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지 빵을 사고 싶었을 뿐인데...
짧은 이야기(소설)
왜? 왜 자꾸 돌아오는 거야?!
오랜만의 나들이었다. 윤희는 요즘 인스타에서 핫하다는 카페에서 친구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고 있었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부터 직장, 가족 이야기까지 윤희의 입은 다물어질 줄을 몰랐다. 한참을 정신없이 떠들고 있는데, 직원 중 한 명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손님, 곧 마감인데, 혹시 더 주문하실 건가요?"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요?"
윤희는 휴대폰을 흘끗 쳐다보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가 물었다. "화장실?"
"아니, 매장에 있는 다른 빵 좀 더 보게. 여기 빵이 엄청 유명하잖아. 다른 빵도 먹어봐야지"
윤희는 진열대에서 요즘 유행한다는 빵을 하나 더 사서는 자리로 돌아왔다.
"이거 먹어보자."
윤희는 반을 잘라서 친구에게 주고, 나머지 반을 베어 물었다.
"대박, 진짜 부드럽다."
촉촉하면서 달콤하고 거기다 부드럽기까지, 입안에서 축포를 터트렸다. 정말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라운 맛이었다.
"역시 유행할 만하네. 더 사야겠어."
윤희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서둘러 진열대로 향했다. 하지만, 정리를 하고 있는지 진열대에 있던 빵이 모두 카운터 안 쪽으로 옮겨져 있었다. 직원을 불렀지만, 바쁜지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윤희는 카운터 안 쪽으로 옮겨놓은 빵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차피 살 건데, 내가 가서 꺼내와도 되지 않을까?"
한참을 기다려도 직원이 오지 않자, 윤희는 조심스럽게 카운터 안 쪽으로 들어갔다. 친구가 뭐라 뭐라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윤희는 무시하고 환희에 찬 얼굴로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순간, "쾅"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란 윤희가 카운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뭐야? 여기 왜 막혔어?" 매장과 카운터, 주방까지 훤하게 뚫려있던 공간에 알 수 없는 흰 벽이 생겨 있었다.
윤희는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꿈꾸는 건가?" 윤희가 한쪽 볼을 세차게 꼬집었다. "아야. 꿈은 아닌데.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윤희는 갑자기 생긴 벽을 있는 힘껏 두드렸다. "여기요. 여기 사람 있다고요!" 한참을 두드리는데, 어디선가 덜커덩 소리가 들렸다. 윤희는 더 세차게 벽을 두드렸다.
잠시 후, 윤희의 등 뒤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로 나오시면 됩니다."
뒤를 돌아보니,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존재했었는지도 몰랐던 작은 문을 열고 서 있었다.
"아니, 사람이 있는데 문을 닫으면 어떡해요. 놀랐잖아요."
윤희는 남자를 밀치고 후다닥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밖으로 나온 윤희는 눈만 깜박거릴 수밖에 없었다.
"... 여기가 어디죠?"
"직진 후, 오른쪽으로 꺾어지시면 됩니다. 그럼 행운을 빕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윤희는 황당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지만, 남자는 어디론가 사라진 후였다.
"여기가 어딘데?"
윤희는 불길하기 짝이 없는 골목 끝을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몰라왔지만, 집에 가기 위해서는 움직여야 했다. 윤희는 천천히 걸음을 떼었다. 하지만, 채 몇 걸음도 가지 않아서 윤희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도망쳐야 했다.
"으악! 이건 꿈이야! 꿈이 분명해!
영화에서나 보던 온갖 괴물들이 윤희를 쫓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윤희는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뜀박질을 한 끝에 골목 끝에 다다랐다. 골목 끝에는 작은 문이 하나 있었고, 윤희는 재빠르게 문을 열었다.
"말도 안 돼! 여긴, 아까 거기잖아!"
밖이라고 생각했던 곳은 윤희가 처음 갇혀있었던 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이었다. 남자가 열어주었던 문도 그대로 보였다. 윤희는 마른침을 꼴깍 삼킨 후, 조심스럽게 열려 있는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이게 뭐냐고."
괴물들이 바글바글 했던 그 골목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윤희는 한참을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생각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하지만, 생각은 길지 않았다. 평상시에도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던 윤희는 다시금 골목길 앞에 섰다. 그리고 움직였다.
"으악! 왜 쫓아와. 저리 가, 저리 가라고."
세 번째 돌아왔을 때 윤희는 생각했다.
"괴물 하고 한번 싸워볼까? 이건 꿈이 분명해.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 그냥 한번 싸워봐?"
윤희는 싸울 만한 무기를 찾았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거라고는 입안에서 살살 녹던 빵 밖에 보이지 않았다.
"아! 빵."
윤희는 빵은 한아름 챙겨서 다시금 골목길 앞에 섰다. 그리고 새빨간 피를 질질 흘리는 괴물을 향해 빵 하나를 던졌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빵을 한입 베어 문 괴물이 윤희에게 다가오더니 살랑살랑 꼬리를 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윤희는 자신의 다리를 부비적 거리며 애교를 부리는 괴물을 보며 알 수 없는 희열을 느꼈다.
"역시 유행하는 빵은 다르네. 괴물이 내 편이 되잖아."
윤희는 괴물들을 자기편으로 만들고, 자신의 편이 된 괴물들을 이용해서 다른 괴물들을 죽이고 또 죽였다. 하지만, 아무리 죽여도 윤희는 골목길을 벗어날 수 없었다.
"괴물을 죽이는 게 아니었나?"
윤희에게 있어서 괴물은 더 이상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윤희는 괴물이 싸우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골목길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 어.. 이 벽 뭔가 이상한데."
한쪽 벽에서 알 수 없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윤희는 벽 한가운데 검은색으로 x자 표시를 하고 한 걸음씩 걸어보았다. x자가 윤희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역시! 벽이 움직이고 있어."
잠시 뭔가를 생각한 윤희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앞으로 뛰어갔다. 윤희는 뛰면서 곁눈질로 x자를 쳐다보았다. x자는 계속해서 윤희보다 반 걸음 정도 앞에 있었다.
"이거다!"
그때부터 윤희는 뛰기 시작했다. x자보다 빨리, 반의 반 걸음이라도 앞서 나가기 위해서 뛰고, 또 뛰고, 계속해서 뛰었다. 괴물들은 눈에 안 들어온 지 오래였다.
수백 번의 뜀박질 끝에 윤희는 드디어 x자 보다 반의 반 걸음 앞서게 되었고,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