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 오후, 컴퓨터를 끄고,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귓가로 온갖 소리들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누군가 피아노 치는 소리, 노래 부르는 소리, 차 지나다니는 소리, 거실에 있는 TV 소리 등
피아노는 이제 갓 배우는 사람이 치는 건지 뚱땅거리기만 하고, 노래는 부르는 게 아니고 악을 쓰고 있었다.(소찬휘 님의 Tears를 부르더군요) 빵빵거리는 차 소리에 부르릉거리는 오토바이 소리, 그리고 간간이 내리는 빗소리가 뒤섞이며 완벽한 "불협화음"이 펼쳐지고 있었다.
특히, 피아노 소리! 그날 아침에 피아노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서 경비실에 전화를 걸려고 일어났을 정도였다. 물론, 그 순간 소리가 멈추긴 했지만, 나는 상상 속에서 누군가의 피아노를 수십 번은 때려 부수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멍 때리던 순간에는 피아노 소리가 전혀 불쾌하지가 않았다.
피아노는 피아노, 노래는 노래, TV는 TV, 차 소리, 빗소리, 모든 소리들이 제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거슬리지가 않았다.
거슬릴 이유가 없었다.
그 순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를 불쾌하게 했던 건 소리 자체가 아니었구나. 그 소리들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들이었구나.
아침에는 화가 치밀어 오르게 했던 소리들이 오후에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달라진 건 나 자신 밖에 없었다.
문득, 삶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쳐다보기만 해도 분노를 일으키는 상황도 내가 달라지면 다른 모습으로 보이지 않을까?
솔직히 그 순간을 제외하고는 소음은 여전히 나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화가 머리끝까지 차오르는 일은 없었다. 불협화음이 하모니가 되는 순간을 경험해서 그런 건가? 아니면, 나를 괴롭히는 건 내 생각과 그에 따른 감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런 건가?
그날 나는 소음 속에서 작은 지혜 하나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