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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다서영 Oct 29. 2024

어떤 살인자에 대한 보고서

짧은 이야기(소설)

(불편한 장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S는 고등학생  처음 사람을 죽였다. 장례식장에서 한참 공부해야 할 시기에 어쩌느냐는 어르신들의 말이 S의 기억 속에 어렴풋이 떠오른다고 했다. 돌아가신 분은 S의 할머니였다.


S를 낳자마자 떠난 어머니, 그리고 금세 여자를 옆에 끼고 사라져 버린 아버지. S가 말했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살인자가 될 운명이었어요."


S의 할머니는 유독 잔소리가 심했다. 저녁마다 소주 한 병을 마시고는 S를 앉혀 놓고 몇 시간씩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너 때문이야. 네가 태어나지만 않았어도 내가 이렇게 살지는 않았다. 그러니 너는 나한테 잘해야 한다. 울지도 마라. 떠들지도 말아라. 조용히 쥐 죽은 듯이 살아라."  할머니의 잔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어느 순간부터는 끔찍한 소음이 되어서 S의 머릿속을 미친 듯이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S는 반항하지 않았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S는 할머니한테 버림받을까 봐 두려웠다.


S는 참고 참았지만, 결국 소음을 없애기로 결심했다. 절대 죽이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주관적인 의견:  할머니를 회상하는 S의 표정과 말투에서 거짓이 느껴지지 않았) S는 그저 소음만 없애기를 원했다. 그래서 할머니가 마시는 술에 조금씩 약을 탔다. 목소리만 사라진다면, 괴로운 삶이 조금은 나아질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할머니는 돌아가셨고, S는 후회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사라진 세계는 상상해 본 적 없던 신세계였다. 방 두 개의 반지하 거실은 적막 그 자체였다. 윙윙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와 가끔 창밖 너머로 들리는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 S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평안을 느꼈다. 어머니 자궁 안에서도 느껴보지 못했을 완벽한 평화였다. 숨 쉬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할머니와 함께 사라졌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끔찍하고 저주스러운 소음은 다시 시작됐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데리고 온 여자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에 아버지는 할머니보다 더 끔찍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를 데리고 왔다. 여자는 날카로운 고음으로 끊임없이 불평불만을 쏟아냈다. 완벽하게 아름다웠던 공간은 금세 날이 선 칼들이 사방팔방 날아다니는 혼돈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할머니의 소음은 일방적이었지만, 여자의 소음은 답변이 동반되어야 했다. S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했다. 여자를 무시하면 무시할수록 더욱더 끔찍한 소음이 날아왔기에 S는 구역질을 참아가며 버텼. 하루빨리 여자가 자신의 공간에서 나가길 기도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여자를 버리고 떠났다. S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해방이다." 하지만, 여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S는 이미 달콤한 꿀의 을 알아버린 다 큰 곰이었다. 여자가 사라지면 나타날 완벽한 평화와 자유를 알고 있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는 쉬었다. 연고지가 없는 여자는 그 누구도 찾지 않았다. 목구멍에서 솟구쳐 나오는 핏덩어리가 날카롭게 울려 퍼지던 소음을 꾸역꾸역 잡아먹었다. 할머니의 소음이 사라졌을 때는 알지 못했던 쾌감이 S의 온몸을 휩쓸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한 기이한 느낌이 심장을 마구잡이로 두드렸다. 자유와 평화 그리고 쾌감이라는 낯선 감각이 S의 공간에 스며들었다. S는 이 감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S가 연쇄 살인을 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톡톡 치던 제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서 결론은?"

"S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제인은 손을 들어서 말을 막았다.

"그래서 J8, 너의 결론은 S는 구원받아야 한다는 말인가?"

제인 앞에서 열성적으로 설명을 하던 J8은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아닙니다. S는 연쇄 살인범으로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합니다. 다만, S가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뭐! 저지를 수밖에 없는?!"

한심하게 J8을 바라보고 있던 렉스가 소리를 버럭 지르며 일어났다.

"렉스, 자리에 앉아."

감정 없는 목소리로 제인은 렉스를 진정시켰다.

"저 미친 XX가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가만히 있어."

"렉스."

제인의 단호한 목소리에 렉스는 짜증을 내며 자리에 앉았다. J8은 억울 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절대 살인자를 옹호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저는 S에 대한 업무 지시를 받았고, 지금 결과를 설명하고 있을 뿐입니다."

렉스는 J8의 말에 또다시 발끈했다.

"저 미친 XX가."

"렉스. 한 번만 더 나서면 밖으로 내보낼 거야."

제인은 렉스를 조용히 시킨 후, J8에게 말했다.

"맞아. 나는 S에 대한 조사를 시켰지. 네가 S와 몇 번을 만났지?"

J8은 잠시 생각하더니 "네 번입니다."라고 답했다.

"네가 만난 S는 어떤 사람이었나?"

J8은 질문에 대한 의도가 뭔지 잠시 고민하더니,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 좋다는 결론을 얻었다. J8은 제인의 눈치를 살피며 S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늘어놓았다.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연쇄 살인범이니까요. 그런데 실제 만나본 S는 작고 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이가 서른이 넘었는데, 아이 같은 순수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목소리는 조용했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나갔습니다. S의 어린 시절은 정말 불행했고."

제인은 또다시 손을 들어 J8의 말을 막았다.

"그럼 첫 번째 피해자는 어떤 사람이었지? S에 대해서 설명한 것처럼 자세히 설명해 주길 바라네."

"네?"

"지금 네가 S에 대해 설명한 것처럼 외모부터 성격은 어땠는지, 어린 시절은 불우했는지, 행복했는지."

 J8은 눈만 깜박이며 제인을 쳐다보았다.

"제 업무는 S까지입니다. 상담도 S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요."

그 말에 렉스는 참지 못하고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미친 XX야, 네 업무가 정확히 뭔데. 우리 업무가 뭔데?"

J8은 아랫입술은 지그시 물더니 대답했다.

"범죄자들이 끔찍한 벌을 받을 사람인지 아닌지 판단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렉스님이라도 저를 무시하는 발언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렉스는 어이없다는 웃음을 터트리고는 J8이 제출한 보고 일지를 던지며 외쳤다.

"그런데 왜 없는데? 살인자에 대한 안타까운 내용은 차고 넘치는데, 왜 피해자에 대한 내용은 이 따위야. 지금 이 보고서만 보면, 피해자가 누구인지 모르겠어."

J8이 발끈해서 외쳤다.

"모함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S가 벌은 받아야 하는 사람은 맞지만, '셀프 사형.'이라는 벌을 받을 정도로 잔인한 살인자는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단지 쾌락 때문에 살인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S는 어쩔 수 상황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학대받은 어린아이를 보호하지 못한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역시 너는 S가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군."

J8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까도 말했듯이 구원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처럼 무기 징역이면 충분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셀프 사형'의 대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알다시피, 사형제도는 사라진 지 오래지. 그래서 우리 같은 직업이 생겨났고. 범죄자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벌, '셀프 사형' 대상자 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지. 근데 J8, 그것을 의뢰하는 사람들이 누군지는 알고 있나?"

J8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대답했다.

"피해자들의 가족입니다. 하지만, 의뢰를 한다고 해서 다 '셀프 사형'이 진행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정신이 피폐해져서 스스로 죽을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 끔찍한 벌을 줘도 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하는 게 우리의 일이라고 교육받았습니다."

"그래, 맞아. P사건 기억하지?"

"네."

"어떤 사건이었지?"

"동생을 반신불구로 만든 학생을 형이 찾아가서 죽인 사건입니다."

"당시 죽은 학생의 부모가 '셀프 사형'을 의뢰했고, 우리는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지. 최종보고서에 어떻게 적혀있었지?"

"'멀쩡했던 동생은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데 가해 학생은 단지 부모가 힘이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학교를 다니며 일상을 보내고 있는 모습에 분노하여 저지른 범죄로, 현재 P가 받고 있는 벌이면 충분하다.'였습니다."

참지 못한 렉스가 이를 꽉 문 채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지금 그런  P와 S가 같다고 주장하는 건가? 그리고 소음? 소음이라고? 근데 왜 그 소음이 자기보다 약한 사람한테만 적용이 되는 거지? 할머니 소음에 힘들었다고? 그 아버지란 사람 만나봤어? 아주 화통을 삶아 먹었더군. 그런데 왜 아버지 소리 관련해서는 단 한 줄이 없을까? 그 XX는 그냥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죽여놓고 즐기는 강약약강의 지질한 살인자 XX일 뿐이야."

J8은 고개를 푹 숙이며, 웅얼거렸다. "하지만"

제인은 역시나 J8의 말을 막았다. 더는 들을 필요가 없었다.

 "J8, 이만 나가보세요."

J8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렉스가 긴 한숨을 내쉬며 제인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직원 뽑기 참 힘드네."

"우리 일이 평범한 일은 아니잖아. J8까지 탈락이면, 합격자는 J2 한 명인가?"

"겨우 한 명이라니. 하아, 언제 편해지려나"

렉스의 한숨 섞인 말에 셀프 사형 집행자인 제인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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