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다서영 Jul 11. 2024

새로 산 구두

짧은 이야기(소설)

지희는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은정아, 나 얼마 전에 구두를 새로 샀어.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도 발이 아프네. 뒤꿈치에 보호패드를 붙였는데, 내가 새 신발을 만만하게 봤나 봐. 발가락이 아프다. 집에 가면 멍들었을 것 같아."


"갑자기 웬 구두 산 이야기? 아프면 벗고 있어. 반창고 있는데 줄까?"


은정은 소개팅한 남자 이야기를 하다가 새로 산 신발 이야기를 꺼내는 지희를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그렇지. 반창고를 붙이면 덜 아프기는 하지. 그런데 패드를 붙였는데도 뒤꿈치도 아파. 조금 더 걸으면 쓸릴 거 같아."


"편의점 가면 슬리퍼 팔지 않나? 슬리퍼 하나 사다 줘?"


지희가 싱긋 웃으며, 손을 저었다.


"안 돼. 아파도 계속 신고 다녀야 해. 그래야 발이 적응을 하거든. 지금은 이렇게 아프지만, 시간이 지나면 편해질 거야. 아마도."


은정은 이해가 안 되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발가락이 퉁퉁 부울 정도면 너한테 안 맞는 신발이야. 그냥 버려."


지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며칠, 음... 아니 몇 주? 그래, 조금만 고생하면 제일 편한 구두가 될 거야. 너도 알잖아. 내가 매일 신고 다녔던 그 검은 구두. 그 구두도 처음에는 참 아팠다."


은정이 양 어깨를 으쓱하더니, 말을 이었다.


"구두는 됐고. 그래서 소개팅 남자하고는 언제 다시 만날 거야? 연락 왔다며?"


지희는 퉁퉁 부운 발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은정아. 익숙해지면 편해질 텐데, 분명히 아는데, 새 구두는 왜 이렇게 아플까? 예전에는 참고 버텼는데, 지금은 좀 무섭다."


"그래서 너덜너덜 해진 옛 구두를 신고 다니려고? 그 구두 밑창도 여러 번 갈지 않았어? 비도 샌다며?"


"하지만, 편해. 정말 편해서 버리지를 못하겠어."


은정이 옅은 한숨을 내쉰다.


"그 구두는 이미 끝났어. 네가 아무리 수리를 맡겨도 이제는 불가능하다고."


"알아. 버려야 한다는 거 아는데."


미련이 철철 넘치는 지희를 보며 은정이 목소리를 높였다.


"지희야. 오래 신어서 너덜너덜 해진 거 아니야. 이미 그 사람은 누군가의 새 신발이 되었다고."


지희는 새 구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구두도 언젠가는 너덜너덜 해지겠지? 밑창을 여러 번 갈아도 신을 수 없을 만큼. 그럼 나는 또 새 구두를 사야 하는 건가? 그리고 내 발에 맞추기 위해서 아픈 발을 부여잡고 몇 날 며칠을 걸어 다녀야 하고? 나 이제 그만하고 싶은데. 더는 아프기 싫은데..."


은정이 지희의 읊조림을 끊어내며 말을 이었다.


"그건 네가 그냥 발이 아픈 구두를 사서 그래. 그냥 나처럼 단화 신던지 운동화 신고 다녀. 그리고, 지희야, 신발은 사람이 아니야. 사랑도 너덜너덜해지지 않고. 신발은 그냥 신발일 뿐이야."


"내 사랑은 너덜너덜해졌는데."


"너 그 사람하고 좋았을 때를 생각해 봐. 예뻤잖아."


지희의 표정이 아련해지는 걸 본 은정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다시 미련 가지라고 말한 거 아니야. 한 때는 죽을 만큼 좋아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만 미워하고 놓아주라고 말한 거야. 그래서 소개팅 남은 계속 만날 거야? 말 거야?"


지희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래, 맞아. 신발은 그냥 신발일 뿐인데."

매거진의 이전글 달님의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