와 고급 가구로 시각화한다. 길은 이것에 만족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정 무렵 산책(도피)으로 드러낸다. (현실 또한 성공한 것-세속적인 것-으로 그려진 것을 보니 이 영화는 우디 앨런의 영화!)
아드리아나는 파리의 거리를 헤매다 꿈결 속 만난 이상향이다. 1920년대의 예술가들을 동경한 길은 그들의 뮤즈인 아드리아나에게 빠져들게 되면서도 그조차도 이전 시대를 동경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드리아나는 길에게 향수를 줌과 동시에 현실을 깨우는 매개체가 된다.
가브리엘은 레코드 가게의 직원이다. 레코드 가게는 영화 전반에 흐른 향수를 자극하는 프랑스 음악의 상징이다. 가브리엘은 길에게 콜 포터의 음악을 추천하며 “파리는 비 올 때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는 인물이다. 길과 함께 비를 맞으며 스크린밖으로 사라질 수 있는 현실의 인물이자 현실 속 이상향이다.
이 영화는 국내 2012년 개봉했다. 때문에 영화 제작 시기 배우의 모습과 현재를 자꾸 비교해 보게 되지만 영화 속 메시지는 있다. 주인공 길이 진실하게 자신의 선택을 꺼내 보인다는 것. 프랑스의 음악과 영화, 문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많다. 그것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 나는 어떠한 선택을 하게 될까. 이네즈와 같은 추구를 할 것인가. 아드리아나와 가브리엘과 같은 향유를 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 진실한 자기 자신이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길 펜더처럼 꾸밈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