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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Mar 19. 2024

빛과 어둠 그리고 사랑

짧은 이야기(소설)

빛과 어둠의 길고 긴 싸움.

어둠의 왕은 빛의 나라로 보낸 이들이 돌아오지 않을 때마다 그들의 나약함에 분노했다. 어둠의 왕은 아무리 환한 빛이라도 그보다 강한 어둠 앞에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촛불의 옅은 빛은 방 안 구석구석을 비추지 못하니까.

강렬한 태양이라 하더라도 좁은 골목 안, 담장 밑에는 닿지 못하니까.


어둠의 왕은 빛을 이기기 위해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인간의 탈 안에 자신을 꼭꼭 숨긴 채 빛의 나라로 향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씩 빛의 왕에게 다가갔다. 왕궁의 마구간 지기 안에 숨어 있다가 성 안의 시종으로로 옮겨 갔다. 어둠의 왕은 오랜 세월 숨을 죽이며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빛의 왕을 지키는 최측근 기사의 심장에 자신을 숨겼다.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햇살 좋은 어느 날, 정원으로 산책을 나온 빛의 왕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자신만의 왕의 뒤를 지키고 섰을 뿐이다. 이제 왕의 심장에 어둠의 검을 꽂으면 된다. 그럼 빛의 세상은 끝날 것이다.

어둠의 왕은 완벽하게 숨기 위해 노력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어둠의 왕은 기사의 심장에 숨겨놓은 어둠을 조금씩 꺼내어 빛의 왕에게 흘려보냈다.

그 순간, 빛의 왕이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날씨가 참 좋네요, 경. 내일은 다과라도 가지고 와요. 경과 함께 먹으면 참 행복할 거 같아요.” 수줍은 미소에 발그레한 양 볼, 내리깐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는 빛의 왕을 보며 어둠은 쾌재를 불렀다.


지금이야말로 어둠의 검을 꺼낼 때다.


하지만, 어둠은 자신도 모르게 빛의 왕을 향해 내밀어진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잘게 떨리는 오른손이 발그레한 왕의 볼에 닿았다. 어둠은 빛의 왕을 향해 속삭였다. “왕께서 행복하시다면” 왕은 그 손을 마주 잡으며 짙은 미소를 지었다. 왕이 기사를 부른다. “로엔, 사랑합니다.” 어둠은 자신의 이름이 로엔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어둠은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했었는지를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곧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빛의 왕이 내민 손을 잡고 그저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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