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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Apr 13. 2024

달님의 이야기

짧은 이야기(소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른 길이었는데, 놀랍게도 거대한 느티나무 아래에 누군가 서 있있다. 


"아, 빛나구나."

빛나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 그런데 이상하군. 빛나는 몇 년 전 성인식을 치르지 않았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빛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저씨, 지금 오셨어요? 한참 기다렸잖아요.”

빛나는 아이였을 때 모습 그대로 맑은 얼굴로 생글거렸다.

“회사는? 바쁘지 않니?”

“바쁘죠.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아저씨와의 대화를 포기할 만큼은 아니죠.”

오리온자리

빛나는 어렸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재잘재잘 떠들기 시작했다.

“아저씨. 저 어제 오리온자리 봤어요. 그 별 세 개가 나란히 있는 거 오리온의 허리띠 맞죠? 보는 순간 심장이 두근두근해서 한참을 쳐다봤다니까요. 그 세 개의 별 이름이 뭐였더라? 민타카, 알닐람, 그리고… 알… 알……”

“알니타크”

“맞아요! 알니타크. 역시 별과 관련해서는 아저씨를 따라올 자가 없어요. 한참을 바라보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어요.”

빛나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 몽롱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곧바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 아저씨가 만든 별 이야기 또 해주세요. 저는 아직도 그 이야기들이 사실이라고 믿고 있거든요. 친구들은 무슨 철없는 소리냐고 하지만, 쳇, 자기들도 어렸을 때는 같이 좋아해 놓고는, 하여튼 저는 아저씨 이야기는 다 믿으니까 또 해주세요.”

나는 빛나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 빛나는 진짜로 내 이야기를 믿는 걸까?


기대에 가득 찬 빛나의 눈동자를 잠시 바라본 나는 잠시 고민 후, 말을 꺼냈다.

“알니타크, 그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그의 이야기를 해볼까?”

빛나는 기대에 들뜬 표정으로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 모습이 꼭 다섯 살 어린아이처럼 맑아 보였다.


- 조금 더디게 어른이 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아마 몇 년 후에는 더 이상 찾아오지 않겠지. 


“사랑 이야기죠? 그렇죠? 이번에도 사랑 이야기죠?”

“그래, 네가 좋아하는 사랑 이야기.”

빛나는 두 팔을 벌려 환호했다. 나는 그런 빛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알니타크는 밤하늘에 떠있는 어느 성단 관리자의 아들 중 한 명이었단다. 성단의 관리자는 알니타크가 성인이 되는 해에 자신이 관리하던 작은 행성 중 하나로 그를 보내려고 했지. 하지만,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던 알니타크는 가고 싶은 행성이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저는 빛나는 푸른 행성으로 가고 싶어요.' 성단의 관리자는 아들 중 알니타크를 가장 아꼈기에, 딱히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그가 원하는 데로 해주었단다.”

“설마 빛나는 푸른 행성이 우리 행성이에요?” 

나는 빛나를 향해 살포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알니타크는 키가 3미터나 됐지만, 그곳에 사는 행성인은 너처럼 작았단다. 알니타크는 그런 그들에게 굉장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어. 하지만, 성단관리자는 알니타크에게 절대 그들과 접촉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지. 행성인들은 그들을 신으로 생각했고, 그들은 그 관계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거든. 행성인들과의 접촉은 오로지 행성인들이 뽑은 소통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졌단다.”

“소통자요?”

“그래, 소통자. 처음 관리자들이 그 행성을 발견했을 때는 행성인들과 관리자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았거든.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행성인들 사이에서 관리자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이 태어나기 시작했어. 아마도 관리자들이 행성에 오래 머물면서 생긴 현상인 거 같아. 행성인들은 그들을 소통자라고 부르며 특별하게 대했단다.”

“그러면, 알니타크한테도 소통자가 있었겠네요.”

“물론, 알니타크에게도 배정된 소통자가 있었지. 하지만, 알니타크는 만족스럽지 않았단다.”

“왜요?”

“규칙상 행성인과 관리자는 사적인 대화를 할 수 없었거든. 서로의 얼굴 역시 공개할 수 없었고. 알니타크는 행성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전 같은 곳에서 얇은 천막을 드리우고, 신전의 관리자와 함께 소통자를 만났단다. 알니타크는 소통자를 직접 만나고 싶었지만, 신전 관리자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 신전 관리자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하는 일이 생겼어. 알니타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지. 알니타크는 신전 관리자가 자리를 비운틈에 재빠르게 천막을 걷어냈고, 그들의 운명은 시작됐단다.”

“캬아아.”

빛나는 양볼을 감싸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알니타크의 소통자는 이제 막 성인이 된 젊은 여자였지. 그녀는 소통자 중에서도 가장 어렸고, 또한 가장 아름다웠단다. 그녀의 이름은, 음... 뭐라고 하면 좋을까?”

“빛나! 빛나로 해주세요.”

나는 손을 번쩍 든 빛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래, 빛나. 그 당시 빛나 역시 알니타크와 천막을 사이에 둔 소통에 지겨움을 느끼던 중이었지. 그런데 마침 알니타크가 천막을 거둬낸 거야."

“그래서요? 그들은 한눈에 반했나요? 아, 죄송해요. 말을 자꾸 끊어서. 어서 이야기해 주세요.”

“그래, 그녀는.”

“빛나요. 빛나."

“그래. 빛나와 알니타크는 첫눈에 서로가 자신의 운명임을 알았단다. 하지만, 그들은 맺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었지. 특히, 빛나 입장에서는 더 힘들었어. 신과의 사랑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잖아. 두 사람은 남들의 눈을 피해 사랑을 키워나갔지만, 결국은 들키고 말았단다.”


***


빛나는 잘게 떨리는 목소리로 알니타크에게 말했다.

“절대 나 때문에 다치지 마. 나 때문에 당신이 망가진다면, 나는 그 즉시 영혼조차 소멸시킬 거야. 그럼 다음 생에도 우리는 만나지 못하겠지. 그러니 절대 나 때문에 당신이 망가지면 안 돼.”

“왜 그래? 왜 그런 불길한 말을 해. 나는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아. 그리고 너 역시 나를 떠나지 못해. 나는 네가 어디에 있든지 반드시 너를 찾아낼 거니까.”

빛나는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알니타크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래. 나는 당신의 곁을 떠나지 않아. 언제나 당신 품에 있을 거야.”

알니타크는 빛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빛나는 알니타크를 바라보며 따스한 미소 지었다. 알니타크 역시 마주 보며 웃었지만, 그는 빛나가 평상시와 다르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괜찮을 거야. 빛나는 소통자잖아. 신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빛나를 행성인들이 함부로 대하지는 못할 거야.' 알니타크는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내려놓았다.

“우리 다음 생에는 꼭 같은 행성에서 태어나자. 그때는 반드시 너의 부인이 될게.”

빛나의 말에 알니타크가 버럭 화를 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다음 생이라니. 우리는 같은 행성에서 태어날 수 없어. 그건 너도 잘 알고 있잖아. 설사 다음 생에 만난다고 해도 똑같은 어려움을 겪게 될 거야. 그리고 우리가 서로를 알아본다는 보장도 없잖아.”

“음, 좀 실망인데? 나는 네가 어떤 모습이어도 알아볼 수 있는데. 그리고 같은 행성에서 태어나지 않아도 나는 어떻게든 네 곁으로 갈 거야. 그러니까 절대로 나 때문에 너를 다치게 하지 마. 절대로.”

빛나는 환하게 웃으며, 알니타크의 입술에 조심스럽게 입을 맞췄다. 알니타크는 빛나를 안으며, 절대 그녀를 놓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


“저 불안해요. 그래서 둘은 헤어진 건가요?”

빛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빛나는 성단 관리자에게 불려 갔단다. 그리고 선택을 강요받았지. 혼자 사라질 것인지, 아니면 다른 행성인들과 함께 사라질 것인지.”

“헉. 말도 안 돼요! 그녀가 불쌍해요!”

“그녀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단다. 빛나는 알니타크를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그렇다고 가족과 친구들을 희생시킬 정도로 모진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녀는 결국 [소리 없는 곳]으로 떠났단다. 그녀가 성단의 관리자에 의해 [소리 없는 곳]으로 갔다는 사실을 안 알니타크는 절망했고, 그리고 분노했지. 알니타크는 행성인들이 그녀를 괴롭힐 것만 걱정했지, 자신의 아버지가 그녀를 협박했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

“저, 그런데 [소리 없는 곳]이 뭐예요? 설마, 죽는다는 건가요?”

“음, 비슷해.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영혼으로 돌아가서 다음 생을 준비하는 곳을 말하지.”

“그렇구나. 아, 그래서요? 그래서 알니타크는 어떻게 됐어요?”

“그는 아버지에게 대항했고, 그 때문에 자신을 크게 망가뜨리고 말았어.”

“그럼 안 되는데, 빛나가 그랬잖아요. 만약에 알니타크가 망가지면 다시는 환생하지 않을 거라고요.”

“그래. 알니타크가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단다. 그녀는 [소리 없는 곳]으로 가기 전에, 성단의 관리자와 계약을 하나 했었지. 비록 이번 생은 맺어질 수 없지만, 만약 알니타크가 자신을 기다려준다면 다음 생에는 그 어떤 상황이라도 헤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알니타크가 크게 망가졌지에 그 계약은 깨지고 말았지."

“불쌍해요.”

빛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하지만, 알니타크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어. 그 이후로 오랜 시간을 수천, 아니 수 억 개의 행성들을 돌아다니며 그녀를 찾기 시작했단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지. 알니타크는 괴로워했고, 점점 빛을 잃어갔지. 그런 그의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던 성단의 관리자는 알니타크에게 그녀를 되살릴 방법은 없지만, 대신 원하는 소원 한 가지를 들어준다고 말했어. 알니타크는 오직 빛나만을 원했지만, 번뜩 든 생각에 하늘의 별이 되게 해달라고 빌었단다.”

“별이요?”

“그래. 생명이 살 수 있는 별.”

“그럼 혹시, 알니타크 옆에 있는 두 개의 별 중 하나가 빛나인가요?”

“글쎄. 그건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내 생각은 지금 알니타크에 빛나가 살고 있지 않을까 싶구나.”

“네? 그럼 여기가 알니타크? 그리고 나는 빛나인가요? 우와, 그럼 정말 좋겠어요."

빛나는 환호했다가, 순식간에 한숨을 쉬며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기는 알니타크가 아니고, 저는 내일 일찍 출근을 하기 위해 집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이죠.”

빛나는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저씨, 감사해요. 이야기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와도 또 해주실 거죠?”

“그래. 다음에 오면, 올 수 있다면, 또 해주마.”

“네.”

빛나는 환하게 웃으며 어린아이 같이 양 손을 흔들면서 뛰어갔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에 휩싸인 채, 사라지는 빛나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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