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조카가 왔다(3)
오랜만에 집안이 조용했다. 부모님이 잠시 고향집에 내려가셨고, 조카도 학원에 간 날이었다.
조카가 한국에 오고 몇 주 만에 느껴보는 고요함이었다. 물론, 복작복작한 집도 좋았지만,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은 딱 그런 날이었다.
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청소도 하고, 요가도 하고, 조용한 거실에서 따사한 햇살을 바라보며 멍 때리고도 하고, 조카가 돌아오는 시간까지 한껏 여유를 즐겼다.
그런데 조카는 이런 고요함이 몹시 어색했나 보다. 학원을 마치고 돌아온 조카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완벽한 적막에 많이 당황한 듯 보였다.
조카는 주춤거리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물었다.
"이모, 혼자 심심했지?"
나는 '심심'이란 단어가 조금 뜬금없어서 조카를 잠깐 멀뚱이 쳐다보다가 대답했다.
"아니."
조카는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듯했다.
"아무도 없어서 심심했잖아."
"아니야. 혼자 있어서 좋았는데."
조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혼자 있는데 외롭지 않았다고?"
심심하면 외롭나? 조카의 질문을 잠시 생각하다가, "가끔은 혼자 있으면 좋지."라고 대답했다.
조카는 뭔가를 말하고 싶은데 한국어가 생각나지 않는지 잠시 머뭇거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그리고 뭔가를 열심히 적더니 내게 보여주었다. 휴대폰에는 조카가 열심히 적은 일본어 문장과 그 아래 한국어로 번역된 문장이 보였다.
"인간은 혼자 있으면 모두 외로워."
뭔가 철학적인 문장에 살짝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진지한 조카의 표정에 그냥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그래. 혼자 있으면 외롭지. 그런데 이모는 겨우 반나절 혼자 있었는데."
하지만, 조카는 단호했다.
"이모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빨리 왔으면 좋겠지? 혼자 있으니까 심심하잖아."
'아니, 혼자 있어서 좋았다고, 그리고 지금은 너도 있잖아. 혼자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심심하냐고 묻는 거야?!'라고 속으로만 외치면서 "... 응. 그래, 그래. 빨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왔으면 좋겠다."라고 답했다.
조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으로 들어가더니, 적막한 집이 불편한지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는 분주하게 왔다 갔다 하며 내 시야에서 뭔가를 하기 시작했다.
꼭 내 외로움을 없애주겠다는 듯이.
조카야, 고마워, 고마운데.
이모는 진짜 혼자 있어도 심심하지 않았다고. 외롭지도 않았다고!
(8월의 어느 날 있었던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